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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Feb 06. 2019

귀가 예민한 사람들

이석원 작가님과 김중혁 작가님과 나의 공통점

예민한 귀


2019년 설날 연휴에 읽을 책으로 '보통의 존재'와 '뭐라도 되겠지'를 골랐다. '보통의 존재'는 교보문고에 들렀다 우연히 만났다. 가장 좋아하는 오렌지 두 방울 탄 노란색 색상의 표지에 이끌려 무심결에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가 된 후로는 판권을 꼭 확인하게 되는데, 60쇄가 넘은 책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이런 책이 있었어? 그 옆에 있는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는 72쇄였다.


이렇게 많은 독자께서 책을 읽어 주시면 어떤 기분이 들지 정말 궁금하다.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까, 아니면 세포 하나까지 자신감이 차올라 한 글자 한 글자 주옥같은 훌륭한 글을 쏟아내게 될까. 혹시 둘 다 아니라 할 지라도 부럽다. 내게도 언젠가는 걸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가 보지 못 한 그 길을 걷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보통의 존재'가 대출 가능하길래 도서관에서 얼른 빌렸다. '나, 있는 그래도 참 좋다'도 읽고 싶었는데, 대출 중이라 성남시 도서관 앱을 통해 예약을 걸어 두었다. '보통의 존재'만 빌려 오긴 아쉬워 도서관 서가를 주욱 읽다 보니, '뭐라도 되겠지'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한 걸음 떨어져 자조하고 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묘한 제목에 마음이 끌린다. 어, 김중혁 작가님의 산문집이네. 김중혁 작가님은 산문집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 먼저 만났다. 글 속 참신한 표현들도 재미있었는데, 그림도 그리시고, 산문도 쓰시고, 소설도 창작하시고, 방송도 하시는 그 다재다능함이 놀라웠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샘이 났다.


보통의 존재를 먼저 읽고, 뭐라도 되겠지를 나중에 읽었다. 이석원 작가님, 김중혁 작가님 모두 귀가 매우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도 귀가 너무나 예민해, 잘 때는 늘 3M 귀마개를 꽈배기처럼 빙빙 돌려 귀 안 가득 꽉 채워 넣고 잠이 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소리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양미간이 찌푸려질 때도 있다. 소리에 예민하면 사는 게 피곤하다. 그런데, 두 작가님과의 동질성을 느끼고는 마치 훌륭한 작가의 기본 소양인 것 같아 반가워졌다. 에헴. 나 귀도 예민한 사람이야.

훌륭한 작가의 기본 자질


이석원 산문집에서는 '엄마가 말을 걸면 왜 화부터 날까'라는 글을 보고 키득거렸다. 나 같은 경우는 '남편이 부르면 왜 짜증이 날까'로 치환해 볼 수 있다. 남편이 "여보!" 부르기만 하면 미간에 주름이 갔다. 듣기 싫어서. 왜 그럴까? 우리도 결혼 생활 18년 동안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골짜기로 떨어지고, 8부 능선까지 올랐다 계곡으로 고꾸라지는 여러 번의 그래프를 겪었다. 서로 유령 보듯 말을 섞지 않고 지낸 세월도 몇 개월은 될 거다.


왜 그랬을까? 하루는 남편이 회사에 다녀와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나도 남들처럼 월급도 받아 오고, 집에 오면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도 많이 하는데, 왜 날 그렇게 미워하는 걸까?"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처음엔 밥 먹은 상차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 나름대로 자기 성장해 온 거라 할 수 있다. 노력하는 남편을 나는 왜 미워하고 있는 걸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원인을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서 찾았다. 남편은 나를 좋아하니까, 반갑고 흥분해서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게 되는 거다. 나는 귀가 예민한데, 갑작스럽게 높고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면 일단은 깜짝 놀란다. 깜짝 놀란 마음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잔잔하게 평화로움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는데, 내면의 호수에 돌멩이가 날아와서 평화를 깨뜨리는 느낌을 받는 거다. 아! 그게 원인이구나.


그래서 남편과 아들에게 나한테 말을 할 때에는 침착하게 낮은 목소리로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보, 나는 귀가 예민하니까,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줄래?", "아들. 엄마한테 말할 때는 침착하게 작은 목소리로."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니 짜증이 전혀 나지 않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남편이 미운 게 미운 짓을 해서 미운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서 정말 미안했다. 서로 견딜 수 없는 자기만의 아킬레스 건이 있는 거였다.


귀가 예민한 나에겐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게 주효했다. 깜짝 놀라지 않으니 마음이 평화로웠고, 짜증이 나지 않으니 관계도 좋아졌다. 귀가 예민한 아내 덕분에 남편에겐 좋은 습관이 생긴 셈이다. 아마 남편의  침착한 목소리는 사회생활에서 적어도 1% 이상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을 거다. 나는 훌륭한 작가의 기본 자질인 '예민한 귀'를 가졌으니, 이제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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