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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Nov 30. 2021

표식을 내어다오

(시를 쓰는 오후)

뭉툭하고 두터운 비가 둔탁하게

우드둑 

후드득

우박도 아닌 것이 무겁게

후드득


바닥에 움푹 파여 물장난을 

참방참방

한 방울이 두 방울과 몸을 겹쳐 

우수수

우산 끝에 걸친 나를 와르륵 쏘아댄다     


너는 내 바지자락을 추적추적 적시며

우하하 비웃고

나에게 침투했다 

나는 너의 웃음 사이로 

무덤덤 지나간다     


뭉툭하고 둔탁하게 내 옷을 적셨지만

너로 인해 살가죽이 두껍게 부풀었지만

너는 결코 내 마음까진 적시지 못해

내 몸에 침투해도 

너는 그저 둔탁한 비


오직 내 몸과 옷만 적지시 말고

표식을 내어다오

네가 내게 스몄다면

표식을 내어다오

우두둑 후드득 소리만 내지 말고

표식을 내어다오


내어달라 소리쳐도 너는

마음까진 적시지 못해

차갑게 젖은 내 몸속의

마음도 무너지지 못해

너로 인해 내 희망도 부서지지 못해


네가 나를 적셨다면

표식을 남겨다오

우렁찬 빗물만

쏟아내지 말고

표식을 내어다오


정말 네가 나에게 침투해 마음을 적셨다면

표식이 남을 텐데

아무리 소리쳐도 

너는 그저 빗물

우드둑 후드득 둔탁한 빗물


네가 내 마음까지

침투하진 못하는 걸 보니

아무리 우두둑 후드득 내리 쏘아도

너는 그저 소리만 우렁찬

둔탁한 빗물


나는 네가 내어주지 못한 표식 사이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참방참방

되려 너에게

표식을 내어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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