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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05. 2021

딱 맞는 옷

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취미로 노래를 배운 적이 있다. 수업이 끝나고 가는 방향이 같아 선생님과 함께 지하철을 탔는데 빈자리가 보였다. 사람이 꽤 있었는데도 자리가 나서 선생님도 어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요즘 이상하게 전철을 타면 자꾸만 앉아서 가서 기분이 좋아요. 요즘 지하철 자리 운이 좀 좋은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 선생님이 대답했다.

  "그래서 모다 씨가 뚱뚱한 거예요."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했다. 되물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몸에 대한 평가. 질리도록 들었다. 돼지. 살 빼. 관리 좀 해. 등등. 예의 없는 말들인데도 어쩜 그리 다들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지. 의문이 들다가도 하도 그런 말을 듣다 보니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살이 조금만 쪄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조금만 빠져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첫 번째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내게 옷 몇 벌을 선물했다. 

  분홍색 긴팔티. 남색 원피스. 흰색 스웨터. 

  그는 분홍색 긴팔티를 재차 내밀었다.

  "입어봐. 입어봐."

  "아이. 지금 말고 나중에 입어보면 안 돼?"

  "아니야. 지금 한 번만 입어봐. 이것만 입어봐."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분홍색 천으로 덮인 내 몸을 보았다. 생각보다 귀여웠다. 그는 내 뒤에 서서 등에 달린 리본을 묶으며 물었다.

  "너 이거 사이즈가 몇인 줄 알아?"

  "몇인데?"

  "이거 xs이야."

  "진짜?"

  "응. 진짜야. xs이야."


  왜 자꾸 입어보라고 하는가 했더니 그 말을 해주려고 그런 거였다. 

  "그러니까 몸무게는 너무 신경 쓰지 마. 넌 너무 아름다우니까."


  78킬로그램. 한국의 기준에서는 과체중이었다. 아니.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아니 너는 과체중이 아니라 비만이라고.

  나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때는 좀 놀라기도 했고, 그 말을 위로로 듣고 마음 한 구석에 예쁘게 담아뒀는데. 정말 스웨덴에 가니 그 누구도 몸무게나 보이는 모습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내가 뚱뚱한 편이라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놀라셨다. 너는 너무 예쁘다면서 그런 말들은 듣지 말라는 듯 계속해서 손사래를 치셨다.

  스웨덴의 유명한 쇼핑센터도 그랬다. 쇼핑몰이 말을 할 순 없지만 우리는 너를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듯했다.


  울라레드(Ullared). 나에게 말을 건 쇼핑센터 이름이다. 스웨덴의 이 유명한 쇼핑센터는 뭔가 쇼핑몰과 다이소를 섞은 느낌에 건물 크기는 이케아만 했다. '울라레드'라는 이름의 예능 프로도 있었다. 주로는 코미디언이나 일반인 분들이 나와서 쇼핑을 하며 웃음 소재를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바로. 이곳에서 나의 첫 옷을 만났다. 굳이 사랑으로 치자면 첫사랑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 옷을 바라보았다. 그 옷도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지긋이 서로를 보았지만 서로 모른 척했다. 나는 그 옷 주위를 맴돌다 천을 만지작거렸다. 구멍이 송송 뚫린 검은 원피스. 

  '설마 내 사이즈가 있겠어.'


  예쁜 옷은 그렇다. 늘 내 사이즈가 없다. 언제나 딱 예쁜데 허리가 끼이고, 딱 마음에 드는데 어깨가 끼였다. 뭔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꼭 하나가 불편했다. 불편한 옷들로 도배된 쇼핑의 시간 속에서 지는 쪽은 늘 나였다. 왜 이렇게 맞는 옷이 없을까 생각할 쯤에는 그래. 그냥 내가 살을 빼든지 해야지 로 끝이 났다. 쇼핑을 하고 나면 무기력해져서 쇼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36 40 42 44 (한국으로 치면 55 66 77 88 99 100 105 110......)

  웬만한 사이즈는 다 있었다. 심지어 나에게 크기까지 했다. 같은 옷을 여러 사이즈로 챙겨 들고 거울방에 들어갔다.

  이 사이즈 저 사이즈 입다가 한 순간 마법이 일어났다. 내 몸에 옷이 착하고 감겼다. 전혀 낑기지도 불편하지고 않은데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에게 맞는 옷이 없다는 건 사실 꽤 슬픈 일이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나 자체가 거부당하는 이상한 기분이 무의식의 바다에서 둥둥 떠오른다. 어쩐지 지적받는 기분도 든다. 맞는 옷이 없었던 것뿐인데.


  그런데 여기. 지금 내가 이 예쁜 옷에 착하고 감겨 있다. 내 몸이 편하게 쏙 들어간 이 검은 드레스. 완벽하게 아름다운데 단 한 곳도 불편하지가 않다. 값이 좀 나갔지만 홍대에서 옷 한 벌 사는 값이었다. 곧장 카드를 긁었다.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묘하게 슬프고 기분 좋았다. 







아름다움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는 거잖아요.





PS- 여전히 그 옷을 입을 때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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