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vs 1983년
어느 금요일 오후, 병원
동생이 떠난 후 병원은, 냄새까지 싫었다. 몸이 아파도 약국엘 갔지, 병원에 가지 않았다. 잘 피해왔는데, 어쩔 수 없이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찾아온 아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산전 검사를 해야 했다. 그건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었다. 뱀에 몸이 닿듯 소스라치게 싫던 그 느낌은, 얼어붙은 강물이 녹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출산의 과정을 무사히 넘기며 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느끼지 못할 만큼 거의 사라졌다.
아들의 성장판 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 이 병원은 산전 검사를 위해 정기적으로 다니던 바로 그 종합병원이다. 병원 벽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많아졌고, 더 넓어졌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 계신 환자분들은 많다. 주로 회색 머리의 어르신들이다. 병원에서는 생명이 태어나기도, 떠나기도 한다. 결국은 생로병사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떠날 것인가. 우린 모두 잠시, 인생이란 여행을 하고 있을 뿐인데.
신문에서 본 장의사의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20년 장의사 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나는 분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염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한 시신이 가장 인상 깊다고 하셨다. 80대의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기 2주 전부터 곡기를 멀리하고 우유만 드셨다고. 그 덕분인지 남겨진 육신이 너무나 깨끗했다고 한다. 아름답다고 하긴 어려울, 혼이 빠져나간 몸을 볼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을까.
용인시, 성남시 단체 이름이 쓰인 차량에서 휠체어가 내렸다. 지금 보고 있는 차량에서는 마르신 할머니가 꼿꼿하게 앉아 내리신다. 그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저렇게 불편하신 분들은 나라에서 도와야지. 이렇게 약자를 돌볼 수 있는 나라가 되었구나. 감사하다. 나도 20년 넘게 납세자로 살아왔고, 이렇게 쓰이는 세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1983년에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뜨거운 여름날의 병원
동생이 7살 겨울부터 아팠고, 10살에는 거동이 거의 어려웠으니 8살 때나 9살 때의 일이다. 나는 10살이나 11살이었을 거고, 83, 84년도쯤이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대학로에 있는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동생이 겨우 같이 놀만큼 체력이 회복되면 병원에 갔고, 다녀오면 초주검이 되었다. 나는 동생이 병원에 가는 게 싫었다. 정말 보고 싶지 않았지만 별 수 없이 따라나섰다.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가 그래도 수월했다.
항암 주사를 맞고, 링거를 꽂고 오는데 동생은 걷기도 힘들어 보였다. "엄마. 저 약, 병 낫는 거 맞아. 병원만 다녀오면 애가 누워만 있는데." 속이 뒤집혔다. 뜨거운 여름날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택시가 안 잡혔다. 나는 동생이 쓰러질까 봐 애가 탔다. 엄마는 안 되겠다고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고, 나는 엄마와 동생 사이에서 어쩔 줄 몰랐다. 기력이 없는 동생 대신 엄마한테 떼를 썼다. "엄마, 안 돼. 너무 뜨거워서 힘들어. 나는 못 가." 동생은 군말 없이 엄마를 따라가려고 겨우겨우 걸음을 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엄마는 기어이 동생을 들쳐 엎었다.
동생 병원비 때문에 돈을 아끼려고 그러나. 아낄 게 따로 있지. 동생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하필이면 버스도 만원이었다. 아무도 양보를 하지 않아 바퀴 턱에 간신히 걸쳐 앉았다. 열 살이나 열한 살 정도의 내가 유리 링거병을 들고, 엄마는 동생을 부축하며, 겨우겨우 집에 돌아왔다. 동생은 돌아오자마자 자리를 펴고 누워 물도 삼키지 못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그 먼 병원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모종의 조치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날의 비밀은 얼마 전에 풀렸다. "엄마, 그때 왜 택시를 안 탔어?"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그땐 링거병 있고, 머리카락이 없고 그러면 재수 없다고 안 태워줬어." 하셨다. 아. 80년 대 초엔 그랬구나...... 그래서 택시 타고 가긴 했는데, 올 때는 택시가 그렇게 안 잡혔던 거구나.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그렇게 진을 빼지 않았더라면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지 않았을까. 2018년의 대한민국은 아픈 아가들을, 노쇠한 어르신들을 따뜻하게 품을 만큼 부강해진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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