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날 위하기보단

네가 옳다는 걸 인정받으려는 거여서

by 모다

내 친구들은 잔소리가 많다.

나를 향한 사랑이 걱정과 조바심으로 나타나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준다. 그 말이 사랑을 바탕으로 나온다는 걸 알기에 따가운 말도 그러려니 넘긴다. 듣다가 듣다가 내가 폭발하면 친구들은 이해하고 멈춘다. 보통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친구는 친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끝까지 바득바득 나에게 강요하려 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조언들이 사랑을 바탕으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애는 뱉지 말아야 할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넌 지금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


내가 뭘 얼마나 잘못 살고 있다고. 그 말이 맞는 말도 아닌데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속상했다. 가뜩이나 사는 게 힘들었다. 대학 졸업 후였다. 일보다는 글이 쓰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에서 지낼 때였다. 알뜰폰을 쓴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나에게 돌진해왔다.

"야. 어떻게 그래. 어떻게 알뜰폰을 써."

"아니. 알뜰폰이 뭐가 어때서."

"아무리 그래도 너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하면서 좀 제대로 살아야지."

친구였던 그 애는 쏘가리도 아니면서 자꾸만 쏘아 붙였다. 옆에 앉은 친구는 중재를 했다.

"모다도 모다만의 이유가 있겠지."

나는 깔끔하게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다.

"너의 걱정은 고맙지만. 내 인생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그 말을 끝내자마자 그 애의 얼굴에서 꼭지 도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 애는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너는 친구가 말을 하면 들어야지. 다 이유가 있는 말인데. 니 의견만 주장하면 어떻게 해?"


"너 지금 인생 잘못 살고 있어."


언젠가 어떤 남자를 사랑하고 사랑했다. 노력하고 노력하다 헤어지고 나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헤어지면 그 사람의 좋은 면, 좋은 추억이 극대화되어서 떠오른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징그럽게 싫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엄마가 말했다.

"그럼 애초에 좋았던 때는 거의 없고 그냥 안 좋았던 거 아니야?"

"..."

"아. 그러네. 딱히 그런 추억을 되새길 만큼 좋았던 건 별로 없었네."

좋지 않았던 것보다 싫었던 게 더 떠올라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건 진짜 그냥 싫었던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거였다.

그 친구와의 기억을 떠올리는데도 그랬다. 함께 보낸 시간 중에 딱히 기억나는 시간들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우리가 친구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나 왜 얘랑 만나서 이런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


그날 고시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그 애의 말이 자꾸만 가슴을 찔렀다.

나를 가둔 네 개의 벽을 연달아 둘러보았다. 작게 닫힌 창문을 바라보다가 천장을 보았다. 샤워를 하고 와도 가만히 누워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나를 위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알아. 네 마음에 내 발을 디딜 틈조차 없다는 것도 이제 알지만... 그렇지만...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그 말은 한참 동안 내 속에서 뜨문뜨문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정말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걸까 봐. 남들처럼 취업도 준비하고 소위 '제대로 된'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저 뒤처지고만 있는 걸까 봐 두려웠다.



몇 년 뒤에 나는 어느 까페에서 우연히 고등학교의 다른 동창을 만났다. 그간의 근황을 듣는데 동창이 말했다.

"우리 그 애 고소하려고 해."

"고소?"

"응. 그 애가 돈 300만원을 빌려놓고 갚지는 않고 도망 다니는 중이야. 집에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고. 어쩌다 어쩌다 연결이 되었을 때는 이제 취직해서 돈 벌어서 갚을 거라고 해놓고........."

다른 동창들한테도 또 돈을 빌려 놓고선 그 돈으로 남자 친구와 노는 게 sns에 포착되었다고 했다. 그걸 본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 애에게 괘씸죄를 묻자며 고소를 하기로 했다는 거였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애초에 그 애의 마음에는 친구를 향한 사랑은 없고 친구는 그저 자신이 반짝이는데 필요한 도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친구를 위한다면 어떻게 그런 괘씸한 짓을 하겠는가. 나에게 잘못 살고 있다고 했으면서 정작 너는...


그 애가 그렇다니 통쾌하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그 말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 셈이라 마음에 떠오르던 못된 생각이 사라진 다시 보통으로 돌아온 기분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거 하나는 내가 옳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내뱉은 강력한 조언들, 나를 괴롭히는 말들이 '사실'은 아니라는 거. 그저 의견일 뿐이었던, 나에게 상처 주던 여러 말들이 힘을 잃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조금은 비워진 셈이었다.


내 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그 애의 말도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가끔 확신이 사라지곤 하지만. 난 열심히 내 삶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앞으로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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