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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버리고픈 말 세 가지

귀찮아, 빨리빨리, 나중에 하지 뭐

빨리빨리 대마왕 

화분 분갈이를 할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이에요. 침착하게 새 화분에 흙을 조금 담고, 비닐 포트에서 식물을 꺼내 조심스럽게 새 화분에 올린 다음, 틈새에 새 흙을 채우고 화분을 탁탁 털어 주면 마무리되는 간단한 일인데도 마음속에서 ‘빨리빨리’ 하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손은 허둥대며 흙을 탁 쏟아버려요.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서두릅니다.


무념무상으로 침착하게 흙을 옮겨 담으면 될 것을 마음속에서 ‘빨리빨리’가 휘몰아쳐요. 그 소리가 들릴 때는 꼭 흙을 다 쏟고 맙니다. 침착하게 하면 5분도 안 걸릴 일을 20분 넘게 걸리도록 하는 악마의 소리 빨리빨리. 흙을 다 쏟은 다음엔 짜증도 나고, 한숨도 나고요. 이쯤 되면 체념하며 그냥 지저분한 채로 일을 하는데, 오히려 침착한 마음이 되면서 흙을 쏟지 않아요.


가끔 빵을 굽거나 쿠키를 구울 때도 이런 경험이 있어요. 레시피를 보고 하나하나 침착하게 따라 하면 될 것을 무슨 묘수라도 있는 양 건너뛰고, 대충대충 서두르다 보면 꼭 빠뜨립니다. 아무도 다그치는 이가 없는데 왜 매일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걸까요? 마음속에서 ‘빨리빨리 해야지!’라는 목소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그 순간 또 밀가루를 쏟아요.


'빨리빨리’. 한 번에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망치게 해 도전하고픈 마음을 사라지게 하는 대마왕이에요. ‘빨리빨리’가 굿을 할 때 시간이 몇 배 더 걸립니다. ‘빨리빨리’는 저에게만 나타나는 망령일까요. 슈퍼마켓에서도, 병원에서도, 심지어는 아이에게도 하루에 몇 번씩 ‘빨리빨리’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라도 더 생산해야 하는 산업화 시대엔 ‘빨리빨리’였지만, 모든 것이  넘쳐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여러 가지를 접목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게 빨리빨리 해서 가능한 일인가요.


마음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말

제 경우는 ‘빨리빨리’라는 말을 애써 지우고 ‘침착하게 침착하게’를 되새기며 업무를 처리하면 훨씬 많은 양을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어요.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늘어나니 훨씬 더 자유롭거든요. '빨리빨리'와 비슷한 단어로 ‘귀찮아’와 ‘나중에 하자’를 들 수 있습니다. 머리 위에 천사 모습을 한 깃발 하나, 악마 모습을 한 깃발 하나. 들고 청기 백기 게임을 하는 건 하루에도 몇 번씩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절대 쓰지 말아야 하는 말이 ‘나중에 하자’ 예요. 분명히 식물은 ‘나 지금 목이 말라.’, ‘벌레가 있어서 불편해.’ 같은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귀찮아. 나중에 하지 뭐.’ 하고 외면하는 거예요. 우린 그런 방식에 익숙해요. 초 중 고등학교 시절 12년 동안 시험공부를 미뤄왔던 경력이 있잖아요. ‘귀찮아, 나중에 하지 뭐.’가 세 번쯤 반복되면 식물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납니다.


귀찮으니까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요. 미세먼지가 많은 날, 폐는 본능적으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지 않아요. 인체가 산소를 충분히 호흡하지 못하는 거예요. 늘 피곤한 도시 사람들, 피로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실내에 식물이 가득하면 아무 조건 없이 24시간 호흡할 수 있는 건강한 공기를 줍니다. 조금의 수고로움과 만성피로 중 양자택일의 순간입니다.  


‘귀찮아’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기도 해요. 아들이 종일 뒹굴뒹굴하 길래 그냥 뒀더니, 자기 전에 그럽니다. “엄마,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지? 종일 게임하고 만화 봤는데 기분이 좋지 않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이제 너도 많이 자라서, 몸과 마음과 생각이 하고 싶은 걸 다 해야 기분이 좋아. 근데 게임이랑 만화만 봤으니 골고루 채워지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은 거야. 문제집도 풀고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어야 기분이 좋아. 잘 생각해 봐.” “그런 거 같다. 엄마. 정말 그런 거 같아.”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접대성 발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다음 날 문집부터 찾는 걸 보니 뭔가 생각을 했나 봅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늘 조마조마해요. 그래도 아이는 제가 믿고 바라보는 만큼 단단하게 마음의 뿌리를 내리고, 자기 몫대로 싹 틔우며 자랄 거라 믿어요. 귀찮아, 빨리빨리, 나중에 하지 뭐. 는 제 마음에도 아들의 마음에도 절대 뿌리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저는 귀찮다는 말을 잊기로 했어요. 귀찮음을 물리치면 싱싱한 식물과 신선한 공기가 따라옵니다.

에필로그


그동안 구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작은 미세먼지 때문이었지만 공기정화식물 200개를 돌보는 막노동이 의외로 행복했고, 몸과 마음과 생각이 건강해지는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 브런치에 기록했습니다. 이 경험을 더 많이 알려 아이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에 식물이 가득하길 바라게 되었고, 좀 더 가슴으로 바로 가는 메시지를 위해 글쓰기 트레이닝을 거듭하며, 제가 얻는 게 더 많았던 5개월이었어요.  


부디, 저와 함께 하셨던 20화 기간 동안 일상이 조금이라도 따뜻하셨길 바랍니다. 제 글을 사랑해 주신 독자들께서는 식물을 하나 둘 늘려가며, 제가 느꼈던 것을 경험하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곧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첫 책이 출간됩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실내공기정화식물로 가득 채우길 바라요. 앞으로도 식물처럼 좋은 글로 긍정 메시지로 소통할 수 있도록 어제보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2018년 5월 15일 모던마더 정재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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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7일 JTBC 다큐플러스 방영분입니다. 

식물을 200개나 키우는 이런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구나. 하고 참고만 해 주세요!  

공기정화식물과 공기청정기로 실내공기를 관리하는 얘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매거진에서 보실 수 있고요, 

글을 하나하나 클릭하는 게 너무 귀찮다 하시면 책으로도 정리해 두었습니다. 

덕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브런치 독자들이 원하신다는 전제 하에) 무료 강연회 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블로그도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티스토리 버전으로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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