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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와 주체성(主體性)

by soulgarden


자신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고 부지런하게 지내는 사람들일수록 잘 쉬고 잘 논다는 말들을 한다. 학생들도 ‘선생님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더 잘 놀고 잘 쉬어요~’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면 잘 공부하고 잘 노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자신에게 무엇이 맞으며, 자신에게 현재 무엇이 적합하고 가능한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자신과 상황에 적합한 판단이 생기고, 그 판단에 따른 행동을 통해 자신과 타인, 상황, 환경 모두에 선순환을 가져와 성장과 발전, 목표를 성취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자신에게 무엇이 맞으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고, 그런 자신에게 현재 무엇이 적합한지를 잘 아는 것이 바로 주체성인 것 같다.


주체성(主體性)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주체로서 외부에 있는 객체에 자기 의지로 작용하여 그것을 변형시키는 전인적(全人的)·실천적인 태도와 의식적·신체적으로 하는 행동 두 가지 모두를 뜻한다. 이러한 주체성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대상(사람이나 사물, 모든 상황과 환경들을 포함함)과의 상호 작용을 모두 자주적으로 할 수 있게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구분할 수 있게 한다.

반면 주체성과는 반대로 나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으며, 나의 의지로는 나와 외부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무도 나를 진지하게 대우하지 않으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공기와 같다 라는 생각이 무기력이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자력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들은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자신은 그 결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이런 감정이 진전되어 그 어떤 것도 바라거나 원하지 않게 되는, 자신이 애당초 뭘 원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것, 자신의 소망이 있을 자리에 타인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한 고민이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예를 들어보면 상대가 화내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화내지 않을 행동을 덜 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 그리하여 그 상황에서 그 대상과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모르고,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타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 결과 타인에게 짓밟힌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에 대해 화를 낸다. 하지만 짓밟힘을 당하도록 한 사람이 일차적으로 자신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이런 경험들이 지속되면 지금-현재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과거의 그 일에 영향을 받는 트라우마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란 지금-현재의 경험이 아닌 과거에 처했던 경험을 통한 절대적인 무력감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이 절대적 무력감의 상태는 비탄, 곤궁, 조난의 상황, 무기력한 상태에서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그리하여 트라우마를 입으면 우리 삶은 충격적인 경험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그 경험 앞으로 다시 불려가는 이상한 미로가 되어 버린다. 회피할수록 오히려 피하고자 했던 그것과 맞닥뜨리게 되는 미로, 트라우마는 우리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암초다.


물론 겉으로 볼 때 그 자신은 트라우마적인 장면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는다고, 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좁아진 삶의 통로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인 이상 자신에게 어떤 가능성이 주어질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착시일 뿐이다. 그리하여 트라우마를 입으면 우리가 갈 수 있는 길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유리벽으로 이뤄진 좁은 통로를 따라 벼랑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는 단순히 생존이나 고통의 해소가 아니다. 이러한 유리벽을 깨고 우리 삶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 주어진 과제가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삶의 암초들을 제거하고 가로막힌 삶에 물꼬를 터주는 것이다.


이 물꼬를 트기 위해서 주체의 포지션으로 변경이 필요하다.

즉 현재 내 앞에 펼쳐진 상황(환경)과 대상(사람)에 대해 확실하게 제대로 보고, 인식하며, 이해하고, 결론을 내리는 주체는 나임을 알고 주체의 포지션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에릭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서 인용)


이러한 점에서 주체성(主體性)은 나 자신, 타인, 환경, 시간 등 그 무엇과도 상호작용 할 수 있으며, 모든 것들과의 상호 작용에서 내가 보는 것에 대해, 내가 결정하고,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기본이자 궁극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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