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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Nov 10. 2017

긴 겨울용 플랜테리어

실내 식물, 가구 재배치, 실내 공기질 관리

봄에는 비가 올수록 날이 따뜻해지고, 가을엔 비가 올수록 날씨가 추워집니다. 오늘 비가 내리는 걸 보니 곧 겨울이 성큼성큼 걸어올 모양이에요. 몸이 움츠려 드는 겨울,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더욱 디테일이 필요한 계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북유럽의 가구와 인테리어가 탄생한 배경엔 겨울이 길어 혹독한 기후 탓에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매우 긴 이유도 있대요. 만족감을 주는 심미적인 디테일이 있으면 훨씬 행복한 겨우살이를 할 수 있어요! 제겐 따뜻한 티와 블랭킷, 음악과 책, 식물이 바로 그것들이에요. 


우선 저 나름의 겨울 준비로는 옷장과 수납장, 책장의 안 쓰는 군살들을 모두 걷어내는 작업을 했고요, 가구를 옮겨 동선을 뚫어 주었어요. 나무들 중에서도 3년 동안 저희 집에서 잘 자라줘 고마운 수채화 고무나무는 더 잘 보이도록 중앙에 배치하고, 높이 올려주어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잘 보이도록 높이 올려주었어요. 동선과 시선이 잘 흘러가도록 배치하는 것. 우리 가족의 생활 습관 역시 조금씩 달라지니까, 스타일링은 이런저런 시도를 계속해 보시는 편이 좋은 거 같아요. 작은 변화로 일상이 상당히 편안해지거든요. 


거실을 가로질러 가구를 배치하면 공간이 답답해 보일까 걱정이 되었는데요, 오히려 용도를 정하고, 자리를 잡아 파티션으로 살짝 나눠 주니 아늑하면서도 더 자주 사용하는 공간으로 살아났어요. 가구 하나하나의 쓰임새도 다 살아나고요. 의자의 등을 파티션으로 활용하고, 그 뒤로 낮은 선반을 놓아 저희 가족의 추억이 담긴 소품들을 진열했어요. 기분 좋은 가족 박물관. 보아서 기분을 좋게 해 주지 않는 아이템들은 안 보이는 곳으로 아웃. 왔다 갔다 하며 가장 자주 보게 되는 공간에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템들로만 배치하는 거예요! 

코너에 위치한 수채화 고무나무. 이렇게 보아도 중심에 딱 보이고, 이렇게 보아도 중심에 딱 보이고. 

내 사랑 유칼립투스. 

그리고, 닫힌 실내에서도 바람결에 불어오는 향을 느끼고 싶어 매번 실패하지만, 허브류를 또 구입했어요. 라벤더, 로즈메리, 페퍼민트, 애플민트, 그리고 유칼립투스. 허브는 바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실내에서는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또 도전. 얘네들을 잘 키워, 내년에는 선큰 정원에 옮겨 심어 주고 싶어요. 그래서, 선풍기(=써큘레이터)를 허브 앞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바람을 살짝 틀어줍니다. 유칼립투스는 일주일에 두 번은 물을 주어야 해요. 모시고 살려고 데려온 것은 아닌데...... 허브는 상전입니다. 

저쪽은 모노톤으로 정리해 준 벽이에요. 보는 순간 집으로 데려와야겠다 생각한 올리브 나무와 제가 그린 그림들. 둘은 정서적 코드가 비슷해서, 저 벽으로 시선이 닿을 때마다 마음에 찰랑찰랑 차오르는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특히 아침 해가 35도쯤의 각도로 들어올 때, 그때의 광량과 느낌이 제일 좋아요. 그림 앞의 프리츠 한센 테이블에서는 아들은 공부도 하고, 조카들은 숙제도 하고, 손님들이 오시면 키친 테이블을 잔뜩 어질러 둔 채로 이쪽 테이블을 옮겨 티를 마시기도 해요.

계단 끝에는 분갈이해 준 독구리 난을 올려두었어요. 남편과 제가 둘 다 좋아하는 식물. 생각보다 별 탈 없이 잘 자라 서면서도 잎의 끝이 동양화처럼 힘 있게 쭉 뻗어나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독구리 난은 흰색 화분과 잘 어울려요. 분갈이해 주고 더 사랑스러운 아기예요. 식물들에겐 화분이 날개입니다. :) 시선이 자주 떨어지는 곳에는 제일 좋아하는 오브제! 공식처럼 꼭 기억하세요.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을 때는 제일 생각나는 것, 자꾸 보고 싶은 것 순으로 골라주세요. 별것 아닌 걸 별 것으로 만드는, 별 것 아닌 팁이에요. 

이 사진은 옥상에 심어두고 잊어 버린 아보카도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난 걸 옮겨심어 주었어요. 

옥상 텃밭을 정리하려 갔다가 발견한! 애기 아보카도 나무. 뭔지 모르겠는 잎이 삐죽이 올라왔는데 아우라를 뿜고 있는 거예요. 무슨 잡초가 아우라가 있지? 했다가 아보카도 씨앗을 심어둔 걸 기억해 냈어요. 아뿔싸... 뿌리가 인삼처럼 자라는지 몰랐어요. 이미 큰 화분에 뿌리가 빼곡하게 자라 옮겨 심는데 애먹었지요. 뿌리를 큰 각설탕처럼 네모로 잘라, 그대로 옮겨 심어 주었는데 새 잎을 틔우고 있어요. 무심결에 버렸던 씨앗들이 흙을 만나면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다는 걸 보고 듣고 경험으로 다시 기억합니다. 

떡갈나무가 숲처럼 무성해졌는데, 쟤도 분갈이해 줘야 하는데... 내년 봄으로 미룹니다. 나무들이 하도 많다 보니, 봄가을이면 분갈이하느라 벅차요. 줄기와 잎만큼 뿌리도 자라 화분에 꽉 차 숨 쉴 틈이 없어지거든요. 건강하지 못 한 뿌리는 솎아내고, 포기를 나눠주고, 뿌리도 여유를 주어야 더 자라거든요. 해를 넘기며 잘 크던 나무가 갑자기 시들시들하다면 분갈이 시점을 의심해 보셔야 해요. 욕실에도 식물을 더더 놓기로 했어요. 식물은 계속 증식하니 자꾸 늘어납니다. ^^ 의자 위 극락조는 저는 별로 안 좋아해서, 가장 짧게 보이는 곳으로 이동. 

선큰에는 사계절 푸르른 황금측백나무를 심어 주었어요. 마음에 드는 나무를 찾아 여주 농원까지 가서 사 왔습니다. :) 차에 싣고 왔는데, 무당벌레, 개미, 거미도 다 같이 묻어와서 약간 난감했지만,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선물해 줬지요. 햇빛을 받고 반짝이는 나뭇잎을 보면 자꾸 저 공간을 서성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 사람을 보려면 그 사람의 정원을 보라는 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살아 있는 생물이 주는 에너지. 공간 자체가 푸르른 식물로 가득 찬 온실 같은 집입니다. 


실내 온도는 21도 정도, 실내 습도는 60~70% 정도를 유지하게 관리하고요. 식물이 많다 보니, 약간 습한 편이라 습도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도 주방이나 욕실 사용 후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습기를 내 보내고, 실내 초미세 수치는 10~20 사이를 유지하는 것으로 관리합니다. 건강에는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현관문을 열면서는 숨이 크게 쉬어지는 온실 같은 집. 그렇지만, 산 향기 풀향기 흙냄새가 그리워요. 

양평 구하우스 바자회에서 고른 두 권의 책. 요즘 책을 읽을 때엔 텍스트 속 인용된 다른 책들을 찾아 또 읽고, 나와 맞는 작가들을 찾아 읽고, 나의 사고방식과 같은 서술, 나랑 가치관과 취향이 비슷한 책들을 찾아 나름 사유의 오솔길을 거닐고 있어요. 인생 속도 조절. 도서관과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들과 손 잡고 도서관 가는 소소하지만, 지금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복. 도서관에서 잔뜩 빌린 책들과 mighty leaf의 chamomile citrus tea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어요. 이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가을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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