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가드닝
커리어는 우리의 경제적 자아입니다. 우리가 모두 다르듯, 커리어 역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커리어를 확장하고, 피보팅하고, 재설계한 이야기를 '커리어 가드닝'으로 씁니다. 정재경 작가
가족들과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머릿속 기억은 흐릿한데 가슴이 저릿저릿해 왔습니다. 많은 분께 그렇듯, 저에게도 IMF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같습니다.
다니던 직장이 사라지고, 스물다섯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아직 20대 중반밖에 안 됐는데, 월 해서 먹고살까? 다시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이력서를 아무리 넣어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용주라면 가장을 우선 채용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힘들었다는 말은 어리광일 지도 모릅니다. 환율이 거의 3배가량 폭등했고, 금리가 20%가 넘었습니다. 그 얘기는 오늘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의 가치가 1/3로 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기숙사가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던 친구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았고, 부동산을 많이 갖고 계시던 또 다른 친구의 아버지는 살림살이에 빨간딱지가 붙고, 경매로 헐값에 처분해야 했습니다. 그땐 차마 말하지 못하다가, 훗날 슬픈 눈으로 온 식구가 단칸방에서 생활했다며, 외부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썼던 경험을 말해주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쪼그라드는 비상사태엔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친한 선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며, 저에게 소개해 준다고 했습니다. 선배는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퇴직금을 모두 그 회사에 투자했다고 말했습니다. 선배는 제가 일을 잘하기 때문에 당신의 사업에 저를 초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찾아간 곳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본 곳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다단계 사업의 설명회장이었습니다.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오는데 쑥을 씹은 것 같았습니다.
그즈음, 모교 교수님께서 조교실을 통해 연락을 주셨습니다. 모 회사의 홍보팀에 계약직 일자리가 있다고, 혹시 생각이 있냐고 의사를 여쭈셨습니다.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가겠다고 했습니다. 홍보팀에선 소식지, 보도자료, 홍보물을 제작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행사가 있으면 한복을 입고 띠를 두르고, 머리를 예쁘게 단장하고 수상자 옆에서 상장을 들고 서서 밝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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