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점심, 정 주임님과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정 주임님께서 이번 달까지만 나오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를 빼고 대부분은 알음알음 알았나 봅니다. 엊그제 “제가 이번 달까지만 나와서-”라고 하시기에 급하게 점심 약속을 잡았던 것입니다.
주임님은 회사에서 꽤 힘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전에 국어 선생님으로 일하셨는데, 편집일은 처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 주임직을 주어서, 이 사실도 입사한 첫날 알게 되어서 꽤 당황스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를 다니며 시스템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저도 숱하게 가졌기에, 그녀의 선택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녀는 어딘가 단념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퇴사를 하고는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으레 하는 말들을 내뱉으며, 내 몫까지의 후련함을 느끼길 바라며 당신에게 잘맞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길 바란다는 축복의 말을 전했습니다. 과연 그런 회사가 존재는 하는지, 네버랜드에나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지만요.
이별이 슬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알게 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임님 전에도 다른 주임님께서 세 달을 채우고 그만두셨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고, 그때도 이별이 슬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이별이 나에게 큰 의미를 가졌을 때는 늘 그나 그녀의 존재가 내 삶에서 소중한 의미를 가진 때였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때때로 이별 앞에 슬퍼하는 이들을 보며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나는 떠나는 편에 속해서. 친구를 떠나 전학을 갈 때마다 내 앞에서 우는 친구를 보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우는 걸까. 뭐가 슬픈 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자주 마주치는 친구처럼 이별을 이해하게 되나 봅니다. 요즘은 오히려 아주 가끔씩, 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마지 지금 일처럼 가슴이 아릿해집니다.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이제와서 이런 마음을 느껴도, 그때 울었던 친구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없는데 말입니다. 감정이란 것은 참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나 봅니다.
이번에도 딱히 슬프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비 오는 날 무단 횡단은 하지 않는다며 그냥 지나가면 될 거리를 굳이 저 먼 횡단보도까지 가서 돌아 돌아오는 그녀가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와 빗길을 뚫으며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저번 주임님 때도 이러더니. 이번에도 이럽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또 모르는 새에 정이 들었나 봅니다. 왜 이런 감정들을 늘 이렇게 늦게 깨닫게 되나 모르겠습니다.
회사로 들어와 생각해보니 새삼스레 무단 횡단은 않는다는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털 난지 오래인 제 양심도 들여다봐야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멍하니 앉아 생각하다가 왜 연결고리도 없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삶에서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다고. 내 세상은 안 되는 것들로 가득해서 그렇게 걸으면 안되고, 그렇게 말하면 안되고, 그렇게 행동하면 안되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게 너무도 많았다고.
덕분에 나는 겉보기에는 준수한 어떤 인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머리가 좋고, 말을 잘하고, 원한다면 사람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꽤 부러워할만한 것들을 가지게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난 자주 이런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를 생각합니다. 뭐. 살기에 편하면 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늘 내 마음이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써야 할 때면 난 늘 작아져야했습니다. 어떻게 감정을 처리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걱정도 하고, 멍청한 짓을 하는 내가 미워지고, 또 후회를 반복하고는 했습니다.
너무나도 작은 감정들을 "보잘것없어!"라고 해놓고서, 그것들을 밀어낸 세상에서 나 혼자만 평온한 채로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봅니다. 보잘것없다고 여긴 어떤 끌림, 슬픔, 외로움 따위의 것들에 나는 자꾸만 흔들리고 자꾸만 마주 보아야 해서 나는 괴롭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더 힘이 들고는 하네요. 그러다가도 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당시에는 너무나 담담한 나 자신을 발견하면 다른 이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처럼 내가 싸이코패스인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내가 잘못된 인간인 게 아닐까요?
난 그런 생각을 참 자주 했습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내가 이상한 게 맞는 것이라 생각하여 누군가가 내게 말하는 그러면 안된다거나 저러면 안 된다는 따위의 간섭을 충언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나를 고치려는 사람이 참 많아서 나는 그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아주 가끔 아주 당연스럽게 내가 잘못된 인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로 사는 것에는 왜 이리도 제약이 많은 걸까요?
늘 나는 이러면 안 되고 저러면 안 되니까요. 대체 누구의 기준인 걸까요. 누구의 기준에서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편적 다수의 인간에 맞춰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희생하고 포기해야 하는 일은 맞춰 사는 일일까요? 아니면 나를 포기하는 일일까요?
물론 답은 없겠죠.
하지만 난 더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소하디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의 말과 기준에 따르며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러면 안 된다는 일들은 누군가를 해치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하고싶은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기준이 타인에서 나로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나는 아직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때로는 그들이 나에게 강요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는 딱히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안돼" "안돼"하고 내 목덜미를 잡아도 결국 결정은 나의 것입니다. 될지 안될지는 내가 결정하겠습니다.
내가 내가 아닌 채로 살아온 시간 뒤에서, 나는 아직도 나로서 느끼는 감정들에 작아지고는 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외면하지 않고 뒤로하지 않은 채 내가 느끼는 작은 마음들을 보살피면서 자연스러운 나로 살아야겠습니다. 당신이 나를 오해하더라도. 당신이 나를 싫어하게 되더라도. 안된다는 수많은 말들을 뒤로한 채로 이렇게. 이렇게 살겠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냥. 날.
나로서 마주하겠습니다.
오늘 나는 미세한 헤어짐의 슬픔을 발견했습니다. 이별은 서글픈 것이나. 꾸며냄 없이 마주한 이 감정이 흥미롭기도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덕분에 한발 더 마음을 이해하는 길로 다가선 것 같습니다.
오늘 당신도 스스로의 모습으로 자신의 마음을 마주했나요?
오늘 당신이, 당신 가슴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