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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DA Jan 29. 2019

당신과 나의 은밀한 대화의 도구 II

: 부채의 대화 - FANS


근대시기 여성들의 초상화에 자주 등장하는 F4-손수건, 부채, 책, 꽃 한 송이- 중 하나로 유혹을 담당하던 부채!!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로 손에 앉아 숙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부각시켜주며 그 존재감을 뽐내던 부채는 단순한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서 여성의 감정을 전달해주던 매우 유용하면서도 매력적인 숙녀들의 친구였습니다.


모든 필요는 발명을 낳듯, 사교 모임에 동행한 어머니나 귀부인의 삼엄한 보호와 감시 속에서 연모하던 그와 남몰래 대화를 나누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내야 했던 그녀들과 함께 부채는 18세기 사교 문화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죠. 


                                                                                      





존재 자체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 주며, 우아하면서도 매혹적인 자태로 무릇 숙녀라면 손에 하나쯤은 들고 있어줘야 하는 '잇 아이템'이었던 부채는 많은 화가의 초상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램브란트, 티찌아노, 티소, 피카소, 클림트, 모네, 마네 등 유명 화가들의 사랑받는 피사체가 되어 등장하는데,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부채를 든 여인들의 다양한 포즈입니다.


같은 시기 함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손수건이나 꽃, 책 등은 그 위치나 포즈가 거의 비슷하지만 부채를 든 그녀들은 달랐습니다. 그림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포즈나 제스쳐로 눈길을 사로잡았죠. 마치 보는 이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건네는 듯 말입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은밀한 신호의 도구, 부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부채


그 시초는 권력의 상징으로,

곤충으로부터 파라오를 보호하고 미사의 재단 위에서는 벌레를 쫓았으며, 사무라이들의 무기나 교신을 위해 사용되던 부채가 귀족 여성들의 '은밀한 속삭임'을 위한 도구가 된 것은 18세기 유럽의 궁정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남녀 모두 사용하다 점차 여성들만의 액세서리가 되면서 사랑의 조력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죠.

 

유럽에서 여성의 손에 부채가 액세서리처럼 들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동방과의 교역이 활발하던 16세기부터 입니다. 메디치가의 딸 Caterina가 1533년 프랑스 왕가와 결혼하면서 지참품으로 부채를 들고 가 프랑스 궁정에 소개하면서 곧 유럽 궁정에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이후 18세기 황금기를 거쳐 19세기 빅토리아 시대까지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Caterina는 어떻게 부채를 알게 되었을까요?

1400년대 후반 중국의 접부채가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처음 유럽에 등장하게 되었고, 스페인에 이어 당시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의 상인들 손을 거쳐 그 시대의 트렌드 세터들과 함께 유행으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베네지아의 패션 리더

그들은 바로 베네치아의 Cortigiane (Courtesans) -고급 매춘부- 였죠. 그녀들은 매력적이었으며 잘 교육받았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습니다. 뛰어난 대화술과 훌륭한 궁중 예법으로 무장한 그녀들은 상류층 남성들과 교류하며 시도 짓고 글도 쓰는 등 학문적으로도 높은 지식수준을 뽐내던 궁정의 이었습니다.


Cortigiana에서 'Corti'는 'Corte (궁정)'에서 온 단어로, 꼬르띠지아나는 실제 궁정에서 살기도 했던 베네치아의 그녀들을 일컫는 말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 기생처럼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예인으로 패셔너블하기까지 했던 그녀들은 마음껏 사교계를 휘젓고 다녔죠. 그녀들의 패션은 곧 유행이 되었습니다. 부채도 얼마 안 가 귀부인들의 잇 아이템이 되었고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피렌체의 Caterina의 손에도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한 상징적인 구성으로 가득한 영국 여왕 Elizabeth I세의 초상화에는 특히 부채가 자주 등장하는데, 덕분에 그녀의 초상화를 보면 당시 부채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초중반의 부채는 고대 시절부터 권력을 상징했던 모습과 의미 그대로 주로 타조털 같은 새털을 겹겹이 붙여 만든 둥근 형태였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접이식 부채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접이식 부채와 함께 부채의 언어도 탄생하게 됩니다.



권력의 상징에서 숙녀들의 필수품이 된 부채 위에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어떤 화가의 그림인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로 신분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었죠. 기본 레이스를 시작으로 금박을 두르며 자수, 자개, 거북이 등껍질, 각종 보석으로 장식하는 등 화려함과 정교함으로 무장한 부채는 혼수품목 들어갈 정도로 그 위치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영화 'Marie Antoinette' 중


2006년도 Sofia Coppola 감독의 영화 'Marie Antoinette' 중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에 도착한 앙뚜아네트가 처음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가 자신의 방을 둘러보며 보석함 속 화려한 보석들과 함께 자리 잡고 있던 부채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녀는 익숙한 듯 부채를 들고 포즈를 취해 보죠.



17세기부터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중국의 질 좋은 부채를 수입했지만, 높은 가격에 자체 제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서 때마침 프랑스에서 건너온 부채 장인로 인해 아름다운 부채를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되지요.


그들이 건너오게 된 사연인즉슨.. 1685년 낭트칙령*이 폐지되고 다시 가톨릭의 탄압을 받게 된 프랑스 위그노(개신교도)들은 재빨리 짐을 꾸려 영국 등 자신들을 받아 줄 주변 국가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이 위그노들이 주로 기술자나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르주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기술과 능력 또한 주변 국가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이때 부채를 만들던 많은 장인들도 함께 퍼져나가 유럽 내 부채의 질적 향상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 여성들에게 부채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훌륭한 조력자였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통풍도 잘 되지 않는 답답한 실내에서 코르셋으로 꽉 조여진 몸과 왁스를 기반으로 한 화장으로 인해 쉽게 열이 오르는 얼굴 위에서 연신 움직여 식혀줘야만 했고, 여성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사회 속에서 드러내지 말아야 할 표정 또한 가려줘야 했으며, 보호를 가장한 감시하는 눈초리를 피해 연인과의 사적인 대화 속 신호가 돼야 했죠. 그리고 미소나 윙크, 눈물 등을 은밀히 연인에게만 보낼 수 있게 훌륭한 가림막이 되어주어야 했습니다.




재밌고 유용한 기능으로 오른쪽 부챗살 끝부분에 붙여놓은 작은 거울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주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중간에 눈구멍을 뚫어놓아 얼굴을 가리고도 주변을 살필 수 있는 마스크 부채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수와 각종 보석으로 장식해 놓은 부채는 그 자체로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나타내 주기도 했죠. 이 모든 걸 부채는 혼자 다 해냈습니다.


이렇게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던 부채는 프랑스혁명 시기 동안은 잠시 수수해진 겉모습으로 정치적인 선전이나 중요한 메세지 또는 주요 사건 등을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반혁명파들도 부채를 이용해 왕과 왕실 사람들을 찬양하기도 했죠.


혼돈의 혁명 시기, 대립한 두 반대파의 부채 모두 겉모습은 간소해졌으나 혁명파들이 그저 흰 종이 위에 간단한 그림과 메세지만 적었다면, 반혁명파들은 적어도 스팽글 정도는 달아줬어야 했나 봅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트, 황태자의 그림을 넣고 부채 상단에 스팽글로 신께 'TOUT PUISSANT JE L'AIME MALHEUREUX JE L'ADORE. DOMINE SALVUM FAC REGEM' - '..사랑하는 가여운 왕을 구하소서' 같은 의미의 메세지를 적어 놓았습니다. 부채는 정말 그 시대 은밀한 메세지 세계의 보스인 듯합니다.




Badini와 Duvelleroy의 부채 마케팅


프랑스는 부채 패션의 중심지였습니다. 1700년대에 파리에만 부채 샵이 150여 개에 관련 종사자만 6,000여 명이었을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이러한 메세지를 체계화하고 확산시켜 판매량을 늘리려는 부채 제조업체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상업적인 목적이 바탕에 깔려 있었죠. 18세기에 행해진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역시 세상의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초기에 시도했던 이는 인쇄 디자이너였던 Charles F. Badini로, 그는 1797년 'Fanology'라 명명한 부채 대화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었습니다. 부채 위에 사진과 함께 부채 언어 사용방법과 그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는 이 부채에 따르면 :


1. Move fan with left hand to right arm = A-E

2. Move fan with right hand to left arm = F-K

3. Place fan against the bosom or heart = L-P

4. Raise fan to mouth = Q-U

5. Raise fan to forehead or brow = V-Z


부채 대화는 이 기본 5가지 신호가 뜻하는 알파벳을 조합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공부가 필요할 것 같네요.. 빼곡히 쓰여있는 내용 중에는 'Fanology는 우정을 돈독히 해주고 여자들끼리 담소를 나눌 수 있으며, 혀를 쉬게 해 준다'라 약속도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19세기 중반까지 유럽 최고의 부채 제조사였던 Duvelleroy는 당시 통용되던 부채 신호들을 모아 정리해 소책자로 만들어, 어머니에서 딸로 전수되어 오던 부채 언어를 공고히 하죠. 그는 1827년 파리에 자신의 부띠크를 열어 부채를 사면 이 소책자를 주는 마케팅을 활용해 크게 사업에 성공합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시들해졌던 부채는 이 부채 장인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부흥을 일으키게 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부채 공급업체로 임명된 뒤, 파리에 이어 런던에도 부띠크를 내며 그의 부채는 날개를 달고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러시아의 황후, 유럽의 여왕들이 사랑하는 부채로 명성을 떨쳤고, 먹고살기 힘들었던 I, II차 세계대전 때에는 좀 더 실생활에 필요한 가방을 만들어 팔며 견뎌내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죠.



Duvelleroy의 부채 매뉴얼에 의하면..



펼쳐진 부채를 오른손으로 들고 얼굴을 가리면 “따라와요”

펼쳐진 부채를 왼손으로 들고 얼굴을 가리면 “당신을 알고 싶어요”


부채를 오른쪽 뺨에 대면 “네”

부채를 왼쪽 뺨에 대면 “아니요”


부채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면 “당신과 말하고 싶어요”

펼쳐진 부채를 뺨 위로 부치면 “사랑해요”

부채로 눈 위를 그으면 “미안해요”

접은 부채를 들고 눈을 마주치면 “나를 사랑하나요?”

접은 부채를 보여주면 “오늘 말고..”를 의미합니다.



부채 언어도 손수건 언어처럼 다양한 동작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표현했습니다.

유럽 전체에서 오랜 기간 동안 통용되던 양식이었기 때문에 나라별로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거나 조금 더 복잡해지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18세기에는 부채로 눈을 가리는 것이 사랑한다는 신호였지만 19세기에는 한쪽 손을 심장 위에 대고 Duvelleroy의 예처럼 눈 앞에 부채를 펼쳐놓는 식이었죠. 19세기엔 동작들이 좀 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져 부채만으로도 다양한 표현들이 가능해졌습니다.

관건은 누가 더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제스쳐를 취하느냐 였지요.



.

부채의 그녀들은 소녀처럼 수줍은 듯 신비로웠고 숙녀처럼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이었습니다.

이런 은밀한 메세지의 발달 배경은 당시 시대적으로 엄격했던 사회적 제약 때문이라는 설이 보편적이지만, 그저 낭만적인 개념 이상은 아니었다라고 보는 역사가들도 많습니다.

남몰래 교류하기 위한 신호라는 그 목적보다 방법에 더 포커스를 맞춘.. 은밀함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의 특징이 반영된 일종의 놀이 같은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 낭트칙령 : 프랑스 앙리 IV세가 1598년 선포한 칙령. 종교적으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한 첫 사례.

1685년 폐지가 되고 개신교는 다시 가톨릭의 탄압을 받게 됨.







사진 출처:

www.britishmuseum.org

www.soas.ac.uk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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