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써본 오래전 어느 날
글, 글, 그리고, 글
성주에 온지도 벌써 이주일이 지났다. 주중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아니면 시즌이 아니라 그런가. 아직 수리할 곳이 남았는지 목재 일하시는 두 분은 땡볕에서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며 캠핑장 이곳저곳을 수리 중이다. 아버지와 아들 둘이서 함께 목공 일을 하시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난 때때로 함께 점심을 먹으면 어떨까 하여 그 두 분의 몫까지 만들었는데, 아버지는 두 분을 단 한 번도 식사에 초대하질 않았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아마도 그 아들이 내 나이 또래이고, 혹시나 우리 둘 사이에 뭔가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이상한 노파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알 수 없는 이유 따위를 생각해보았으나, 이유는 오직 아버지만 알 뿐이었다.
가끔 잠에서 깨 바깥을 걸으면 작은 개구리들이 뛰어다니는 걸 본다. 2층 숙소에서 내려와 바깥 뒤편 텅 빈 수영장에는 개구리가 한가득이다. 난 살면서 이렇게 많은 개구리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어떤 불쾌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보다 보니 귀여웠다. 생긴 것이 마치 젤리 인형 같기도 했다. 어린 개구리들은 더 귀여웠다.
습기 찬 마당을 돌아가는데 한 포대 약을 들고 가는 아버지 뒷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약을 풀지 않으면 뱀들이 돌아다닌다고 했다. 뱀. 언젠가 놀이공원에서 뱀이 탈출한 적이 있다. 해리포터도 아니고 내 앞을 버젓이 지나가는 그 뱀을 나는, 나만 보지 못했다. 나중에 친구들이 이야기를 해줘서 알게 된 후로 이렇게나 아쉬울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방생한 뱀을 보지 못했다.
이 날은 나의 가족들이 놀러 오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편의점 정비를 마칠 겸 하여 수영장을 돌아 유리문을 열고 후덥 지끈하게 달궈진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음료수 기구 때문인지 찜질방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창을 전부 열고 청소를 하고 돈을 정리하고 앉아 멍하니 매미 우는 바깥을 보았다. 목재를 만지다가 온 그 오빠는 나를 보고 씩 웃는다. 그리고는 편의점으로 들어와 내게 손을 내밀어보라고 한다.
“눈은 감고.”
그 오빠가 내 손 사이로 뭔가를 밀어 넣었다. 눈을 떠보니. 개구리였다. 아마 풀숲 사이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다른 도시 여자애들처럼 소리를 빽 질렀겠지마는 이제는 개구리가 눈에 익어 그리 징그럽다거나 나와 온전히 다른 것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귀엽네.’
생각하며 손에 놓인 개구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개구리를 만지는 건 처음이라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 오빠는 내 반응이 기대와 달랐는지 나를 보더니 다시 씩 웃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 주간 매일 보고 지내면서 이런 성격인지는 처음 알았다. 아빠는 왜 친하게 지내면 될 것을 같이 밥 한 번 먹지 않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때때로 저 언덕 위로 올라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저것을 거대한 시냇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강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자갈 위를 흐르는 물은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마치 평온한 자연이 날 집어삼키는 기분이었다.
밤이 되면 들리는 고요한 소리들이 강물을 보면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 언덕가에 서서 강물을 보았다. 강일까 시냇물일까.
저 멀리서 낯익은 차가 보였다. 가족들이 도착한 것이다.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 온 가족 사이에는 나의 어머니도 있었다.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와 고모는 청국장을 끓였다. 참 맛있는 청국장이었다. 고모는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좋은 시누이의 역할을 다하려는 듯했다. 두 사람의 재결합을 위해 애쓰는 시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부모님이 서로를 만나게 될지 한순간 궁금했지만,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우리는 밥을 먹고 강으로 갔다. 정강이 언저리에서 흐르는 강물에 앉아 흐르는 물을 느끼는데 분위기가 싸했다. 옆에서 친척동생의 아주 작은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고개를 돌리자 주황색 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뱀은 나의 사촌 동생 몸을 감싼 채로 나의 눈을 또렷이 보고는 바로 물속으로 헤엄쳐 사라졌다. 순간 굳어버린 고모와 나와 사촌동생은 잠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물에 앉아 있다가 동생이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나 물렸어.”
잠깐. 잠깐. 그 뱀의 머리가 둥글었던가? 아니면 뾰족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젠가 본 만화책에서 10센티가량 위를 끈으로 묶고 독을 빨아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독을 입으로 빨 때 빨아내는 이의 입 안에 상처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잠깐. 내 입 안에 상처가 있던가?
혹시 모르니 그 애 다리에 끈을 묶고 비닐을 대고 빨았다. 얼마 뒤 응급차가 오고 그 애는 병원으로 갔다. 참 별일이 다 있다며 우리끼리 걱정을 하는 찰나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뱀에 물려서 액땜했다고 하였으나 내심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풀잎 사이로 벌레들이 등불 안가로 날아들었다. 손바닥보다 큰 나방들이 벽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저것들도 처음엔 징그럽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여전히 징그럽다. 나방은 개구리와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며 내가 지나가도 날아오르는 나방이나 벌레가 없다는 걸 알고는 마음 편히 다니게 되었지만, 저것들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피운 불 위로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로 배를 채운 뒤 화장실로 향했다. 다들 자리를 정리하고 2차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습하여서 그런지 풀잎 냄새가 짙어졌다. 화장실의 벌레들을 지나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의 문 모서리가 그러하듯, 뾰족하게 감싼 철제문 모서리가 내 발목 쪽을 길게 찢었다.
“아!”
피가 흘렀다. 나는 절뚝이며 편의점으로 가서 다리가 찢어졌다고 했다. 사람들은 오늘의 해프닝에 피곤해졌던 걸까. 아이고. 아프겠네. 하고는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도 주지 않는 관심에 서글퍼져 건네받은 구급함을 들고 다시 절뚝이며 샤워실로 향했다. 물을 뿌리니 따가웠다. 눈물을 꿀꺽 삼켰다.
*
며칠 전 아버지는 내 오른쪽 발목 안가 복숭아뼈 아래의 엄지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상처를 매만지며 물었다.
“이게 뭐야?”
“아. 이거. 상처.”
말하고 나니 또 물었다.
“언제?”
“전에 캠핑장에서.”
조금 씁쓸했다. 하고 싶은 말이 생겼지만 삼켰다. 그날 이 상처를 걱정하던 이는 나뿐이었던가.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많이.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렇게 피가 흐르는데 꿰매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에 잠기었던 나였는데. 난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다시 보니 상처 자국이 기억에서의 상처보다 작았다.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 상처 자국을 매만졌다. 자세히 보니 불룩 튀어나온 상처 자국 위로 한마디 반 길이의 흰색 띠가 늘어진 것이 보였다. 메마른 하늘에 비행기가 남긴 자국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자국보다 상처가 꽤 깊었던 거네.”
나는 이미 빠져나온 고통을, 빠져나온 채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게 된 다는 것이. 우리가 망각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내린 마지막 자비일지도 모르고.
나와 다른 것들에 포용심을 갖자고 생각하는 여러 날을 보낸다. 때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누군가 느끼고 실수하는 누군가를 보면 용서하기가 힘들었는데. 여러 경험이 쌓이고 배움이 늘어가면서 누군가의 어떤 실수, 어떤 마음, 그것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이미 고통의 상태에서 빠져나온 이는 알지 못하는 그 어떤 괴로운 길 위에 그대라는 누군가가 서 있음을, 다시금 매만져본다.
그리고 상처가 아무리 깊어도 어쩌면 어느 날 어느 순간 메마른 하늘에 그려진 흰색 줄기처럼 옅게 보이지 않는 자국으로만 남게 된다는 걸. 상처를 매만지며 어쩌면 어쩌면을 외며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느 때와 같은 어느 옅어지는 밤을 보낸다.
-때로 무심하다 생각하며 원망했던 이들이 그저 지쳤던 것일지도 모르겠음을 이해하는 어느 날 어느 밤. 소설을 읽다 문득 무언가를 남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