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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pr 15. 2020

샴페인은 잠깐만

  2008년 2월, 국보 1호인 남대문에 화재가 났습니다. 테러인가 싶었지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그랬듯 실수였습니다.


  TV 화면 속 남대문이 불 타는 모습을 보는데, 식도인지 기도인지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불에 타 까맣게 된 서까래가 시뻘건 불똥을 흘리며 내려 앉을 땐, 생명이 꺼지는 걸 보듯 먹먹했습니다. 가슴 속 불덩어리가 돌돌 회오리치더니, 눈시울로 올라와 뜨거운 용암처럼 흘렀습니다.


  남대문은 1396년 세워져, 늘 그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임진왜란도 견디고, 일제 시대도 버티고, 한국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남대문이 눈앞에서 재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타오르는 영상을 보면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1163년 착공해 1345년 완공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해마다 천 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관광 명소로 꼽히는 곳입니다. 노트르담, 에펠탑이 포함된 파리의 센 강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을만큼 아름답습니다.


  지난 2월 파리 출장에서, 노르트담 대성당은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거든요. 100년이 넘은 서점, 셰익스피어 엔드 컴퍼니를 들렀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 앞이 노르트담 대성당이었습니다. 별수없이 보수중인 노트르담 대성당과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비계를 보철장치처럼 잔뜩 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덜 슬펐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비계의 현대적 구조와 노르트담의 고딕 건축물의 대비가 구조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역사의 유산에 현재의 기술이 더해져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승화한 느낌입니다.


  역사적 유적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가 없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미 발생한 사고에 낙심하지 않고, 수습하며 불운에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았달까요. 오히려 새로운 희망으로 느껴졌습니다. 재건 후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 기대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이번 위기는 코로나 19입니다. 살다보면 좋을 때도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이야기는 어쩜 그렇게 맞는 이야기일까요. 독감처럼 지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강한 바이러스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믿고, 늘 배워야 한다 생각했던 나라들에서 확진자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사망자수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슬픕니다. 한편으로는 위기에 똘똘 뭉치는 대한민국의 저력이 믿음직스럽습니다. 그동안 갈고 닦은 평소 실력이 실전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 잘 해내는 한국 사람들은, 지금까지 샴페인도 일찍 터트리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재확진자가 증가하는 숫자를 보면,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긴장감을 유지하고, 끝끝내 우리가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모든 경험을 세계적인 자산으로 승화시키면 좋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극복국가가 머지 않았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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