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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Oct 14. 2021

아빠의 글쓰기는 생계를 책임져 주지 못했다

  

그 당시 아빠는 대학원 졸업 후

유학까지 다녀온 고학력의 소유자였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어릴 때라

기억에 오류도 있겠지만

아빠는 은행원으로 일하며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았을테고

마당이 있는 2층 집에서 1층 집을 세를 주며

살았던 기억이 있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 오시는 날,

딸들을 위해 무릎과 팔이 꺽이는

마루인형(바비인형)을

선물로 사가지고 오셨는데

그 때 아빠의 선물이

어린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린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빠는 퇴사를 하고 사업을 하며 글을 쓰셨다.

하지만 아빠의 글쓰기는

생계를 책임져 주지 못했다.

글쓰는 사람에게 사업은 쉽지 않았고

여러 번 실패를 하며 집을 옮겨다녔다.


언니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엄마는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한 후라

바로 위에 언니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테니

언니들은 나름 괜찮았겠지만

그 시절 엄마의 부재는

나에게 상당히 큰 결핍이 되었다.


지금도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날이면

창가로 햇볕이 들어오던 2층 집 거실에서

엄마의 품 속에 안겨 낮잠을 자던

작은 아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나보다 더 깊이 파인 부모님으로 인한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어서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남편은 아직도 집에 불이 꺼진 걸 확인하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나에게 전화를 한다.


누군가 문 앞에서 배웅해 주고

마중하는 따뜻한 집을 간절히 원했던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가정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이가 좀 더 커서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쯤  

내가 집을 지키는 시간도 줄어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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