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사춘기 아이가 함께하는 분리와 개별화 그리고 독립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폰을 보며 혼자 웃고 울면서
내가 하는 질문을 듣지 못한다.
자신만의 세상이 생긴 것이리라.
자신만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리라.
남편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다. 우선순위가 확실한 사람이다.
우선순위에는 차선은 없다. 그래서 우선순위는 언제는 놓치는 것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차선을 놓친 남편 옆에서 있는 것이 외로웠고
그 자리를 채워준 것이 아이였다.
아이와 함께 공유하는 세상은 충만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이 달래어졌고 견딜 수 있었다.
공생과 공유 그것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나에게 그런 시기가 충분치 않았던가보다. 결핍이었던가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커간다.
아이는 공유도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도 가지고 싶어 한다.
아차
내가 한 발 늦었다.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차
아이가 괜찮다는 말, 그리고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자신이 아닌
엄마인 나를 위해 하는 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이는 기꺼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엄마인 나를 위해 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나와 달랐다.
외롭다고 보채는 나와는 달리
묵묵히 자신의 영역과 세계를 내어주며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와의 분리
아빠와의 분리
그리고
자기만의 세계로의 개별화와 독립....
그러다 가끔씩은 나에게로 돌아옴이 필요한 영혼인 내 아이...
그것이 나에게는 느껴진다.
내가 그걸 느끼지 못했다면
내 아이 또한 그걸 느낌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실에서는 안 보이는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
초현실주의자이자 착각 주의자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직관을 나의 느낌을 온전히 믿어보려 한다.
아이의 영혼이 부모를 선택하여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 내 아이는 부족해도 한참을 부족한 나를 찾아왔을까? 를 생각해본다.
그것 또한
초현실주의자 착각 주의자인
내가 죽기 전에 풀어야 할 인생의 숙제인듯하다.
반갑다.
초현실주의자인 나.
앞으로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