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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May 06. 2020

피아노와 회색 코끼리

예술이 주는 힐링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열 살 짜리 남학생의 피아노 연주를 보았습니다. 거실 한 가운데 놓인 까만 색 그랜드 피아노 위, 두 주먹만 한 크기의 회색 코끼리 인형을 얹어 놓고, 코끼리의 얼굴을 마주 보며 연주를 시작합니다.


  인형을 좋아하는 어린 소년인데 연주는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거침없습니다. 건반을 누르는 데 0.01초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피아노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손이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아요. 손가락 마디 대신 관절마다 스프링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건반을 누르는 손에서 탄성이 느껴지고, 움직임이 팔방으로 자유롭습니다.  


  마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메인 테마곡을 연주할 때엔 하늘의 뭉게구름이 눈앞에 펼쳐지고, 초록색 들판을 내달려, 산에 올랐다, 삐그덕 대는 성이 그려집니다. 피아노 전공생도 치기 힘들다는 리스트의 라캄파넬라를 연주하는 모습에선 파란 드레스를 입고 음반을 미끄러지던 김연아 선수가 떠올랐어요.


   쇼팽의 즉흥환상곡에서부터 아이유의 너랑 나,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피아노 선반을 들판 삼아 뛰노는 두 손을 보며 연주를 감상하면, 속이 후련해 집니다. 자진모리 장단부터 휘몰이 장단까지,피아노로 연주하는 사물놀이같습니다. 소년의 연주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합니다.  


  초등학교 이학 년 때, 다니던 피아노 학원은 피아노와 피아노 의자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방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각자 연습을 하고 있으면, 피아노 선생님께서 왔다갔다 하시며 그날의 연습 분량을 점검하시고, 손의 모양을 바로 잡아 주셨어요. "손가락을 눕히지 말고, 굽혀서! 직각으로! 그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저는 지금도 키보드 자판을 ㄱ자 손가락으로 두들깁니다.  


  피아노 연습은 지루했지만, 어느 순간 주변의 소음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에 피아노와 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어요. 손가락을 길게 펴 한 옥타브를 탕탕 두드리며 강한 음을 내거나, 손가락으로 건반을 도미노처럼 죽 훑을 때도 신이 났어요. 지루하게 연습하다 신나게 두들길 때, 엉덩이가 들썩거립니다. 그럴 땐, 피아니스트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피아노 위 전등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뜨겁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가슴이 답답할 땐, 하농을 꺼냈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을 옥타브가 다른 같은 음을 누르며, 피아노 왼쪽의 묵직한 소리부터 오른쪽 끝까지 높은 새소리까지, 규칙적인 박자로 또박또박 건반을 누르다 보면 엉킨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어요. 아름다움엔 힐링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술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인간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성취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함은 진정성이 강합니다. 이제 겨우 열 살 짜리 소년이지만,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통해 느끼는 좋은 기분을 나누고 싶다 말합니다. 코로나19로 지친 마음, 피아노 소리로 채워 보세요. 소년의 이름은 박지찬입니다.  


https://youtu.be/AwAcFX2zJWw

https://hoy.kr/ZrV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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