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뿜는 은방울꽃
식물은 자기에게 딱 맞는 일조량과 바람과 습기를 만나면 무섭게 자란다. 마당 구석에 조금 심은 쑥부쟁이가 마당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벌써 면적은 심은 부분의 두 배, 세 배만큼 쑥부쟁이로 뒤덮였다. 사실 쑥부쟁이는 잡초로 분류되기도 할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그냥 두고 보다간 마당 전체가 한 종류의 풀로 뒤덮일 것만 같았다.
아직 바람이 시린 초봄이었다. 낮이 되길 기다려 쓰레기봉투 한 장과 가위를 들고 쑥부쟁이를 뜯기 시작했다. 줄기를 거머쥐고 잡아 뜯었다. 내 손이 닿으면 조금 전까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생생하게 살아 있던 멀쩡한 생명이 뿌리째 뽑혀 나갔다. 비록 식물이 말은 못 해도 다 알고 있다. 숙청 당하고 있다는 것을. 손은 바쁘고 등에선 땀인지, 식은땀인지가 흐른다. 나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 “쑥부쟁이야, 정말 미안해. 그런데 우리 마당을 나눠 쓰자.”
실컷 뜯다 향기로운 바람에 손이 멈췄다. 뾰족뾰족한 쑥부쟁이 잎 사이로 넓적한 잎이 있었다. 새콤한 레몬 달콤한 사과 향이 진하게 풍겼다. 잎을 들추니 동그란 흰색 꽃이 조로롱 매달려 있었다. 은방울꽃이었다. 새하얗고 동그랗고 깨끗하고 귀여운 꽃. 미소가 배어 나왔다. 나는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다. 동아대백과사전을 ㄱ,ㄴ,ㄷ 순서로 넘기던 꼬마는 은방울꽃에서 시선이 멈춘다. 참 예쁜 꽃이네. 그때도 배시시 웃었다. 관찰하고 느끼는 동안 명랑해진다.
낯선 환경에 두기
어떤 식물은 한 곳에 뿌리내려 오래오래 살지만 자리를 옮겨 심으면 더 강해지는 식물도 있다. 은방울꽃도 그렇고, 살구나무도 그렇다. 마당의 살구나무도 여러 번 옮겨심기했기 때문에 잘 자랄 것이라고 했다. 사람도 낯선 환경에 노출할 때 더 튼튼하게 자라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자신을 낯선 환경에 데려다 두고 싶어서.
그런 사람들은 주로 브런치 스토리에 모여 있다. 브런치는 ‘작가들의 플랫폼’이다. 이곳엔 프로 작가, 보통 작가, 초보 작가, 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들이 모여 있다. 10년 전 그 시작쯤엔 대부분 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들만 있었다. 서비스 오픈 10년이 흐르며 작가들의 작가도 생기고, 오프라인 첫 전시도 열렸다.
‘어느 날 우연히 작가가 되었다’, ‘계속 쓰면 힘이 된다’, ‘나의 글이 세상과 만난다면’, ‘작가라는 평생의 여정’이라는 문장으로 전시를 끌어나간다. 이 말은 꼭 내 얘기 같은 보편성을 띤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땐 ‘작가’란 멀고도 멀어서 은하수 가까이에 있는 단어였다.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곳에 써야 하는 두려움, 그렇게 쓴 글이 아무 소용없다면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시작이 어려워지지만 초라함도, 형편없음도, 무관심도 견딜 수밖에 없다. 브런치 스토리는 반강제로 글을 쓰게 한다는 점이 고맙다.
평생의 여정
처음 책을 썼을 땐 다음 책을 쓸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두 번째 책을 썼을 땐 세 번째 기회가 있을까, 다음 기회가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여섯 권을 썼다. 한 권을 쓴 작가가 보기에 여섯 권은 많을 수도 있으나 최재천 박사는 70여 권의 책을 썼고, 마흔에 등단한 박완서 작가도 40권 남짓 썼다. 비교하는 마음이 고개를 치켜 들 때 작아진다. 그럴 땐 자연 속으로 달려간다. 어차피 작가는 평생의 여정이다.
갈대숲 사이 작은 천이 흐르는데 원앙 세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옆에 누가 보던 지 보지 않는지, 각자의 길을 간다. 시선이 원앙을 향한다. 물 위를 미끄러지며 노는 걸 지켜보았다. 꽁무니를 따라 시선이 이동하는데, 물 위에 비친 녹색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마음이 초록으로 물 드는 것 같았다.
자연을 관찰하는 것은 현재에 집중하게 만든다. 과거의 근심으로부터 미래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돕는다.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는 다른 생명체를 이해한 만큼 그 생물과 우리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앙 세 마리의 평온한 눈동자와 초록을 가득 담고 돌아오는 길엔 어떤 마음으로 달려갔는지 깨끗하게 잊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깨끗함과 밝음이 마음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