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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ug 14. 2019

국립공원 속 미술관

네덜란드 크륄러 뮐러 미술관

요즘 세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손에 발이 달린 것처럼 글이 술술 써지면 좋으련만, 한 시간에 네 줄, 삼십 분에 네 줄, 그렇게 거북이같이 천천히 갑니다. 훌륭한 작가님들은 어떻게 쓰시나 궁금했는데, 그저 매일매일 쓰신다고 해요. 저도 매일매일 쓰지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을 꺼내 읽어요. 가식 없는 직진에 가슴이 시원해지고, 때로는 통쾌한 해학에 웃음이 터집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것 같아요. 문학의 힘입니다. 


이번 책을 쓰면서는 박완서 선생의 『호미』,『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세상에 예쁜 것』산문집 세 권을 도돌이표 달린 악보처럼 읽고 있어요. 그러다가, 선생께서 크륄러 뮐러 미술관에 다녀오신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네덜란드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크륄러 뮐러 미술관을 갔었거든요. 

이 미술관은 독일인 크뢸러 뮐러가 개인의 컬렉션을 정부에 기증해, 네덜란드 정부가 운영하는 미술관입니다. 미술관을 오픈하려다 예산이 모자라서 토지와 함께 기증했다는 설도 있어요. 이 미술관에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반 고흐의 작품이 많습니다. 개인의 사유 재산이 국립공원을 만들 만큼이었다니, 그 규모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주차장부터 자전거로 30분 정도 미술관에 도착한다고 들었는데, 그 길도 궁금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거리가 좀 있어서 마지막 날까지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을 했어요. 우버로 한 시간 정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두 시간 반 정도. 차를 렌트할까 하다가, 그냥 우버를 이용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 안 갔으면 여행이 흐릿해졌을 것 같아요. 


미술관 입구에 내려 표를 구입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흰색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어요. 전부 흰색 바디에 검은 바퀴인 네덜란드 산 자전거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바퀴 지름이 75센티미터 안팎인 안장이 높은 자전거를 탑니다. 저는 어린이용 자전거 사이즈를 골랐습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간판. 저는 어린이 용 자전거를 탔어요. 

남편이 앞장서고, 아들이 그 뒤로, 제가 따라갑니다. 옆으로 나무가 천천히 지나가요. 이 나무에서 나는 향은 향수의 향과 비슷합니다. 사향의 향 같은 게 풍기기도 하고, 소나무 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의 대비가 선명해요. 이런 하늘은 오랜만입니다. 향긋한 공기와 함께 눈앞에 천천히 지나가는 나무의 이미지. 어떤 새는 쪼롱 쪼롱 울고, 어떤 새는 쪼로로롱 쪼로롱 거립니다. 청량한 공기를 타고 울리는 새들의 합창이 평화로워요. 오감이 활짝 열리는 기분.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향과 소리와 온도와 빛을 느꼈어요. 지금 이 순간은 기억 속에 오래 보관했다가 가끔씩만 꺼내 볼 거예요.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라 처음엔 살짝 낯설었습니다. 바퀴를 뒤로 돌리면 자전거가 서는 방식이에요. 금세 익숙해집니다. 저는 의외로 이 자전거의 승차감에서 네덜란드가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자전거의 바디는 짱짱하게 조여 있고, 바퀴는 단단합니다. 실컷 내 달려도 얼마든지 받아줄 것 같은 넉넉함. 군살 없는 말 같은 느낌이에요. 장식은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반 고흐의 유명한 그림 밤의 카페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의 사이프러스, 꽃이 핀 복숭아나무를 눈앞에 두고 볼 수 있었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회화들입니다. 그런데, 그림마다 유리가 끼워져 있습니다. 작품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표면에 반사되는 유리가 끼워져 있으니, 충분히 느낄 수 없어 아쉬웠어요. 


자연 속에 들어앉은 미술관은 창을 프레임 삼아 조각을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 자연을 캔버스 삼아 조각을 절묘한 위치에 얹어 두었어요. 국립공원의 자연만으로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데, 시야가 보이는 360도 곳곳에 예술품을 얹어 두었으니, 현실 세계를 벗어난 초자연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입체물에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알고 싶은 것들도, 알아가는 것들도 많아집니다. 

미술관 내 카페. 음식도 다 맛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는 걸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캐셔가 음식도 만들고, 테이블도 정리하고, 안내도 합니다. 크륄러 뮐러 미술관 내 카페테리아에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업무 처리 속도가 매우 빨라  프로페셔널하셨어요. 숙련된 전문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크륄러 뮐러 미술관 앞, 나무로 둘러 싸인 집을 하나 빌려 두고 한 달 내내 미술관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저 잠깐 발만 담그고 왔을 뿐입니다. 견고한 검은색 자전거 안장에 앉아,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파랑 물감을 발라 놓은 것 같은 하늘, 초록색 잎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지나가던 그 풍경. 코끝에 풍기던 나무 향기. 고요한 가운데 가끔 들리는 새소리. 극사실주의 영화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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