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인의 능력
르네상스 시기 여성은 여전히 아버지나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었지만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공주나 왕비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귀족의 여식들이 예술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점차 커졌습니다.
배움의 힘이었죠. 잘 교육받은 여인들은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문학, 피아노, 승마, 활, 춤 등 다방면으로 배우고 지식을 쌓았습니다. 16세기부터는 중산층 소녀들을 위한 교육기관도 퍼졌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줄 알게 된 소녀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식인으로 자라났습니다. 시와 소설을 썼으며, 화학자가 되어 연구하고 자신만의 결과를 도출해 내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했죠. 귀부인들은 서로의 비법을 주고받으며 연구를 발전시켜 갔습니다.
그중 약초, 의약품, 화장품, 연금술 등 직접 연구하고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비법서를 만든 백작부인이 있었습니다.
카테리나 스포르차의 실험서
당대 최고의 여인인 '프리마 돈나{Prima donna d'Italia}'로 칭송받았던 그녀는, 인질로 잡힌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반대파 앞에서 치마를 걷어올려 하체를 다 보인채 "자식은 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다"라고 소리치며 협박에 굴하지 않았다는 전설*로 유명한 백작부인 카테리나 스포르차{Caterina Sforza(1463~1509)}입니다.
똑똑하고 매우 당찬 매력으로 이름을 떨친 카테리나는 아름답기까지 한, 그야말로 지성과 미모를 다 갖춘 여인이었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뮤즈가 되어 작품 속에서 성모마리아가 되고 여신이 되어 등장했으며, 몇몇 학자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모델이 그녀라 주장하기도 했죠.
* 마키아벨리에 의해 널리 퍼진 이 이야기는 과장된 전설로, 카테리나처럼 위엄 있고 존경받는 르네상스 시대의 여인이 치마를 걷어올려 보이며 대응했다는 설에 학자들은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남편을 잃은 카테리나는 당시 임신한 상태였고 정적들이 그녀에게 복종을 강요하며 인질로 잡은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손가락을 이용한 저속한 제스처를 하며 “이미 몸속에 또 다른 아이가 자라고 있다”라고 대응한 정도였다.
그녀는 훌륭한 과학자이자 의학자였습니다.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 그녀는 자신의 생애를 바쳐 기존의 여러 치료법을 수집해 다시 자신만의 검증과정을 거쳐 확인했고,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며 연구한 내용을 기록한 [실험서]를 남겼습니다. 우울증까지도 포함된 여러 질환을 다루는 방법과 미용 비법이 담겨있는 이 실험서는 가짜 귀금속을 만드는 연금술도 포함된 멋진 비법노트였습니다.
암살, 독살, 음모, 복수가 난무하던 시절에 궁정 여주인의 이러한 능력은 그 어떤 물리적인 무기보다 유용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독약'은 가장 잘 나가는 히트 상품이었죠. 카테리나는 이 비법들을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로 작성해 아무나 읽을 수 없게 했으며, 일부 연금술이나 독극물에 대한 내용은 암호화시켜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는 이들끼리 몰래 서로 이 비법을 주고받으며 동맹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는 돈독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시대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미백과 금발에 대한 시대의 집착
중세에 이어 르네상스시대에도 '흰 피부와 금발'은 확고한 미의 상징이었습니다. 시인 페트라르카{F. Petrarca(14세기)}는 시에서 이 흰 피부를 '우유처럼 하얀 피부'로 표현했죠. 높은 지위의 상징인 하얀색은 동시에 순수함과 순결한 여성을 의미했고, 금발도 내면의 순수함을 상징했습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흰 피부와 금발 대한 선호는 피부가 녹고 탈색과 염색으로 인해 대머리가 되는 무서운 결과도 감수하게 만들었습니다.
금발을 위한 비교적 간편한 염색방법도 있었는데, 허브를 끓인 물이나 명반, 검은 유황, 꿀, 올리브 오일, 소변 등을 섞어만든 혼합물을 스펀지로 머리카락에 펴 발라 장시간 햇볕에 노출시켜 탈색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베네치아 금발{Biondo Veneziano}'은 그 특징적인 붉은색 금발로 인기가 많았는데, 이를 위해 여인들은 '젊음의 물'이라 알려진 특별한 염료를 바른 뒤 가는 밀집으로 만든 위가 뚫려있고 챙이 넓은 모자 위로 머리카락을 널어놓고 햇볕이 가장 쨍한 시간 동안 지붕 위 테라스*에 나와 있었습니다. 염료는 서로 조금씩 달라도 베네치아 여인들은 아름다운 구릿빛 금발을 연출해 내는데 선수였다고 합니다.
* 지붕 위에 테라스(정원)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 건축양식의 특징으로, 지붕 위에 설치된 독특한 테라스다. 빨래를 말리고 일광욕을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는 생활공간이자, 접근하는 배를 감시하고 탐지하기 위한 방어시설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집에 작은 정원으로 꾸민 옥상 테라스가 있다.
하얀 피부를 위해 저녁에는 레몬즙과 달걀흰자를 섞어 만든 마스크를 하고 아침에는 백납과 식초를 섞은 미백제와 쌀가루가 섞인 파우더로 창백함을 더한 뒤, 볼에는 붉은 납이 포함된 화합물을 발라 발그스레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더욱 창백하게 보이기 위해 여인들은 얼굴에 혈관을 그려 넣는 세심함까지 발휘했죠. 하얀 가면처럼 보이는 얼굴은 여인이 웃기라도 하면 갈라졌습니다.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했던 카테리나도 매끄러운 피부를 위해 납, 칼륨, 은가루 등을 비둘기 뱃속에 넣어 끓인 물로 세안하고, 탐스러운 금발을 위해 허브와 유황을 섞어만든 로션을 발라주었습니다.
화학에 대한 열정으로 연금술까지 다뤘던 그녀의 연구는 대부분 의학에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여러 미용 비법도 수록되어 있었죠. 그래서인지 당시엔 나이가 많은 것으로 여겨지던 36살의 나이에 카테리나는 10대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카테리나의 비법들 중에는 얼굴을 희고 생기 있게 만들기, 탈모 방지 및 머리카락 자라게 만들기, 금발 만들기, 상아처럼 보이는 흰 손 만들기, 염색 및 파마하는 법, 당시의 미적 기준에 따라 가슴을 작게 만드는 방법 -큰 가슴은 우아하지 않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겨짐- 등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추구하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의 추구미는 '순수함'과 '우아함'이었습니다.
천상의 물
당시 미용에 관한 비법은 연금술 비법만큼이나 돈이 되었으며 귀했습니다. 유럽의 물은 현대에도 석회수가 많이 섞여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살짝 미끌거리는 물로 세수를 한 후에는 화장수로 닦아주는 것이 필수일 정도입니다. 미세한 석회가루가 쌓이며 모공을 막아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짐작되는데, 이러한 잔여물을 깨끗한 액체로 닦아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화장수가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피렌체 한 수도원으로 시작된 약국의 장미 화장수는 오늘날에도 매우 유명하죠.
카테리나의 미용 비법은 많았지만, 그중 단연 최고 히트작은 '천상의 물'이었습니다. 카테리나는 장미수에 다른 재료를 섞어 '천상의 물'을 개발했습니다.
천상의 물
재료:
정향, 로즈메리, 육두구, 생강, 고추, 후추, 바질, 오이껍질, 세이지 잎, 마조람 잎, 박하 잎, 흰색과 붉은 장미, 삼부쿠스, 말린 무화과, 아니스 씨앗, 박하 씨앗, 유향유, 향나무속유, 생수 등등
방법:
1. 식물과 향신료는 가루 내어 준비한다.
2. 좋은 물을 다섯 번 증류시켜 생명수를 만든다.
2. 생명수에 가루 낸 재료를 넣고 이틀 동안 밀폐한다.
3. 약한 불로 천천히 증류한다.
4. 하얀색 물이 나오면 용기에 담는다. 천상의 물 획득!
들판을 갈아 넣은 듯 온갖 허브들의 향연으로 세이지, 바질, 로즈메리, 민트, 장미 등 30가지가 넘는 허브를 긴 시간의 증류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는 귀한 물이었습니다.
천상의 물은 그저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물은 만병통치는 물론 일주일에 두세 번 이 물로 얼굴을 씻으면 피부가 젊어지고 건강을 유지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이름도 천상의 물이었던 이 화장수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그런 신비의 물이었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주님의 기도를 3번 바치면 신의 도움으로 나을 거라는 저자의 설명이 있긴 합니다. 일종의 믿음의 물이었던 거죠.
연금술과 가정의학의 시대
당시엔 카테리나 스포르차 외에도 연금술을 연구하고 약초에 능한 귀부인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처럼 바로 병원을 갈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아니었기에, 집안에 누군가 아프면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죠. 집안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던 안주인들은 공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정에 필요한 모든 것 -약, 화장품, 비누 등- 은 집에서 만들었고, 부유한 가정에는 허브를 키우는 넓은 정원과 약초를 추출할 수 있는 증류실이 설비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약재상은 있었지만, 수도원에 의해 설립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쟁과 무서운 자연재해로 격동의 시기를 보낼 때마다 수도원은 사람들을 돌보며 도왔습니다. 수도원의 넓은 정원에서는 여러 향신료와 약초가 재배되었고, 수도사들은 이것들로 약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약국 옆에는 궁핍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병원{Hospitium}이 자리했죠. 수도사들은 연구하며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기도로 신께 의지했습니다. 육체의 치료보다 영혼의 치유가 더 중요하고, 믿음으로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카테리나 또한 수녀원과 가까이 지내며 조언을 얻었습니다.
의학적 기초를 탄탄히 다진 카테리나 스포르치는 오늘날 이탈리아어로 '의학적, 의사' 등의 의미를 갖는 메디치{Medici}*에 가장 적합한 가문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녀는 초대 토스카나의 대공이 된 코시모 1세 데 메디치의 친할머니였습니다.
* 가장 성공한 상인 가문으로 꼽히는 메디치가는 상업과 은행업으로 돈을 모았지만, ‘성’을 보면 이탈리아어로 의학 또는 의사 또는 약물을 뜻하는 '메디코{Medico}'이기 때문에 선조들이 의학 관련자들이거나 약재상으로 돈을 모았을 거라는 설이 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기록은 13세기부터 있기 때문에 그 전의 선조에 대해서는 전설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중 유명한 두 가지 설은:
- 의사였던 조상이 아픈 교황을 치료해 준 뒤 그 보상으로 약을 상징하는 가문의 문장 -문장 속 6개의 공 모양이 바로 교황을 치료한 약을 나타내는 것- 을 받았다는 설과,
- 초대 조상으로 꼽히는 사람인 '포트로네의 메디코{Medico di Potrone(c. 1046-1102/1121)}'는 피렌체 북쪽 무젤로 지역 마을 포트로네 출신으로, 단순한 농부였다는 설도 있으나 1030년 이후 포트로네 성주가 되었는데, 그의 확실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포트로네의 메디코'라고 불렸다. 메디코는 '의사, 치료의'라는 라틴어 '메디쿠스{Medicus}'에서 유래되었는데, 메디쿠스는 고대 로마에서 약초를 다루고 사람을 치료해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기 때문에 그가 사람들을 치유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 그렇게 불렸고, 곧 가문의 성이 되었다는 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