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Mar 06. 2019

숲 같은 집에서 식물과 함께 살기

반려식물 200개 온실 같은 집, 30개월

고농도 미세먼지 일주일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날, 외출 시간이 길어지면 척추를 기준으로 등 양쪽이 길게 뻐근하다. 24시간 마셔야 하는 공기. 숨 쉬기 힘든 공기가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방방마다 공기청정기를 꽂아 놓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거실에는 강제 환기 장치를 설치한다. 2019년 현재의 우리 모습.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공기를 마시며 살게 되었을까.


미세먼지 때문에 힘들어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지만, 공기청정기는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며, 마스크는 또 다른 오염원이 되고, 강제 환기 장치 역시 소각해야 하는 소모성 물질로 또 다른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유일하다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어릴 때 아빠와 뒷산에 가는 걸 참 좋아했다. 성큼성큼 걷는 아빠 뒤를 따라 산을 오르는 건 숨찼지만,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되었던 그때. 산에서는 나무와 풀, 심지어는 흙에서도 향기가 풍겼다. 오솔길 옆 부러진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짚고 걷거나, 솔방울이나 나뭇잎을 들고 냄새를 킁킁 맡는 것도 좋았다. ‘인자 요수 지자 요산’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던 열두 살 때, 나는 ‘인자한 사람이고 싶은데, 산을 좋아하니 똑똑한 사람이 되려나?’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 집에 나무가 많으면 숨을 크게 쉬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사례를 찾아보았지만, 찾기 힘들었다. 나무를 잔뜩 키워 미세먼지 농도 짙은 공기를 해결했다는 문헌은 없었지만, 식물이 공기정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은 많았다. 숲 같이 많은 나무를 내가 관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한 번 해 보지 뭐. 싶었다. 아니면 말고. 나는 늘, 새로운 시도 앞에서는 아니면 말고. 정신을 꺼내 쓴다.


200개 식물과 30개월


200개 넘는 식물과 함께 산지 30개월 즈음되었다. 나의 관심사는 공기정화식물이라, 대부분 관엽식물이다. 화원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식물이 집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레카야자 8그루, 날렵한 잎에 핑크빛 라인을 가지고 있는 마지나타는 4그루, 씨앗부터 키운 아보카도 나무는 3그루, 아로우카리아, 알로카시아, 휘커스 움베라타, 폴리셔스, 올리브, 뱅갈 고무나무, 인도 고무나무, 수채화 고무나무, 커피나무, 스파티필름, 개운죽, 스킨답서스, 홍콩야자, 산호수, 테이블야자, 극락조, 관음죽, 해피트리, 접란,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필로덴드론, 선인장, 도쿠리 난, 녹보수, 떡갈 고무나무, 소포라, 스투키, 호야, 페페, 모링가 나무, 아스파라거스, 아이비, 오리나무, 꽃기린 등.


이렇게 식물들이 많아지니, 실내의 미세먼지 수치는 큰 노력 없이도 외부 미세먼지 수치의 10% 수준을 유지한다. 식물들이 습도와 온도도 조절하는,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 같다. 공기청정기는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가끔 작동하니 에너지를 아끼고, 필터를 교체주기보다 조금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공기청정기를 끄고, 식물들로만 공기 정화하는 실험도 해 봤는데, 가능하지만 4~5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 결과는 농촌진흥청의 연구 결과와 거의 동일하다. 그래서, 빠르게 미세먼지가 유입될 때를 위해 공기청정기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집안에 가득한 식물들은 외부의 회색빛 먼지에 우울해진 마음에 생기를 채워 준다. 식물들을 돌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식물들은 언제나 자기 속도로, 자기의 길을 간다. 무엇인가를 돌보는 경험은 심리 치유의 방법으로 사용될 만큼 효과가 좋다. 식물이 뿜어내는 음이온은 미세먼지를 전기적으로 제거할 뿐만 아니라, 혈액 정화, 통증 완화, 저항력 증가, 세포 부활, 자율신경의 조절 능력 증가시켜주는 만병통치약이다.


식물이 많은 집에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건, 화분에서 서식하고 있을 것 같은 바퀴벌레나 개미, 이름 모를 벌레들이었다. 다행히 EM용액을 섞어 꾸준히 물을 준 화분에서는 벌레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잎에는 깍지벌레나 솜 깍지벌레가 가끔 보이긴 하는데, 익숙해졌다. 살충제를 뿌리는 대신, 붓이나 손으로 쓸어 준다.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식물은 함께 산 30개월 동안 몸과 마음과 생각이 건강해지도록 도왔다. 에너지라고는 쌀 씻은 물이나 수돗물 정도를 썼을 뿐이다. 그 정도면 식물들은 24시간 내내 산소와 음이온을 뿜어 준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도 하지만, 식물을 가꾸는 행위는 우뇌를 자극해 창조적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 식물을 돌보는 것은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머무는 학교 교실이 숲이 된다면 참 좋겠다.


http://www.brunch.co.kr/@modernmother

Http://modernmother.kr

Http://instagram.com/jaekyung.jeong



작가의 이전글 힘센 아보카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