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한쪽 귀에서 한쪽 귀로 지나갔다. 후덥 지끈한 기온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얇으면 위험해서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솜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발가락으로 선풍기를 켰다. 숨이 고르게 이불속을 채우자 더는 참을 수 없어 후욱 숨을 내쉬며 이불을 걷어재꼈다.
이 놈의 모기 새끼.
이 놈의 '위잉'거리며 퍼덕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려야 잘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나를 괴롭히는 이 놈은 어디선가 끈질기게 숨어 있다가 고새 잠이 들라하면 위-잉 위-잉 소리를 내며 귓전에서 비행했다.
나는 물로 입술을 적시고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었다. 변기에 앉아 로댕의 생각하는 동상이 되어 이 놈의 모기를 어째야 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여느 모기와는 달리 이 놈은 몸놀림도 잽싸고 눈치도 빨랐다. 도무지 불을 켜고 찾으래야 어디 숨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첫날 천장에 붙은 그놈을 마주했을 때 '팍'하고 크게 치며 죽였어야 했다. 위층 사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숙면을 걱정하느라 살살 치는 게 아니었다. 경험으로 배운다는 말처럼 이 놈의 모기 새끼가 피하는 법을 터득해버렸다.
이런 제길.
그러다 머릿속에 문득 좋은 해결방안이 떠올랐다. 집안 어딘가에 모기 스프레이가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나는 물을 내리고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온몸에 '칙칙'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제는 냄새 때문에 괜찮겠지 생각을 하며 침대에 이불도 덮지 않는 용감함까지 보이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훗. 어디 한번 물어보시지.
하지만 잠시 후 모기가 또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사냥감은 커다란 인간이고 맹수는 작은 모기인데 커다란 인간은 작고 여린 모기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케이크라고 치면 똥맛 나는 케이크가 아니던가! 나는 어째서 네 놈이 싫어하는 냄새를 온몸에 뿌렸는데도 끈질기게 달려드는 걸까 커다란 의문이 들었다. 모기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 답은 간단했다.
그러니까 나는 커다란 케이크인 거다. 모기인 나는 커다란 케이크와 함께 한방에 갇힌 거다. 케이크에서 똥 냄새가 났지만 케이크는 케이크, 나는 굶주린 지 오래다. 살기 위해선 저 역겨운 냄새가 나는 달콤한 케이크를 먹어야 했다.
...
갑자기 모기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 너도 살려고 그러는 건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모기는 작고, 크기가 작으니 먹는 양도 얼마 안 될 거다. 그렇게 치면 모기의 배가 부르면 더는 나를 물지 않지 않을까.
아닌가. 작은만큼 소화가 잘되려나.
오래전 모기에 물리고도 바로 긁지 않으면 물린 곳이 부풀지 않는다는 순 거짓부렁이 같은 말을 떠올랐다. 왠지는 모르지만 신빙성이 느껴지는 카더라였다.
누군가 실험해서 알려주면 좋을 텐데.
잠은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스탠드 등불을 켰다. 그놈은 마치 한 밤 중의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를 짓밟고 다니는 고뇌의 소리 같았다. 신은 아마 모기를 창조하며 말했을 거다.
“모기 너는 잠 못 드는 이들의 걱정 소리를 닮거라. 그리고 그들이 잠에 들려하면 귓전에서 노래하며 그들 대신 걱정을 노래하거라.”
모기의 탄생비화까지 생각하다니. 해탈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냥 스탠드 등불을 껐다.
'그래. 그냥 니 맘대로 뜯어먹어라.'
신기한 일이었다. 배 째라고 누워있다 보니 얼마간은 모기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예 사라져 버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었다.
잠이 오지 않던 밤은 여름뿐만이 아니었다. 겨울에도 그랬다. 모기 소리가 났다. 내용만 다르지 소리가 같았다.
"내일은 어쩌지?"
"잘할 수 있을까?"
"괜찮겠지?"
"아. 오늘은 이렇게 했어야 했나?"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잠이 안 왔다. 잘 들어보니까 뭘 집으려고 할 때마다 젓가락에 내려앉는 파리새끼 같기도 했다. 생각들이 비행하는 탓에 등불을 켰다가 껐다가 뒤척거리다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꼬리잡기를 하듯 생각이 생각을 물면 의문스러워졌다.
"나 그냥 이 걱정들을 계속 하고싶어서 그러는 건가? 걱정이라도 하면 고민이 조금 해결되는 기분이 드니까 그냥 계속 이 걱정과 불안을 쥐고 싶은 건가 나?"
그랬나 보다. 계속 이런 감정들을 쥐고 놓지 않으면 뭐라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그 감정들을 꼭 쥐고 보내주지 못했나 보다. 딱 그때, 내가 그렇다는 걸 알게 될 때에 자포자기하며 생각하면 이상하게 잠이 왔다.
'그래. 생각해라. 니 멋대로 생각해라.'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기 전에도긴장감에 쫓겨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내 차례가 되어 발표대 앞에 선 나는 노트북을 부시고 사람들에게 욕하고 종이를 찢어 하늘에 뿌리고 뛰쳐나가는 상상을 했다. 가끔은 상상 속에서 입으로 물도 뿜고 불도 뿜었다.
만약 정말로 입으로 물도 뿜고 불도 뿜고 노트북을 부시려면 잘하기 위해서 쏟는 노력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다. 하려고 해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만큼은 그냥 확 또라이가 되어버렸다. 새가슴인 내가 하지 못할 겁 없는 행동을 생각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의 마지막 종착지에 먼저 가서 걱정을 기다리다 보면 걱정은 거짓말처럼 오지 않았다.
"그래. 내가 걱정하는 그런 일들은 어쩌면 그냥 걱정 그 자체인지도 몰라.
또 모르지. 내일이 되어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내 고민들이 해결될지.
너는 그냥 소리만 큰 작디작은 모기일 뿐이니까."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는데 눈을 뜨니 다음날이었다. 나는 경의에 찬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린 자리를 긁적였다.
'대체 겨드랑이는 어떻게 문 걸까. 참 대단한 놈이구나 너.'
나는 밥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물며 동생이 간밤에 치렀다는 모기와의 전쟁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피가 흥건한 놈이 있었다는데. 아마도 그놈이 그놈이지 않을까.
그치. 그렇게 얍삽하고 머리 좋은 놈이라면 내 피를 먹어 포동포동했을 테지.
분명 그놈이야. 그놈이 맞아.
아니나 다를까 그 뒤로 그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한밤중의 작은 고뇌도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