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흐뭇함 사이
빨래를 개다 TV를 켜니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이 나온다. 고딩 드라마네 하고 채널을 돌리려다 무심코 보게 되었는데...
헙 = =
너무나도 아득한 설렘이란 감정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나는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결혼 7년 차, 세 아이 육아로 꽉 찬 하루를 살다 보니 이런 이성 간의 찌릿찌릿한 감정이 내 것이 아니게 된 지 너무 오래되었다.
모성애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의 현실 감정과 드라마 속 훈남 훈녀들의 풋풋한 감정 사이의 괴리로 잠시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체념한다.
그래 저 때는 이성과의 가슴 두근대는 사랑... 저게 전부일 때지...
그땐 몰랐는데...
참 좋을 때다...
요즘 내가 하는 사랑의 모습은 이렇다.
홀로 책상에 앉아 큰 아이가 좋아하는 글라스데코를 만드는데 나중에 이걸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진다.
두근두근과는 다른 이 흐뭇한 감정...
열여덟의 순간에 느꼈던 설렘은 서른다섯이 되어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너에게 크게 바라는 건 없어
그냥 니가 웃는 게 보고 싶어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자라주어' 라고...
연인 간의 사랑은 '내가 널 좋아하는 만큼 너도 나를 좋아해 줘' 라는 바람이 녹아있기에 불꽃처럼 일다가도 절망적인 기다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불완전한 사랑이 우여곡절 끝에 완전해 지자 결심할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스스로의 이기심을 뛰어넘는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꽁냥꽁냥대는 드라마 속 연인의 모습에 서글퍼하지 않기로 한다.
물론 지난날의 설렘에 대한 그리움이 생길 때도 있지만
그럴땐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생명체의 이쁜 짓을 보며 엄마 미소로 웃어 넘긴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겠다.
서른다섯의 순간도...
'열여덟의 순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