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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Oct 22. 2024

우주처럼 커지는 열망

백남준 선생의 죽을 고생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사람을 만든다.


그중엔 개인적 경험도, 사회적 경험도 있다.


20세기에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 있다. 19로 시작하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속 정확'이었다. 시장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유리창에 빨간 궁서체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부속이라고 쓰인 나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아저씨 뒤편에 액자가 걸려 있었다. 아저씨는 "얼마나 드릴까요?" 하며 행주로 도마를 훔쳤다. 분홍색 등이 켜진 냉장고 문을 여는 어깨너머로 '신속'과 '정확'이 보였다.


‘신속’과 ‘정확’은 은행에서도, 학교에도, 공사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신속'이 가장 앞섰다. ‘정확’보다 ‘신속’이 앞서 ‘정확’은 흔들렸다. 정확하지 않은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하철 공사장에선 수시로 버스가 빠졌고, 백화점이 내려앉았고, 다리가 무너졌다. 아직도 공사장을 지날 때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곤 한다.


그러나 어떤 ‘신속’은 창조성을 자극해 세상에 없던 방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51년 미군이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부산 UN 묘지 방문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한겨울에 묘역에 푸른 잔디를 요구했고, 정주영 회장은 파랗게 풀이 나 있으면 되는 거냐 확인하고, 보리밭에서 새파랗게 자라는 보리를 UN 부지에 옮겨 심었다.  



경쟁, 경쟁, 경쟁


그다음으로 많이 들은 말은 '공부만 잘하면 돼'다. 어딜 가나 1등만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급격한 산업화 시기를 겪으며 덩달아 증가하는 수입을 교육에 썼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을 만큼 공부에 몰두했다.  


20세기의 친구들은 공부를 잘한 친구들도 나름의 성공과 성취를 거두었지만, 꼭 공부가 아니어도 다양한 형태의 성공이 있다고 증명해내고 있다. 공부 대신 야구를 열심히 했던 친구는 지금 가장 넉넉하게 살며 가정을 살뜰하게 돌보며 일과 커리어를 다 잡았다.  


여담이지만, 압도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엔 유년기에 운동선수를 한 사람들이 있다. 안도 다다오는 권투 선수였고, 미나 페르호벤의 설립자 미나가와 아키라는 육상 선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작가지만 마라토너이기도 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20세기의 말은 사실이다.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선 ‘어떻게든 되게 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 등 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등을 하라는 지시받기도 했다. 어떻게든 되게 하는 방법을 찾으며 경제는 풍선처럼 커졌다. 뻥 터지며 IMF가 왔고, 쪼그라든 사회는 그저 슬펐다.     



그리움은 썰물이다


외장하드에 2001년부터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사진 속엔 경험이 차곡차곡 들어 있다. 2004년 즈음, 중국 최대의 도매시장 이우 시장을 찾아 새벽에 버스를 타고 가던 날 사진이 있다. 바로 앞사람이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자욱한 상하이 길. 사진을 보니 목이 따갑게 메케하던 그날로 돌아간다. 처음 가는 곳에 대한 두려움, 걱정, 설렘, 좋은 제품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생생하다.


도쿄, 홍콩, 대만, 방콕, 런던, 파리... 박람회 사진이 흐른다. 파리에 머물던 아파트는 남색 때문에 33이라는 주소가 붙어 있었다. 돌벽돌 길을 지나면 나오는 작은 메자닌. 그곳이 당분간 우리의 집이었다. 2004년 설립한 생활용품 브랜드 더리빙팩토리의 히스토리와 함께 가로수길 복합 문화공간 카페 세컨드 팩토리에서 보낸 시간도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몽당디자인협동조합을 결성해 디자이너들과 함께 참여했던 전시회, 박람회, 팝업 스토어도 보인다. 그리곤 식물과 글에 빠져 산 시간이 있다. 사진은 온통 초록과 책, 강연장 사진이다.


지나온 과거를 보다 보면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30년? 50년? 80년? 그 시간을 어디에 쓰는 게 좋을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내딛는 발길을 주저하게 만든다.



백남준 선생의 1984년


백남준 선생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쓴 책을 읽다 1984년 전시에 대한 대목을 보았다. 1932년생 백남준 선생은 1984년엔 52세였다. 세계적인 예술가임을 감안하면 제작비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 역시 우주처럼 커져 전시에 필요한 예산이 40만 불로 추정되었다. 기업과 국가의 후원도 있었고, 전시도 성공적으로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백남준 선생은 이 전시의 적자로 몇 년 동안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모습은 어떻게든 싹을 틔워내는 식물과 같다. 자연과 예술은 생명력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인간에겐 자연과 예술이 꼭 필요하다. 다른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가질 때 스스로에 대해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포기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속에서 청기 백기 게임을 하는 질문이다. 큰 방향성을 두고는 오래 고민하게 되는데, 나도 백남준 선생처럼 도전하며 내 남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쓰기로 결정한다. 자연과 예술을 통해 감수성을 되찾고 창조성을 깨워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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