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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01. 2021

친구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이 채 안된 추석에 할아버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할아버지가 원래 나이보다 출생신고가 늦게 됐잖아. 그때는 그랬어. 한 4년 5년 지나서. 어? 이 놈이 살아있네? 싶으면 그제야 출생신고를 했어."


  작은 아버지는 소주로 목을 축이며 간드러진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바람에 지금처럼 누가 먼저 태어났네 아니네를 따지는 그런 풍습이 생겨난 거야. 왜 '빠른' '늦은'까지도 따지잖아. 원래 우리는 그렇게 따지지 않았어. 5년 10년 차이가 나도 서로를 '벗'이라고 불렀어."


  순간 나는 '벗'이라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겼다. '친구'도 '동무'도 아니었다. 

  '벗'

  누군가 나에게 너는 나의 벗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마음이 참 색다를 것이다. 마치 나는 이미 너를, 너도 이미 나를 이해하고 있는 느낌.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실수를 용서해주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서로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며 삶 그 자체를 나누는 존재. 그 존재에 대한 모든 의미가 담긴 단어 같았다. 


  '벗'



  몇 년 전의 추석날, 나는 밤 열차를 타고 있었다. 중국의 추석 중추제(中秋节)를 맞아 홀로 중국을 여행하기로 했다.

  짐을 싸서 도착한 북경 전철역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그 틈을 비집고 여권 검사를 받은 뒤 전철역에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이었다. 나는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의 틈바구니를 찾으며 플랫폼으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갔다. 

  열차에 올라타니 파란색 옷을 입은 좌석들이 보였다. 통로를 중심으로 나뉜 좌석은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좌석으로 가까워지자 분홍색 옷을 입으신 귀여운 중국 아주머니가 짐을 옮기며 끙끙대고 계셨다. 파란 옷의 의자와 분홍색의 옷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내 자리는 자리에 막 착석하신 그 아주머니 맞은편이었다. 

  진분홍 카디건과 연분홍 치마, 머리에는 진주가 콕콕 박힌 머리띠를 하고 계셨다. 방금 전 만화영화에서 톡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화려하고 귀여운 그분을 보고 싶은데 빤히 볼 수 없어서 봤다가 안 본 척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봐."

  나는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 네?" 

  

  "이봐. 해바라기씨 먹을래?"

  아주머니는 내 손 위로 해바라기씨를 쏟아부었다.

  사람들도 하나 둘 열차에 올라탔다. 자연스럽게 내가 앉은 여섯 자리는 6인조 포커팀으로 결성되었다.

  의자 칸에서 보내는 밤 열차에는 입석으로 타신 분들이 복도에 낑겨 서계셨다. 우리 바로 옆에 서신 아저씨께서 우리가 하는 게임을 유심히 보시더니 한마디 던지셨다.

  "아이고 거참 재밌어 보이네."

  "아저씨. 다음 판엔 아저씨도 껴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결성된 7인조는 단톡방을 만들어 한국돈 약 10원 가량을 보내가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함께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렸다. 밤이 깊어지면서 차례로 아저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밤 시간을 보냈다. 아저씨는 손을 젓다가 다리가 아프셨는지 못내 앉으셨다.

  한국의 칠팔십 년대의 그 순수한 감성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가 만났던 '벗'들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판단과 비판의 시선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느낌. 


  언제부터였을까. 

  인간관계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의 실수나 상처도 용서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실망스러운 면을 조금이라도 보게 되면 마음을 닫아버렸다. 상처 받기도 싫었고 에너지 쓰기도 싫었다. 사람이 늘 멋질 수는 없는 건데 티끌만큼의 불편한 감정이 들면 쉽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아주 어린 어느 날에 나이가 어리거나 조금 약해도 깍두기 하면 된다고 말하며 함께 놀던 그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가슴이 풍족했다.


  '벗'


  어쩌면 나는 너무도 쉽고 간단히 마음을 닫아버리느라 상대를 이해할 시간도 기회도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멀어지는 작은 아버지의 말소리를 들으며 입가에 나직이 '벗'이란 단어를 머금어보았다. 


  '벗'


  그 아름다운 단어는 '벗'.  '벗'이었다.

  어차피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거라면. 그냥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이해하고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추석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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