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의 산문집 <호미>를 좋아한다. 세 번 이상 읽은 책들만 모여 있는 서가에서, 가장 윗줄 맨앞에 두고, 틈날 때마다 꺼내 읽을 만큼. 선생께서 아파트에 거주하다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시고, 땅과 가까이 하시며 꽃처럼 피워 낸 글들이 거기에 있다. 풀들과 씨름하며, 잡초 하나 없는 마당에 대한 자부심, 나무에 대한 애정이 목화처럼 피어 있는 글들.
선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마당에서 꽃을 볼 수 있도록 계획해 식물을 심었다 하셨다. 식물은 생물이라, 봄에는 봄 식물이, 여름에는 여름 식물이 출하된다. 초코파이처럼 일 년 내내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적어도 선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꽃시장에 들러 식물을 데려 오지 않으셨을까.
겨울에도 마당에서 꽃 피우는 식물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겨울인지 이른 봄인지 헛갈리는 그 즈음, 쌓인 눈을 녹이며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는 복수초를 꼽으셨다. <호미>에서 노란 꽃에 대한 묘사를 보곤, 행여 나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봄이 올락말락하는 즈음부터 눈 사이를 열심히 관찰했지만, 아직 만나보지 못 했다.
일 년 내내 꽃을 보는 정원이라니. 그게 가능할까. 매일 운중천의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보고 있자니, 내가 모를 뿐, 분명히 가능할 것 같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입추에 이를 때까지, 운중천을 달리며 많은 꽃을 보았다. 똑바로 보기 힘들만큼 눈이 부신 벚꽃을 지나, 아카시아 향이 공기를 적실 무렵 길가엔 샛노란 금계국이 손바닥 반만하게 피어 올랐고, 한창 때가 지난 금계국은 세가 줄어 지금은 손가락 두 마디 만 한 꽃을 피운다.
그렇게 여름 꽃이 서서히 물러가고, 드세게 타고오르는 칡덩굴과 환삼덩굴 사이로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봉오리 맺기 시작했다. 봄꽃이 가면, 여름 꽃이 오고, 여름 꽃이 가면 가을 꽃이 온다. 가을과 겨울엔 어떤 꽃을 볼 수 있을까.
보라색 꽃을 꼿꼿하게 피워 올린 비비추와 맥문동을 감상하며 달리는데 모터가 돌아가는 소음과 함께 등유를 타는 냄새가 난다. 풀과 나무 사이의 순한 공기 속에서, 연료가 타는 매연은 코가 아플만큼 독하다. 아, 이 소음과 이 냄새는 반갑지 않다. 예초기일 것이다. 조금 더 달리니, 뱀이 나올 것처럼 무성하고 빽빽하게 자랐던 풀들이 깨끗하게 정리된 천변이 보인다. 뱀은 이제 좀 더 먼 곳으로 이사 갔지 않았을까.
풀을 베다 뱀을 만나기도 하고, 벌레도 달려 들텐데, 새벽 시간에 풀을 베어주는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매연이 나오지 않는 예초기는 없을까. 버드나무 옆으론 땅이 깊게 패였다. 허리춤보다 더 깊게 패였다. 하마터면 내가 좋아하는 능수버들이 물에 떠내려 갈 뻔 했구나. 아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하게 버텨준 나무에게 고맙고, 그 정도에서 그친 비에게도 고맙다.
자연 속을 달리며, 나무에게, 사람에게, 하늘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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