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Jun 20. 2020

싫은 것도 익숙해질 때가 있다

반려묘 별이와 살구나무


  반려묘 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앞발을 와이퍼처럼 번갈아가며 뭔가를 갖고 놀고 있다. 뭐지? 까만 작은 물체다. 가만 보니, 꿈틀거린다. 그리마다.


  2016년 8월부터 주택에 살고 있다. 땅에 가깝다 보니, 각종 벌레가 출몰한다. 집안에서 바퀴벌레나 개미 같은 해충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는 가끔 나타난다. 다리가 너무 많은 그리마는, 그 다리의 숫자만큼 이동 속도도 빨라, 어어 하는 순간 놓칠 때가 많다.


  놀라운 외모와는 달리, 그리마는 해충의 알을 먹어 치워, 사람에겐 오히려 이로운 곤충이라 한다. 그렇게 마음먹어도, 그리마는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장마철 즈음, 실컷 자란 가운데 손가락 만한 그리마가 나타나면, 머리카락이 쭈뼛 설만큼 그렇게 놀란다. 때려잡았을 때, 부르르 떨리는 일억 개의 다리를 보면 도저히 사랑하기 힘들다.


  그런데, 별이가 그 그리마를 잡아 놀고 있다니!


  벌레를 앞에 둔 별이의 표정은, 칭찬받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다. 별이는 그리마가 꿈틀거리다 다시 도망가려 하면, 왼발로 한 번 탁 쳐 다시 기운을 빼고, 지켜보다 왼발로 오른발로 이동시킨다. 여유 있다. 발레 하듯 우아하게 움직이는 별이에게 저런 모습이 있다니.


  그리마를 갖고 놀던 별이는 손으로 탁 찍어 입에 넣는다. 그렇지, 저 아이는 고양이였지. 먹이를 먹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본능이다. 재미있는 것은, 별이가 그리마를 갖고 노는 걸 본 이후로, 그리마에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그저, 별이의 장난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살구에 보이는 벌레도 그렇다.


  6월 중순이 되니, 살구나무가 살구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약을 거의 치지 않은 살구엔, 벌레 구멍, 새가 쪼아 먹은 구멍, 떨어지면서 들은 멍 등등으로 성한 모습이 별로 없다.


  처음엔, 벌레 먹은 살구는 버려야 하는 건가 망설였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벌레 먹은 과일일수록 맛있는 거라 하셨던 기억이 났다. 일부러 벌레가 많이 먹은 살구를 고른다.


  살구를 반으로 갈라, 벌레가 뜯어먹은 부분을 입으로 잘라 퉤 뱉는다. 그리고, 벌레가 있는지 살펴본다. 없는 것 같다. 입안에 넣는다. 크림 같이 부드러운 과육은 달콤하고, 향이 진하다. 해를 오래 맞은 살구에서는, 말린 살구보다 진한 향이 난다. 다른 살구를 집어 반을 가르면서, 생각한다. 벌레쯤 있어도 별 상관없을 것 같다고.  

  

  지금도 투두둑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 듣는 낯선 소리는 살구가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효과음이다. 생명력이 가득한 6월이 좋다.


http://linktr.ee/jaekyung.jeong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