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동백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몇 초가 흐르고 생각을 바꿨다. 좋아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 버렸다. 마흔다섯. 19를 제거하면 광복되던 해였고, 영혼의 친구로 생각한 동주가 죽은 해였다. 발제 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밤으로 기억한다. 라디오에 출연한 유명 인사가 사연이 담긴 노래라며 이 곡을 소개했다. 인트로에서 마음을 접었다. “꺼야겠다.” 그래도 한 사람의 사연이 담겼다는데 너무 야속한가 싶어 그대로 두었다. 그렇게 무심코 듣게 되었다.
조금 안타까운 인트로를 지나고 첫 소절이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빠짐없이 다 들었다. 분명 노래는 조영남이 불렀지만 그에게서 나올 수 있는 가사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이런 가사를 쓸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알고 보니 어느 시인의 작품이었다. 노래가 참 좋은데 조영남은 어떻게 알고 그걸 기막히게 나이스 캐치했을까. 그의 안목에 놀라고 말았다.
그날 이후, 밤이면 종종 기억을 더듬어 꺼내 듣곤 했다. 그렇게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곡이 좋다. 아니, 좋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노래엔 그런 여운이 있다. 긴장감을 주진 않지만 삶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모종의 아름다운 경고쯤으로 생각하게 하는 여운 말이다.
조영남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장례식 때 이 노랠 불러 달라고 했다지.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마지막 가사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망자가 전할 마지막 메시지로 어울린다. 더 이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릴 수 없으니 죽음과 삶의 시공간을 엮을 노래야 말로 망자에겐 최상급 자기 위안이다.
어떤 작가님들에겐 익숙할 수 있는 곡이겠고, 또 다른 분들에겐 생소한 곡일 터. 그럼에도 우린 인생이란 공통분모에 묶여 떠돌아다닐 운명 아닌 운명에 처한 시급한 인생이기에. 안심하고 이 곡을 나누고 싶다. <모란동백>
https://youtu.be/33tAMu0OARE?si=moxwmgdqeMB4GmV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