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에세이 한 편, 일간 정재경 프로젝트 1년
프로라면 디카프리오나 고현정처럼 입금되면 일을 시작하는 거라 생각했다. 프로 작가도 입금이 되면 글을 쓰는 거라 정의했다. 문제는 입금이 될 일이 많지 않는다는 것.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신춘문예 등단한 것도 아닌, 이제 겨우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기 시작하는 작가에게 출간 계약서가 쇄도할 리 없다. '프로'라는 말은 그 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걸 의미한다. 작가로서는 아직 프로가 아닌 셈이다. 그럼 가끔씩 글을 써도 실력이 나아질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무슨 일이든 매일, 열심히 해야 실력이 자란다. 어떤 경우는 매일 해도 실력이 자라지 않을 수 있다. 화분에 싹만 틔우고 자라지 않는 식물이 얼마나 많은 지! 혹시 나도 그러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심히' '매일' '꾸준히' 해야 한다. 그 '열심히'의 기준이라는 건 도저히 못 할 것 같아 심장에 압박이 느껴지는 어떤 일을, 체력의 한계가 느껴질 만큼 도전할 때를 기준으로 한다.
동네 산책로를 달리며 느꼈다. 매일 가볍게 달리면 계속 가볍게 달릴 수만 있다.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싶다면 무릎과 다리의 근력 운동도 하고, 고관절 강화 운동도 하고, 체중도 가볍게 유지해야 한다. 마음이 편하고 신경 쓸 일이 없을 때엔 기록도 더 좋아진다. 그런데 프로 선수가 될 만큼 잘 달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달리기의 포지션은 글 쓰기에 도움이 될 정도의 비중이면 족하다. 세상 모든 일에 '열심히'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순 없다. '잘하고 싶은 일'을 '매일매일' '열심히' 하는 쪽으로 기운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매일매일 열심히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과연 내가 매일 쓸 수 있을까. 마음 저 깊은 곳에선 늘 그렇게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자기부정. 나를 믿을 수 없는 나는 매일 마감을 두기로 했다. 매일 200자 원고지 10장을 써 보자. 읽어 주실 독자를 모셔보자! 그렇게 작년 10월 1일 '일간 정재경'을 시작했다.
처음엔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글을 미리 써 두고 잠들기도 했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마무리할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해도 결국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은 날엔 새하얀 사절 도화지를 보는 것처럼 두려움이 밀려왔다. 약속을 했으니 쓸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쓴다. 매일 100%의 완성도를 바라보며 글을 썼지만 솔직하게 마음에 드는 날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계속하게 된다. 불완전함의 긍정 효과랄까.
일상도 재편하게 되었다. 잘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다른 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산책을 하거나 등산, 달리기 같이 자연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책을 더 많이 읽으며, 에너지를 채우는 일에 시간을 더 사용하게 되었다. 일상도 간소하게 가다듬었다. 밥 먹는 데 사용하는 시간도 줄였다.
새롭게 알게 된 점은 '글을 쓴다'는 것은 뇌의 활동과 육체노동이 결합하는 형태라는 것.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지만 글감을 채집하는 것은 24시간 아무 때나 할 수 있었다. 자다가 떠오르는 생각도 있고, 달리며 생각나는 일도 있다. 심장이 빨리 뛸 때, 졸릴 때, 설거지할 때, 샤워할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흐르고 그걸 바로바로 기록해두면 쓰기 수월했다. 머리와 몸 사용하는 방법을 새로 익히고 있다.
그렇게 훈련하는 동안 속도도 조금씩 빨라졌다. 처음엔 2시간 가까이 걸렸던 원고지 10장이 이젠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원고 청탁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스스로를 믿게 되었다는 것. 이제 잠을 설치지 않는다. 스스로 어떻게든 해 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인생사를 위해 여유분의 원고를 미리 써 두고 싶은데 아직 요원하다. 스누피의 아버지 챨스 M. 슐츠는 50여 년의 연재 동안 단 한 번도 펑크를 내지 않았는데, 그 비밀은 한 달 분의 여유 원고에 있었다. 약간의 여유분을 비축해 두고 싶다.
오늘로 1년이 되었다. 이메일을 열어 읽어 주시는 분들 덕분에 365일 원고지 10장을 써 3,650장의 원고가 모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3,650장은 가을 낙엽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부스러졌을 것이다. 식물은 서로에게 좋은 물질을 뿜어 주며 함께 성장한다. 우리도 성장하고 함께 있다고 믿는다.
10월부터는 일주일에 한 편씩 소설을 보내드리고 싶다. 초고는 벌써 써 두었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 용기를 내 한 자 씩 한 문장 씩 실타래를 풀어 보려 한다. 무엇이든 시작은 두렵다. 그런데 하다 보면 나아진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