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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19. 2017

식물과 여름 나기

알았다고! 목마르다고 좀 그만해, 이 녀석들!

여름이 되니 나무들도 자꾸 목마르다고 잎이 축축 늘어지고, 잔디도 노랗게 질려 아침저녁으로 물을 달라고 찾으며, 심지어 아들도 시원한 물을 계속 원한다. 매일매일 물을 공급해야 하는 화분이 생기고, 지하층의 큰  나무 두 그루와 1층과 옥상의 잔디밭에, 실내 200 여 개의 화분, 게다가 아들을 위해서는 매일 물을 끓여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더워서 힘든데,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신상품 준비로 바쁜 회사일에 여름일까지 더해져 새벽 5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나의 일과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모자란 요즘이다. 


겨울의 화분 관리는 여름에 비하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어쩐지 별로 힘들지 않더라... 그러나, 생물의 성장이 급격하게 빨라지는 여름에는 화분에 흙도 금방 금방 마른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가 예쁘게 모양을 갖추려면 규칙적으로 비료도 공급해야 한다. 영양소가 모자라면, 가지도 들쭉날쭉 볼품없게 자라고, 잎사귀의 크기도 다 달라 아름다움의 기본 요소인 '비례, 균형, 대칭, 리듬감'을 맞추기 힘들어진다. 


급격하게 성장하는 나무들은 밑동 쪽에 가까운 오래된 가지들을 제거해 주면 더 신나게 새 잎을 밀어 올린다. 가지가 튼실하게 자라는 속도보다 잎이 나는 속도가 빠르니, 지지대를 세워주면 반듯하게 예쁜 나무를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지지대는 나무의 색상과 비슷한 색상으로 고르면 시선에 걸리지 않아 훨씬 아름답지만, 가지치기 해 낸 가지들도 버리지 말고 지지대로 쓰면 환경을 아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 

루비고무나무 또는 수채화고무나무라고 불리는. 나뭇가지 색상과 비슷한 지지대를 고르면 편안한 시선 처리가 가능하다.
아로우카리아는 잎이 무거워 더 강한 지지대가 필요하다. 잎에 가려 지지대가 잘 보이진 않으나, 그래도 비슷한 색상을 골라주는 편이 아름답다.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는 애기 해피트리는 줄기가 연약해 자꾸 옆으로 누워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고정해 줄 필요는 없고, 가지 사이로 줄기를 지지대에 잘 기대주면 된다. 
3년 전 잎사귀 한 개로 이만큼 키운 홍콩야자. 반려식물. 마땅히 묶을 끈이 없으면 케이블타이도 괜찮은 방법. 
케이블타이도 없으면 이렇게 집게로 찝어 두기도 한다. 
잘라낸 나무의 재활용. 나무 줄기와 색상이 비슷해 시선을 거르스지 않아 좋고, 재활용은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되고.
크리스마스 케익에 들어있던 루돌프를 버리기 아까워 화분에 꽂아 주었다. 볼때마다 미소가 지어지는 숨바꼭질.

영양제는 꼭 구입할 필요는 없고, 단백질이 많은 쌀뜨물과 달걀 껍데기를 구워 갈아낸 가루도 훌륭한 비료가 된다. 건강한 미생물 배양액인 EM용액은 동사무소나 구청에 가면 무료로 나눠주니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된다.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액상 칼슘 등의 영양제도 비료로 쓰는데, 희석해서 화분에 준다. 씹어 먹는 종합영양제 같은 것은 물에 잘 녹아 흙에 흡수되니, 그냥 화분 위에 두기도 한다. 쉽게 휴지통에 던져 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쓸모를 찾아내 환경을 덜 오염시켰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여름엔 벌레들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잊지 않고 EM 용액 희석액을 잎사귀와 뿌리에 도포하면 간간히 눈에 띌 뿐, 창궐하지는 않는다. 덥고 습해 벌레가 살기 좋은 계절이니, 비오킬이나 빅카드 같은 살충제도 구비해 놓는 편이 마음에 놓인다. 진드기와 응애 제거에 좋다 해서 마요네즈를 물에 타 스프레이 해 줬더니, 바닥이 끈적끈적해지는 부작용. 베란다가 아닌 실내에 식물을 키우는 내 경우에는 부적합한 것 같다. 이 방법은 옷상 텃밭에 다시 해 볼 예정. 유리세정제를 한 두 방울 타서 잎에 스프레이해 줬더니 잎이 반짝반짝해져 괜찮았다. 그렇지만 환기가 가능한 날에만. 환기가 안 되는 날에 유리세정제 스프레이는 아무리 한 두 방울이라도 내가 마시게 되니 아웃이다. 


어젯밤에도 스파티필름이 시들시들하길래 잡아당겼더니 뿌리가 쑥 빠진다. 스파티필름은 벌레 공격을 당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시들한 건 처음 보는 모습. 내가 모르는 벌레 공격인 것 같아 빅카드를 희석한 물을 주었다. 나쁜 녀석들. 얼마나 오랫동안 정성 들여 키운 아이들인데! 공들여 키운 내 식물들, 특히 텃밭의 야채를 공격하는 벌레들에게는 두 주먹을 꼭 쥐게 하는 분노와 살의가 느껴진다. 


물과 영양소를 잘 공급했고, 벌레도 없는데 시들시들한 나무들은 화분이 작아 뿌리가 자라지 못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런 나무들을 분갈이 해 주려 꺼내 보면 뿌리가 화분 가득히 자라 더 이상 뻗어나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양육자는 지켜보고 도와줄 뿐, 결국 나무는 자기가 자라고 싶은 대로 스스로 자란다. 결국은 잔디 심은 데 잔디 나고, 열무 심은 데 열무 난다. 다 그 나름대로의 정체성이 있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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