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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DA Jan 27. 2019

당신과 나의 은밀한 대화의 도구 I

: HAND-KERCHIEF CODE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흥겨움에 들떠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무도회장..

그녀는 반대편에 서 있는 남몰래 사랑하는 그가 자신을 응시하자 손에 지니고 있던 손수건으로 살짝 뺨을 쓸어내린 뒤 손수건을 어깨 뒤로 넘기고는 몸을 돌려 나갑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때로는 말보다 상징적인 제스쳐가 사람들의 뇌리에 더 큰 인상을 남기기도 하죠.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한 떨기 꽃과 같은 여성스런 이미지'의 틀에 맞춰 살아가야 했던 그녀들과 신사 다움을 강요받았던 16~18세기 그들. 특히 도덕적 규범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행동에 많은 제약이 강요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서로 몰래 만나거나 여성들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놓고 이성을 유혹하는 모습은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사회적인 금기사항이요, 비난거리가 되었죠.


하지만! :) 그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회 문화적 규범은 엄격하였으나.. '은밀함'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녀들이 남몰래 유혹하는 모습을 하나의 예술적인 형태로 남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손수건과 부채의 언어!!


문화적 황금기였던 그 시절, 유럽 남녀의 공식적인 만남의 장소였던 무도회장이나 극장에서 손수건과 부채는 아주 유용하고도 이상적인 은밀한 대화의 도구로써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합니다.




그녀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 앞에서 보일 듯 말 듯 살짝 미소 짓고, 45도 각도 아래를 쳐다보며 긴 속눈썹을 어필해 주면서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쓸어 넘긴다던가.. 하는 등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은밀한 메세지를 던지다 점차 손에 든 액세서리를 이용해 좀 더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지요.


오늘은 그 첫 번째 은밀한 신호의 도구, 손수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AND-KERCHIEF


유럽에서의 손수건은 중세시대 머리 위에  다양한 모양의 천조각이  시작이었습니다.

영어로 'Kerchief'는 '목이나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로 이것이 손으로 내려와 머리를 장식하던 스카프와 구별되어 'Hand-kerchief'가 된 것이지요.

이 문화 또한 동방에서 왔습니다.


 천조각으로 사람들은 땀도 닦고 흐르는 콧물도 닦고, 위생상태가 좋지 못했던 당시 길에서 악취가 나면 코도 막고 먼지도 막는  실생활에 유용한 용도로 활용하.. 점차 레이스와 자수로 무장한 숙녀의 상징적인 액세서리가  것입니다. 이렇게 화려해진 손수건은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죠.


손수건이 생기기 전까진 땀이나 콧물은 무엇으로 닦았을까요? 바로 소매입니다.

유난히 길었던 소매의 존재의 이유는 분명했던 겁니다. :)



중세시대 기사들은 자신의 투구 뒤에 사랑하는 연인이 준 손수건이나 스카프, 장갑, 소매 등을 묶고 출전했습니다. 그녀들은 사랑하는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자신의 손수건 등을 내밀었고, 그들은 그녀들의 명예와 이름을 지켜주고 헌신하겠다는 의미로 투구 뒤에 매었습니다.


탑에 갇혀 자신을 구하러 와 줄 기사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피오나 공주도 마침내 나타난 슈렉 기사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내밀죠. 이렇듯 손수건은 기사도를 상징하는 품목이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특히 손수건을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562년에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72개의 손수건을 선물 받기도 했지요. 그녀 또한 받은 만큼 다른 여성들에게 자주 선물했습니다. 그녀의 시대엔 여성들끼리 서로 우정의 의미로 손수건을 많이 주고받았죠. 그러다 점차 남녀 간에 주고받는 사랑의 메신저가 됩니다.


1565년에는 여왕을 둘러싼 두 추종자 사이에서 당시 손수건이 지닌 '사랑의 징표'적 의미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3월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오후,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추종자 I, II가 하는 테니스 게임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경기 도중 휴식시간이 되자 여왕이 총애하던 오랜 친구이자 추종자 I. 레스터(Leicester)가 여왕에게 다가와 감히 여왕의 손에 있던 손수건을 낚아 채 여 보란 듯 자신의 땀을 닦았죠. 이에 격분한 추종자 II. 노퍽(Norfolk)은 이렇게 외칩니다.





루이 15세 때는 손수건에 얽힌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1745년 2월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황태자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가면무도회.


한창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8개의 나무가 주목을 받으며 요란스레 등장합니다.

많은 여인들은 단번에 왕의 무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눈에 띄길 간절히 희망하며 그들의 주위로 모여들었죠. 막 사랑하던 정부 '샤토루 공작부인(Duchesse de Chateauroux)'을 잃고 뻥 뚫린 가슴이 허하던 루이 XV세는 자신의 무리들과 나무로 변장하고 나타나 즐거운(하지만 마음은 마~이 쓸쓸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때, 흥겨움으로 북적이는 군중들 사이로 루이 XV세의 눈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실크로 된 장밋빛 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목동의 모습을 한 아리따운 자태의 여인이 들어오죠. 그는 홀린 듯 그녀를 따라가 대화를 나눴고, 그녀의 목소리와 향기만으로 자신이 Senart 숲에서 사냥할 때 자주 마주치던 여인이란 걸 알아채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래전부터 작업에 들어갔던 쟌느 앙뚜아네뜨(Jeanne Antoinette Poisson)의 치밀한 전략이었습니다. 역시 무엇이든 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한껏 화려하게 꾸민 다른 여인들과는 상대적으로 수수하게 차려입고 무도회장에 참석했는데 오히려 이러한 차림새는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하게 되죠. 드디어 기회를 잡은 그녀는 재치 있는 입담과 미모로 한껏 왕을 홀렸고, 왕은 가면을 벗으라 명하지요. 여인은 순종한 듯 가면을 벗음과 동시에 군중들 사이로 들어가 버립니다. 군중들과 섞였지만 왕의 시선이 자신을 쫓을 수 있을 만큼만 거리를 둔 채.. 그녀의 의도적인 '나 잡아봐라~'가 시작되었고, 왕은 의욕 충만한 태도로 뒤따릅니다.

역시 계획은 치밀해야 하며.. 준비물은 얼굴입니다.

  



그러다 그녀는 그 시대의 '남녀 행동 지침서'대로 자신의 레이스가 달린 작고 이쁜 손수건을 떨어트리죠. 뒤따라오던 왕이 발견하고 주울 수 있는 자리에 딱!! 손수건을 발견한 왕은 열정적으로 집어 들었고.. 고개를 들어보니 여인은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져 버려 마음이 급해진 왕은 그녀를 향해 조심스레 손수건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나직이 외치는 소리가 퍼져나갔죠.


손수건은 던져졌다!*



쟌느 앙뚜아네뜨의 승리의 신호였고, 동시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다른 여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녀가 바로 로코코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자 루이 XV세의 유명한 애첩! 퐁파두르 부인입니다. 아름다운 자태와 뛰어난 패션 감각의 소유자로 서양 패션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여인이죠.



사실 손수건을 이용한 이 제스쳐는 옛 오스만 제국 시절 술탄(Sultan)들이 자신의 세라리오**에서 마음에 드는 여인을 선택하는 제스쳐였습니다. 그들의 사회에서 손수건은 왕이라는 신분을 알려주는 상징 같은 물건이라 술탄은 항상 손수건을 지니고 다녔죠.


1604년부터 1607년까지 베네치아의 특사로 이스탄불에서 일한 '본(O. Bon)'씨에 따르면..

술탄이 여자들 앞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마음에 드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직접 주거나 던지면, 그녀는 그것을 가슴 섶에 넣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술탄의 일상적인 '오늘은 누구랑 잘까?'였던 선택과정은 이국주의가 최절정에 이르렀던 18세기 유럽에선 그야말로 이그좌~릭한 낭만 가득 로맨스의 절정적 순간을 표현하는 형식이 되어 프랑스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으며, 특히 루이XV세 시대에는 '왕의 선택'의 순간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르네상스 시대부터 손수건은 연인들 사이에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상징적인 도구이자 은밀한 언어가 되었죠. 이 시절의 손수건은 결혼 지참품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화려하고 비싼 사치품이었습니다. 부의 상징이었지요. 17세기 부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전까지 초상화 속 여인들은 손수건을 살포시 손에 쥐고 포즈를 잡았습니다.




이 시절의 손수건을 보면, 소매 프릴(frill) 부분의 연장처럼 같은 소재를 사용해 통일감을 주었죠. 정말 한땀 한땀 장인정신이 느껴집니다. 면보다 얇은 'Cambric' 또는 'Lawn'이나 실크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 금실로 이니셜을 새겨 수를 놓고, 가장자리는 레이스나 술을 달아 장식했습니다. 18세기 중후반까지는 원형, 타원형, 하트 모양 등 폼도 다양했지만, 마리 앙뚜아네뜨로 인해 지금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통일되죠.




여왕의 요청으로 루이 16세는 1785년 손수건을 네모반듯한 규격으로 맞추도록 법으로 제정하게 합니다.

별게 다.. 법이 됩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단발적인 메세지를 넘어서 손수건으로 대화가 통할 정도로 구체적이 되었고, 여성이 손수건으로 자신의 의도를 알리는 것은 하나의 관례가 됩니다. 유럽의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던 관계로, 그녀의 시대는 금욕과 절제가 미덕인 사회였지만.. 그렇다고 연애를 안 했다거나 바람을 안 피웠다는 건 아닙니다. 남녀 간의 은밀한 신호를 손수건이나 부채가 담당했었죠. 그저 손수건을 비틀거나 얼굴에 갖다 대는 우아한 제스쳐로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있으며 주위의 시선도 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절 손수건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우아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손수건을 사용한 후 반으로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는 행동은 우아한 태도로 인식되었죠. 행동뿐 아니라 손수건의 색이나 자수에 따라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연인들은 사랑의 시작으로 서로 손수건을 주고받았으며, 끝내고 싶으면 다시 이 손수건을 보내면 되었죠. 여인이 창문에서 자신의 손수건을 던지면 사랑한다는 의미였고, 밑에 있던 남자가 그 손수건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 둘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손수건의 중앙을 잡으면 '오늘 밤 널 기다린다'

손수건을 흔들면 '괜찮아'라는 의미였고,

흰 손수건은 '사랑해'

라일락색 손수건은 '내일 너의 창문에서 기다려, 편지 줄게'

녹색은 '편지 보냈으니 답장 줘'

빨간색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였습니다.



주로 남녀가 함께 만나는 무도회장이나 극장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 대화는 당시 다양한 잡지들에 실릴 만큼 공공연한 대화법이었습니다.

친절하게 교회에서는 사용하지 말라는 팁을 주기도 하네요.


그럼 한 번 간단한 동작을 배워볼까요?


손수건을 접으면 "너랑 얘기하고 싶어"

어깨 뒤로 넘기면 "따라 와"

손수건을 오른쪽 뺨에 대면 "!"

쪽 뺨에 대면 "아니!"

손수건을 뺨에 대고 살짝 쓸면 "사랑해"

손수건을 눈에서 살짝 쓸면 "미안해"

눈에 대고 있으면 "너무해"


제대로 못 외우면.. 의도했던 바와 반대로 상황이 흘러갈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동작은 우아한 제스쳐로 몇 가지 동작을 이어서 표현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했습니다. 사랑하는 상대에겐 손수건을 뺨에 대고 살짝 쓸어내린 뒤 어깨 뒤로 손수건을 넘기는 식이었죠. "사랑해요, 나를 따라와요"라는 신호였습니다. 




그녀가 손수건으로 신호를 보내면 그는 무엇을 이용해 답을 보냈을까요?


바로 모자입니다.

예를 들어, 모자를 이마 깊숙이 당기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걸 알리는 행동이었죠. 이 시절엔 손수건이나 부채, 모자만 사용한 게 아니었습니다. '장갑 언어', '양산 언어', '창문 신호', '테이블 신호' 등등 많았습니다. 진정 남녀는 서로 말로 직접 대화를 나누면 안 되었나 봅니다. 심지어 '우표 신호'까지 있었죠. 편지 위의 우표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 겁니다. 연애 한 번 참 어렵게 했네요..




* 궁정 언어로 친밀한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의미

** 아랍문화권 궁전에서 처첩들이 기거하던 공간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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