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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ug 07. 2019

데이비드 호크니와 반 고흐

. 깨끗한 자연, 아름다운 예술

반 고흐 미술관

저는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시티버스를 탑니다. 나라마다 버스 이름은 조금씩 다릅니다. 유명한 관광 장소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고, 내렸다 탔다 하며 자유롭게 볼 수 있고, 낯선 장소의 길을 파악하며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고, 깜박 졸면서 컨디션을 회복할 수도 있거든요. 암스테르담은 운하가 주된 교통길이라, 투어 버스 대신 커널 크루즈로 대신했어요. 암스테르담 시티카드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좋아하는 제겐 암스테르담에서는 시티카드가 편했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프리 패스와 정해진 시간 동안 교통이 무료인 카드입니다.  반 고흐 미술관은 그 카드의 실물이 있어야 예약을 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카드를 우편으로 받거나 (우편 비용이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찾을 수 있어요. 그러면 반 고흐 미술관을 예약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애매한 상태가 됩니다.

망설이다 별도로 비용을 지불하고 온라인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저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직접 보면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들이 있어서, 어떨지 궁금했어요. 게다가,  '자연의 즐거움'이라는 반 고흐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기획전이 진행 중이라, 그걸 꼭 보고 싶었어요.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들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상에도 불구하고, 애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고흐의 그림들을 보고 나니, 세상이 저렇게 보였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이프러스 나무의 선과 색이 기묘합니다. 작가들이란 예쁜 걸 숨이 막히게 예쁘다고 느끼고, 슬픈 걸 세상이 무너지는 듯하게 느끼고, 달그락 거리는 소음이 나는 걸 천둥소리로 느끼는 사람들이 아닐지요.


소박한 자연과 농부의 삶에서 매력을 느꼈던 고흐. 왜 아무도 관심 없는 농부의 얼굴이 그리고 싶었을까요. 렘브란트는 귀족의 초상화를 그려, 화구와 물감, 캔버스 같은 그림 자재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는데, 고흐의 그림 도구는 사선으로 자른 갈대 줄기입니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그림을 그렸던 고흐는 생전에 작품이 단 2점만 팔렸다고 해요. 예술가의 삶은 작품을 구입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다는 게 슬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 동안 900여 점의 그림과 1100 여점의 습작,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668통의 편지를 남깁니다. 그마저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10년 동안의 일이라고 하니까요. 탁월하면서도 방대한 양의 산출물입니다. 그 데이터는 다시 책으로, 기념품으로, 포스터로 변주되어 상업적인 가치를 낳습니다.

반 고흐 미술관에 있는 서점. 고흐를 주제로 한 도서들만 모아 두었습니다.
The Joy of Nature

저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컬러의 폭이 넓고, 세고, 시원해서,  그 그림을 볼 때는 제 몸을 가두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에서 팔다리가 자유로워진 느낌이 듭니다. 초록색 선명한 컬러 채도 높은 보라색이 그리는 풍경화를 보면,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도 돼.' 하고 명쾌하게 말해주는 것 같아요. 26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다시, 그림이다』라는 책에서 보고, 실물로 꼭 보고 싶던 그림들을 암스테르담에서 만났습니다. 눈이 부른 포만감입니다.

왼쪽은 호크니 인터뷰. 오른쪽은 보고 싶었던 그림.

데이비드 호크니는 20년 동안 LA에 머물다, 10대 시절에 머물며 탐색하던 영국 고향 요크셔에서 나무와 여명과 같은 자연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저는 월드게이트라는 그의 고향에서 그린 그림들이 보고 싶었어요. 80대에 화가가 10대 시절에 머무르던 곳을 다시 찾아간 그 감성이 묻어나면 어떤 그림이 될지 말이에요. 그림이 풍경을 보는 것처럼 큽니다.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보는 데에도 시간이 느껴질 만큼요. 365.8 × 975.4 cm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의 건강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주길 바랍니다.


생존하는 작가 중 최고의 그림값을 자랑하는 호크니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드문 경우예요. 렘브란트나 고흐도 자기 하고 싶은 예술과 그림을 사 주는 고객들의 갭이 있어 힘들었는데, 호크니 할아버지는 하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최고가에 판매가 됩니다.

후원사 : 현대자동차. 덕분에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우리 말로 가이드를 들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반고흐 미술관과 잘 어울리는 핸드타이드 꽃꽂이.

네덜란드의 다른 박물관이 그렇듯, 반 고흐 미술관 역시 25유로의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도 미리 예약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기념품 샵에 있는 선물용품도 그곳에 가야만 구입할 수 있고, 포스터와 엽서 같은 인쇄물의 품질 수준도 아주 높습니다. 유일무이한 콘텐츠를 여러 가지 상품으로 활발하게 재생산하고 있어요.


전시를 보고 나오니, 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지친 다리를 쉬어 가기 이만한 공간이 있을까요. 잔디에 누워 파란 하늘과 향을 싣고 살랑이는 바람을 느껴봅니다. 남편과 아들은 저 앞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어요. 파란 하늘, 진한 초록, 반 고흐 미술관이 이루는 경치가 눈이 부십니다. 깨끗한 자연과 아름다운 예술은 그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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