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Feb 27. 2019

힘센 아보카도

아보카도 나무 키우기

힘이 세졌어요!



다섯 살 아들에게 『아기 힘이 세졌어요』라는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밥을 먹기 싫어하는 몸이 약한 아가에게 아보카도를 먹였더니, 힘이 세져, 집에 들어온 도둑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들어 옮기고, 차를 밀어주기도 했다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였다.


“아보카도가 뭐야, 엄마?”
"과일인데, 이렇게 생겼어."
"무슨 맛이야?"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무슨 맛인지 궁금한데. 어디 가면 있어?"
"백화점에 가면 있을 거야."
"그럼 백화점에 가자."
"그래, 다음에 백화점에 가면 아보카도를 사자."


아들은 백화점에 갔을 때 아보카도를 기억하고, 그걸 사자고 했었다. 한 알에 6천 원. 두 개를 사자는 걸, 먹어보고 또 사자고 겨우 설득해 한 개만 샀다.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먹겠다고 조른다. 깎아 주니, “이걸 먹으면 정말로 힘이 세질까?” 궁금해 죽겠는 얼굴로 떠먹는다. 딱 한 입 먹고는 아무 ‘맛’이 없다며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무맛의 남은 아보카도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내가 다 먹었다.


처음에는 마지 못 해 해치웠지만, 가끔 아보카도 생각이 났다. 그 사이 아보카도는 슈퍼푸드로 알려지며 위상이 달라졌다. 덕분에 마트에서도, 동네 과일가게에서도 아보카도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엔 아보카도를 내키는 대로 요리해 먹는다. 바싹 구운 토스트에 얹어 삶은 달걀을 슬라이스해 얹은 후, 핑크 소금을 살짝 쳐 아침식사로 먹기도 하고, 깍두기처럼 썰어 명란과 고추냉이 김과 함께 싸 먹기도 한다. 아보카도와 달걀 프라이를 버무려, 와사비 간장을 뿌려 먹어도 충분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아무 맛이 없는 건, 반대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장점이 된다.

 


오브제가 된 아보카도


이렇게 먹다 보니, 아보카도 씨앗이 많이 나왔다. 처음엔 그냥 버렸는데, 씨앗이 그렇게 큰 걸 보면 영양소를 많이 품었겠지 싶어 아까웠다. 집안을 가득 채운 식물과 함께 살다 보니, 씨앗이 쓰레기라기보다는 생명으로 보인다. 아보카도 나무는 어떻게 싹을 틔우고 어떤 모양의 잎을 갖고 자라는 걸까. 사진도 그림도 찾아봤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다. 실물이 주는 느낌이 궁금했다.


옥상 텃밭에 씨앗을 몇 개 심었다. 여름이 다 가도록 꿈쩍 않길래 파종한 사실을 잊었다. 가을이 되어 텃밭을 정리하는데, 황금빛 연두색으로 빛나는 잎이 두 개 보인다. 처음 보는 잎인데, 어떤 잡초가 잎이 저렇게 큰 지, 참 용감도 하다. 하지만, 잡초 특유의 스산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맑고 명랑한 잎들이다. 저건 잡초의 기운이 아닌데. 그제야 아보카도 씨앗을 심어둔 게 기억이 났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보카도의 새 잎 모양이 맞다. 반가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중앙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가 원산지인 아보카도는 바깥에 두면 월동이 되지 않으니, 뿌리를 사방 30센티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렇게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아보카도 나무. 그 나무를 볼 때마다 고개를 뽀로롱 내밀고 찬란하게 빛나던 싱싱한 모습이 떠오른다. 생명의 힘은 기운도, 기분도 좋다.


2년 전 심은 아보카도가 꾸준히 자라, 옆 가지가 생겼다. 양쪽으로 팔을 뻗은 모습. 꼭 춤추는 댄서의 포즈를 닮았다. 흥이 넘친다. 인상적인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지만, 왜곡이 일어난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식물은 내 마음을 톡톡 건드려, 기꺼이  연필을 들어 밑그림을 그리고, 붓을 들어 칠하게 한다. 올해는 파파야, 천리향, 레몬을 심으려고 씨앗을 받아 두었다. 촛불 맨드라미 씨앗도 받아 두었는데, 어디에 심지. 벌써부터 식물이 깨어날 봄이 두근두근하다.  


http://modernmother.kr

Http://brunch.co.kr/@modernmother

http://instagram.com/jaekyung.jeong

http://modernmother.kr/221453619025


작가의 이전글 내 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