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피부나 미모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지만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까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가 부활하고 인간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찾던 르네상스 시절, 작가이자 수도사 아뇰로 피렌주올라(1493-1543)가 자신의 저서에 써놓은 당시 미인의 기준을 보면...
'갈색에 가까운 따뜻한 느낌의 굵고 긴 금발, 빛나는 맑은 피부, 흰자 속 푸른 기운의 동공에 크고 표현력이 풍부한 깊은 눈, 곧게 뻗은 코, 작지만 두툼한 입, 보조개가 있는 둥근 턱, 둥글고 긴 목, 길고 도톰한 부드러운 손, 긴 다리와 작은 발'을 지녀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o_o;
서양 미인의 스테레오 타입은 꽤 오래전에 정의되었나 봅니다.
하지만 당시엔 기준만 높았을 뿐, 비위생적인 환경에 영양상태도 좋지 못했으니 피부는 맑게 빛날 수 없었고, 머리는 푸석했으며 염색해야 했을 만큼 금발은 드물었죠. 그래서 돈 많은 귀족 여인들은 더욱 특별한 자신만의 비법이 필요했습니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의 손
메디치 가문의 자손 카테리나 데 메디치(1519-1589)는 카테리나 스포르차의 비법을 활용해 스스로를 가꾸며 프랑스에도 전파했습니다. 그녀는 집안의 어른이었던 카테리나 스포르차를 기리기 위해 '카테리나'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비법 덕분인지 좋은 피부의 소유자였던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특히 손이 하얗고 예쁘기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름다워지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희고 고운 손을 위한 자신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었지요.
희고 고운 손을 위한 비법
재료:
잘 익은 사과 2개, 정향 16개, 장미수, 밀가루
방법:
1. 껍질 벗긴 사과를 4등분한다.
2. 정향을 두 개씩 등분한 사과에 밀어 넣고 그릇에 담아 사과가 잠기도록 장미수를 넣는다.
3. 그대로 하루동안 놔둔 뒤, 10분간 끓인다.
4. 사과에서 정향을 제거하고 으깬 다음 밀가루를 섞어준다.
5. 손에 펴 발라 한 시간 동안 놔둔 후 따뜻한 물로 헹군다.
6. 일주일에 한 번씩 해주면 당신의 손도 이제 여신의 손!
디안 드 푸아이에의 금
존재만으로 평생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괴롭히던 남편의 애첩 디안 드 푸아이에(1499-1566)는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추앙받았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미녀의 기준은 그녀의 모습에서 정의되었다고 하죠.
디안은 특유의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어 작품 속에서 여신 -디아나, 비너스, 미네르바- 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가 사냥의 여신 디아나로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했죠.
남겨진 초상화들의 모습이 상이해 진실의 여부는 파악할 수 없으나, 60대에도 30대처럼 보이는 늙지 않는 미모를 자랑했다던 디안에겐 그녀만의 미용 비법이 있었으니... 바로 '금'이었습니다. 그녀는 연금술사의 도움을 받아 금이 섞인 액체를 만들어 매일 마셨죠. 고대부터 금은 태양의 힘을 부여해 줘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노화를 지연시켜 준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20살 차이가 나서였을까요?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남달랐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차가운 샘물에 몸을 씻은 뒤, 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인 물 한잔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 숲에서 3시간가량 수영과 말을 타며 운동을 했습니다.
맑은 눈을 위해서 매일 양파껍질을 까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잘 때는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높고 푹신한 베개에 똑바로 누워 얼굴을 고정해 잠을 청했고, 가장 효과적이었던 정제된 금을 매일 마셨습니다. 사실 디안이 가장 사랑한 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힘든 매일의 과정을 수련하듯 해낼 수 있었죠.
디안은 죽기 1년 전 말을 타다 넘어져 뼈가 부러졌는데, 그때 진료한 의사에 의하면 그녀의 피부는 '놀라울 정도로 창백'했다고 전해집니다.
2009년 프랑스 발굴팀은 디안의 가늘고 약한 뼈와 부서질 만큼 가는 머리카락에 치아는 거의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발과 유골을 분석한 결과 그녀에게서 보통사람보다 500배나 많은 금과 다량의 수은이 검출되었죠. 날씬하고 빛나는 흰 피부를 자랑했던 디안은 사실 금 부작용 -뼈와 이, 머리카락이 약해지고 빈혈, 구토와 설사, 거식증 등- 에 평생을 시달리며 자신의 젊음을 지켜준다 믿었던 금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간 것이었습니다.
평균 수명이 35*세이던 시절 66세까지 살았으니 매우 장수한 셈이지만, 연구자들은 만약 금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운동선수처럼 관리가 잘 되어있던 그녀가 훨씬 더 오래 살았을 거라 추정하죠.
* 16세기 유럽의 평균 수명은 35세로 마지막 5년은 노년기로 보았지만, 사실 영유아의 높은 사망률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스크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패션 리더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는 처음부터 패션을 선두하고 그렇진 않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딸들은 외교 체스판 위의 말이었고, 언니들에 이어 어차피 외국으로 시집갈 막내딸 앙투아네트를 자유분방하게 자라도록 놔두었죠.
마담 퐁파두르에게 손수건을 던졌던 루이 15세는 손주 며느리가 될 앙투아네트가 외적으로도 자유분방하게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미용사와 옷을 오스트리아로 보내고 치과의사까지 파견해 이를 자주 닦도록 시키라 명했습니다.
당시 미인의 기준이었던 금발에 파란 눈의 이 소녀는 프랑스로 건너와 아름답게 치장하는 법을 배웠고, 그녀만의 미용 루틴을 지키며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피부가 좋았던 그녀는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썼는데, 당시 만연했던 백납과 수은 화장품의 부작용으로 이른 나이에 피부가 망가져버리는 궁중여인들을 보며 천연 화장품에 눈을 돌렸던 거죠.
삶은 비둘기 8마리가 들어간 클렌져 '비둘기 화장수'로 얼굴을 씻어준 후, 5-6월 포도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를 모아 만든 '매혹수'로 피부를 수렴한 뒤, 미백 효과와 안색을 맑게 해주는 토닉 '천사의 물'을 발라 피부 톤을 조절했습니다. 이 '천사의 물'은 피렌체의 아이리스 꽃잎· 벤조인· 정향· 레몬 껍질· 계피· 육두구 등을 장미수와 레몬밤수에 넣어 밀폐시킨 뒤 증류시켜 만들었죠.
그리고 싱그럽고 홍조 띤 얼굴을 위한 그녀만의 마스크로 도자기 피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여인들이 아직도 활용한다는 이 마스크는 만들기도 매우 간단합니다.
도자기 피부를 위한 마사지
재료:
레몬 1, 코냑 2t, 달걀흰자 1, 분유 1/3 컵
방법:
1. 레몬을 즙 내어 준비한다.
2. 레몬 즙에 모든 재료를 섞어준다.
3. 얼굴에 펴 바르고 15분간 놔둔 후, 따뜻한 물로 헹군다.
4. 보습제로 마무리한다.
당시 귀부인들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희고 고운 손을 위해서는 장미수와 아몬드 오일, 왁스로 코팅된 장갑을 끼고 잤습니다. 덕분에 그녀의 손은 매우 부드럽고 매끈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