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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Aug 24. 2022

동생과의 대화 -

나의 복된 존재

핸드폰이 오래되어 사라지거나, 분실하거나, 지워질 수 있다. 늘 그렇게 사라져 가서. 누군가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겠지만 나에게만큼은 특별하고 소중한 우리의 대화를 어딘가에 저장해 두고 싶었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언젠가 공기처럼 흩어질 테니까. 흩어지지 않게 잘 모아 너와의 대화를 기록하기로 했다. 


동생에게 전화해 '너의 이름이 나의 글 속에서 어떻게 불렸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 애는 '민들레'라고 했다.


전시장에서 본 그림들을 주고받다가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그림이야.”라며 민들레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민들레 : 이 그림이 왜 좋아?


나 : 내 마음 상태 같아서. 

      위로가 돼. 뭔가 다각적으로 해석도 가능하고.


내 속에는 끔찍한 일이 널브러져서 사라지질 않았다. 저기 떨어지는 쓰레기차와 또 뭘 놓치고 싶지 않은 건지 쓰레기가 떨어지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고 뛰어가는 나. 나의 고통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나의 고통은 나 외의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고통스럽지만 나조차도 그 고통을 돌아볼 여력이 없는 그 마음 자체를 이 그림이 위로해 주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한참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지나니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해졌다.


나 : 쟤네가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는 애들이었는 데 다 같이 바다 가고 싶었건 거야. 그래서 일하다 말고. 몰라. 남들이 쓰레기 줍든지 말든지 하면서 바다로 가는 걸 수도 있어.

민들레 : ?!?!?!?!?!?!?!?!?!?!?!?!?

            그럴지도


나 : 그리고 다른 이들은 오 반항하네 재밌게 사네 하고 쳐다보고

      저 쫓아가는 애는 딴짓하다 놓쳤거나



민들레 : 아니면 바다로 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싫어서. 한 명이 나 안 간다! 하고 내렸는데 나머지가 응 그래 하고 가버리니까.


나 : 평소에 재수 없게 구는 애일 수도

민들레 : 그 한 명이 아니라고 다시 태워달라고 하는 걸지도.


나 :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아(심한 말) 우리의 아름다운 바닷 마을 다 더럽혔네 하며 내적 분노로 나중에 입증하려고 쳐다보는 걸지도.


나 : 아니면 저 쫓아가는 애의 방귀 냄새가 쓰레기 냄새보다 심한 거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넌 화장실 갔다 와라 한걸지도. 

우린 저기 가서 음료수 뽑아먹고 있을게 하고. 근데 저 뛰는 애는 화장실 안 마렵고 그냥 자기도 그 유명한 음료수 집 가고 싶은 거지.


민들레 : 아니면 저 뛰어가는 애가 운전하는 애한테 자꾸 잔소리하고 자기는 계속 운전도 안 하는 주제에 애들이 화가 나서 버리고 가는 걸지도.


나 : 그럼 그 상황은 바다로 가는 상황이겠다. 오는 상황이기엔 그런 애를 애초에 안 데려갈 듯. 








나 : 아니면 저 지역에 저 남자애가 좋아하는 여자가 사는 거지. 자꾸 고백을 못한다 두렵다 이 짓을 해서 애들이 사우나 또는 스파 앞에 옷이랑 던져주고 가서 씻고 마주해! 했는데. 아니야아아아 난 못해애애애애 하고 뛰는 걸지도.



민들레 : 마지막 꺼가 가장 마음에 든다 ㅋㅋㅋ


나 : 로맨스 파군 우리 동생


며칠 뒤 넌 그렇게나 맛있다던 홍진경의 수필을 보내주었고, 난 며칠 뒤 네가 내게 수필을 보내준 것을 기억하다가 웃으며 답필을 보내주었다.


아니 내가 오늘 퇴근하고 경의선 숲길 어디 눕고 싶어서 정자로 갔는데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정자 가에 앉아계신 거야. 어쩌지 저기 앉을까 두리번거리다 그냥 정자 앞 벤치에 널브러졌는데 저기서  
작게 소리가 들리는 거지.
“아이고. 어디 아픈가?”
“피곤한가?”
그다음 작게 들려온 소리에 피곤함이 가졌어.     
“아이고. 당 떨어지면 저랴~”     
할머니들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직 내 뒤에 앉아서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이고 몰랴”하면서 자신들만의 언어로 대화중이셔.


너는 내 수필에 딱히 대답은 없고 며칠 뒤 장문의 글을 보냈다.


민들레 : 차라리 그때가 나았을 것 같아. 언제 올까 기다리고 설레며 순간순간 행복하고 받았던 것들을 되돌아보며 미래를 상상하고 기다리는. 

지금은 너무 손쉽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듯이 너무 빠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판단하게 돼.

그리고 그 판단을 뭔가 바보상자에게 내어준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져. 좋은 사람 하나 없이 속상함만 남아있는 기분이 너무 별로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 알 것도 같았다.


나 : 맞아. 그런 기분 참 별로지. 하지만 시간이 물이고 우리의 물감 같은 감정도 서서히 옅어져서, 언젠간 써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색들을 쓰며 놀라는 날이 올 거야. 살면 살수록 신기한 일들이 참 많고, 흥미로운 것 같아. 탐구하는 마음으로 살자. 다만 네 마음에 색이 너무 많아 검정이 되었다면 물을 좀 섞어보도록 해.

사랑해.


난 또 언젠가 너에게 고백했다.


나 : 난 동생과 여행을 가던 데이트를 하던 온전히 둘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리고 그저 이 말이 하고 싶어서 적는 거야. 나중에 우리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자. 사랑해 내 사랑 동생아. 오늘도 좋은 하루 되길-


민들레 : 좋아 언니. 꼭 그러자 사랑해.


민들레 너는 언젠가 내게 브런치의 글을 보냈다. 누구의 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글 자체가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니 나도 여기에 옮겨보도록 한다.


-낭만적 사랑     
낭만적 사랑은 아무 의미도 없고 차가운 세상에 의미를 준다. 사랑은 자율적인 개인들로 구성된 외로운 군중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타인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타인과의 분리를 극복하고, 끝없이 선택해야 하는 삶에서 휴식을 얻는다. 또한 최소한 짧게나마 모든 의심과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거나 갖고 싶다는 욕망은 재산을 소유하고 축적하고 싶다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현대 소비사회는 물건을 팔기 위해 일부러 낭만적 사랑을 이용하기도 한다. 사랑을 이용한 판매 전략은 낭만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을 문화의 최고점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앨런 맥팔레인 지음>

민들레 : 낭만으로 이득을 취하고 사랑을 사고 팔려하는 세상 속에서도 나는 온전한 낭만을 잃고 싶지 않아.


나 :  너무 좋다 너무 좋은 말이야.

       맞아. 이득과 낭만을 한 종이에 쓰는 건 낭만과 사랑을 모독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사람들은 이용할 수 있다면 뭐든 이용하고 싶어 하지. 사실 나도 글을 쓰며 그것이 이용인가 마음의 표출인가를 생각하곤 해. 그리고 갈팡질팡하지. 그래서 글 쓰는 일과 사는 일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아.

사랑해 내 동생.


며칠 뒤 너는 노래를 한 곡 보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uR9L0M9D5s

<우리 사랑은 / 찰리 빈 웍스>


민들레 : 요즘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일부.


나 : 우와 너무 좋아.


나는 한참이나 민들레가 보내준 노래를 들었다. 가슴이 아프며 슬픈데 좋았다.


나는 민들레를 한번 웃겨보려고 아버지와의 일화를 과장되게 엮어 보냈다.

엊저녁은 유달리 집에 일찍 도착했다. 운동을 하는 날도, 야근을 하는 날도 아니었기 때문에-
때 이른 저녁에 돌아온 큰 딸과 마주 앉아 아버지는 누룽지 통닭을 뜯으시며 말했다.
민들레가 서울 왔데.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난. 정말? 하며 눈을 번뜩였다. 
그럼 오늘 집에 오겠네?
나는 순간 산책을 다녀와 민들레와 나눌 이야기들에 마음이 들떠 괜스레 미소가 새어 나왔다.
민들레가 섬살이를 한지도 어언 일 년이 다 되어갔다.
친구 만난데, 친구랑 공연 보고, 내일은 치과 간다나 봐.
?
그럼 집에 와?
친구 집에서 잔데.
순간 모든 정보가 의미를 잃었다. 내 동공도. 그럼 이 모든 이야기를 들어 무얼 하나 생각하며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 입가로 얄궂은 미소가 새어 나온다.
동생이 온다는 말에 괜히 내가 기뻐할 걸 알고 중요 정보를 마지막에 흘렸다.
음. 낚였다.


그 뒤로 너와 나눈 대화는 근근이 브런치에 올렸다. 나는 브런치에서 네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 전화할 때마다 컬러링이 시끄럽다기에 가장 잔잔한 노래 중 가장 나다운 노래를 골라 바꿨다. 나에게 전화할 때마다 네가 잔잔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나는 산책 중이라던 너의 사진을 보았다. 네 말대로 저 멀리 작게 바다가 보였다.


너는 오늘도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민들레 : 나는 이상하게 날짜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어. 지나온 날이 아닌 다가올 날짜들을. 그리고 작지만 중요한 목표들을 세워. 자주 지켜지지 않고 지나가지만 꿋꿋하게 계속해서 같은 계획을 세우더라도 날짜 들여보기를 멈출 생각은 없어 보여.


나 : 오 멋져. 목표는, 목적지는, 이상하게 들여다볼 때마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위치를 알게 해 주고, 내가 가야 할 곳을 몰래 속삭여주지. 나도 다가올 날들을 들여다봐야겠어.

사랑해 나의 복된 존재.


나는 왜일까 오늘 민들레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우리의 소중한 작은 시간들이 기억되길 바래서

근래 너와 나눈 아름다운 말들을 조용히 작게 적어보았다. 


사랑해. 나의 복된 존재.

나의 민들레.


오늘 네 꿈에 한가득 민들레가 나오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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