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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을 끊지 않고 풀었다

인연의 실은 푸는 것이다

by soulgarden

직장에서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한 사람과는 입사 초기부터 조직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며 지내온 사이이다.

조직에서의 상하관계와 선을 설정하는 방법, 각 사람들의 특성과 거기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서로를 잘 적응하기 위해 서로에게 조력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왔다.


그렇게 지내며

같은 일을 하다가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어느 순간 그녀가 말했다.


" 선생님 저 너무 믿지 마세요. "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느낌과 서운함과 가슴 아픔을 느꼈다.

관계에서 굳이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지내면 했었는데,

나의 행동이

그녀에겐 자신을 너무 믿어 부담스러운 게 되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얘기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에게만 의존하여 그녀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그녀만의 역사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부모님처럼 의존하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듣고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의 어이없음과 덤터기 씌워진 느낌을

과거 그때 그저 표현하고 풀면 됐을 텐데

나는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함께할 마음까지는 없었는지

그녀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갔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와 연관된 일들은 가능한 하지 않는 선택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또 한 명의 그녀가 있었다.

그녀와 나는 어려운 시기를 공유한 사이였다.


그녀의 인생과 내 인생에

어려움의 시간이 같이 찾아온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 동안 우리는 어려움을 함께 얘기하고, 공유하였으며, 공감하였다.


하지만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힘든 시간 또한 지나간다.

그녀와 나의 시간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렇게 힘든 시간의 공유가 지나가면서

서로를 각자의 방식을 선택하여 관계를 맺고

우리의 관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녀와의 시간이 중요했다.

언제가 그녀가 우선이었으며 배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세계 속에 존재했던 나는 없었다.


서운함과 슬픔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인생을 어려움을 알기에 이해하고 싶었지만

내 감정의 크기는 더욱 커져만 갔고, 나는 점점 더 한계점에 다다랐다.




그렇게 내 감정들을 처리해오던 나는

어느 날 결심을 했다.


이렇게 사는 건 더 이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을 맺은 사람과의 한결같음과 소중함이 중요하지만

내 마음과 다른 이들을 한결같이

내 마음속에 두고 있는 건 나 자신을 혹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연을 끊는 것이 아니라 풀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그녀에게는

그녀의 말로 인해

내게 불편함이 있었으며,

그리하여 당신과는 앞으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음을 얘기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녀에게는

서로가 원하는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만남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며

내 마음속 인연의 끈을 풀었다.


첫 번째 그녀에게는

의존하려는 사람을 싫어하는 그녀의 기대와

서로 의존을 받아주고 같이 성장하려는 내 기대의 충돌이 있었고,

두 번째 그녀에게는

서로의 목적을 달성시켜주는 관계를 원하는 그녀의 기대와

서로의 목적 달성뿐만 아니라

서로 성장을 위한 관계임을 바라는 내 기대가 달랐다.



인연이 끈이라면

인연의 끈을 끊으면

끈의 귀퉁이는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인연의 끈을 풀면

끈의 귀퉁이조차도 나에게 남아있지 않게 된다.


나에게 인연을 푼다는 것은

인연의 어떤 귀퉁이도 남아있지 않음이다.


어떤 귀퉁이도 남아있지 않을 때

비로소 다른 시작이 보인다.


늘 그렇게

잘 풀어내어

늘 시작하고 싶다.


오늘이 늘 새로운 날이듯이

오늘만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주고 싶다.


다가오라 늘 새로운 오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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