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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May 09. 2018

반짝반짝 작은 나무

싱싱한 식물이 가득한 생기 있는 공간이 더 많으면 좋겠어요

죽은 측백나무 한 그루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수다를 기대하며 들떴어요. 친구들이 연령대가 다양한 아이를 키우느라 몇 년 동안 대화다운 대화를 못 나눴거든요. 한 달 전부터 잡아 놓은 약속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제가 추천했던 레스토랑이 반응이 좋아 일부러 예약까지 했습니다.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적당해서 손님 대접할 때 자주 가는 저의 숨겨둔 맛집이에요. 분당 지역 카드 매출 1위라는 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가 조용히 팬이 된, 아끼는 곳이기도 합니다. 


애정을 갖고 있는 레스토랑인데, 그날따라 제 맞은편에 측백나무 한 그루가 죽어 있는 거예요. 잎이 진한 붉은빛이 도는 갈색으로 말라 있는데, 꼭 바퀴 벌레의 사체를 보는 것 같이 흉물스러웠어요. 생명을 잃은 섬뜩한 느낌에 기가 빼앗겨 세 시간이나 앉아 있던 즐거운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 오로지 빨간 갈색, 바퀴벌레 등껍질 색상의 그 화분만 생각이 나요. 


비슷한 일이 오버랩됩니다. 제가 아끼는 김은미 작가님의 개인전을 보러 압구정에 나갔다가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었는데요, 인터넷 평도 괜찮고, 인테리어도 좋아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2층에 올라가는 순간, 식물들이 모두 말라비틀어져 있는 거예요. 그냥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너무 춥기도 하고, 가족 모두가 움직여야 하니 미안한 마음에 그냥 프렌치토스트와 오믈렛을 주문했는데 한 입 먹고는 더 먹고 싶지 않았어요. 


히터를 틀었지만, 냉기가 느껴지는 실내에서 음식은 빠르게 식었고, 플레이팅은 화려했지만 달고 기름져 입에 당기지 않았습니다. 이미 말라비틀어진 식물들을 보고 입맛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식물이 많은 공간을 밤새 난방 하긴 어려웠다 하더라도 담요만 덮어주었어도 세상을 떠났을까 싶었어요. 가끔 한 번씩 물만 주면 되는 식물도 비실비실한데, 매일매일 간수해야 하는 식재료는 잘 관리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왼쪽) 식물이 싱싱하게 살아 있던 상업 공간, 고뜨레. (오른쪽) 공간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벽화, 하동 벽화 마을
(왼쪽) 캘리포니아 석유 재벌 게티의 게티 빌라 정원 (오른쪽) 식물은 공간을 탄탄하게 살려 아름답게 만들어 줘요.

사랑 많이 받은 식물은 반짝반짝해요


‘식사’에는 장소와 서비스 만족도도 한몫하는데, 즐거운 먹을거리 앞에 죽은 생명이 놓여있는 것은 기분이 좋진 않더라고요. 죽어있는 식물과 신선하지 않은 식재료가 동일선상에서 함께 떠올라요. 아무리 식사가 맛있다 해도, 그 식사에 대한 느낌은 모두 지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과 나누었던 즐거운 대화도 모두 사라지고, 죽어 있던 식물들만 기억에 남았거든요.  


저렇게 큰 화분을 어떻게 처리할까. 싶은 걱정도 듭니다. 식물이 죽으면 처리도 어려워요. 화분을 다시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화분 째 폐기물 스티커를 부착해 대형 폐기물로 배출해도 됩니다. 화분을 다시 사용할 계획이라면 식물과 흙을 비워야 하는데요, 나무는 종량제 봉투에 들어갈 크기로 잘라 넣고, 흙은 불연성 폐기물을 버리는 마대자루에 넣어 버려야 해요. 


화분 흙은 아파트 화단이나, 공공장소 화단에는 절대 버리시면 안 됩니다. ‘다 같은 흙인데, 흙이 많아지면 좋은 거 아닐까’라는 생각은 아마추어인 우리들의 생각이에요. 전문가가 가꾼 화단은 다 나름의 의미가 있어, 함부로 아무 흙이나 배출했다가는 공들인 레이아웃과 심어 놓은 식물을 다치게 할 수 있어요. 산에는 버려도 되는데, 무거운 흙을 들고 가 버리는 게 또 만만치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번 데려온 식물은 오래오래 살도록 잘 보살펴 주는 게 환경과 사람을 살리는 지속 가능한 방법이에요. 


사랑을 많이 받으면 식물도 반짝거립니다. 어른들께서 식물이 잘 크는 집은 사업도 잘 큰다 하셨는데, 어떤 이유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식물로 공간을 채우는 플랜테리어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인테리어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오염으로 공기가 너무 나빠져 실내에라도 식물을 가득 채워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 해요. 이유야 어떻든 식물이 많은 공간은 확실히 몸과 마음과 생각이 편안하니, 가는 곳마다 반짝거리는 식물로 가득한 생기 넘치는 공간이 더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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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7일 JTBC 다큐플러스 방영분입니다. 

식물을 200개나 키우는 이런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구나. 하고 참고만 해 주세요!  

공기정화식물과 공기청정기로 실내공기를 관리하는 얘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매거진에서 보실 수 있고요, 

글을 하나하나 클릭하는 게 너무 귀찮다 하시면 책으로도 정리해 두었습니다. 

덕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브런치 독자들이 원하신다는 전제 하에) 무료 강연회 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블로그도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티스토리 버전으로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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