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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Dec 12. 2018

보는 것과 아는 것

 다 아는 거 같으면서도

무의식의 흐름대로


수업받고 남은 꽃으로 테이블 용 센터 피스를 만들었다. 무의식의 흐름대로 거침없이 꽂았다. 눈앞에 꽃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면 크레파스 색깔을 고르던 어린이로 돌아간다. 왕자 크레파스에서 '왕'자가 똑같이 보이도록 나란히 놓았다가, 뒤집어 글씨가 안 보이는 쪽으로 줄을 세운다. 흰색, 노란색, 초록색 순서로 정리했다가, 뒤집어 쏟아 다시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순서로 끼워 넣었다. 잠시 그 시절에 다녀오면 꽃은 벌써 다 꽂혀 있다.


"엄마, 이거 엄마가 만든 거야?"

"응."

"진짜?"

"응. 쓸 만 해?"

"우와, 정말 예쁜데? 꽃 색상도 너무 조화롭고, 구도도 좋고, 너무 아름답다. 엄마는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게 아니구나. 배우면 쓸 수 있구나. 역시 우리 엄마는 대단해. 나도 그래야겠다."


이런 칭찬을 들어 본 적이 있던가. 아들은 내게 늘 후한 점수를 준다. 너무 긍정적으로 말해 주니 정말인지, 듣기 좋으라 공치사하는 건지 헛갈린다. 얼마 전 새 책 원고를 읽고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객관적 지표로 삼긴 힘들겠다. 그래도 문맥의 흐름이 툭툭 걸리는 곳이 있다고, 조금 고쳐야겠다고 조언하기도 했구나. 사실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이가 나를 키운다.


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5개월 동안 꽃을 배웠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이 자꾸 튀어나와 난감했다. 요리를 잘하려면 칼질부터 스타카토 소리처럼 경쾌하게 들리도록 연습하고, 꽃을 잘 꽂으려면 다듬기부터 정확하고 빠르게 해야 한다. 성실하게 근육을 움직이는 시간을 아교 삼아 정직하게 실력을 쌓아 나가야 견고하다. 겉모습만 흉내 내면 무너져 내린다.

보는 것과 아는 것


꽃 수업은 꽃 이름, 특징, 정리하는 방법, 꽃 꽂는 순서 등 이론 수업 후 선생님의 실습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선생님께서 시연하실 때는 '아~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 쉽게 이해가 된다. 선생님처럼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이, 오늘은 아주 쉽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막상 책상 앞으로 돌아가 꽃을 꽂으려고 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뭐부터 해야 하지?


그럴 때는 선생님의 작품을 360도로 찬찬히 돌려 보고 머릿속에 다시 그린 후, 책상으로 돌아와 윤곽을 생각하며 한 개 한 개 꼽는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시 보고 온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동영상도 찍지만, 사진을 보며 따라 하긴 힘들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왜곡이 생겨 실제와 비슷할 뿐 똑같지 않았다. 다시 보고 와서 또 꽂고, 또 꽂고. 그래도 시간은 정직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손은 빨라지고, 꽃은 조금씩 매무새가 단정해졌다.


그런데, 아들도 눈으로 보고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영어 단어를 외웠다면서 물어보면 그다지 시원치 않다. "손으로 쓰면서 중얼중얼거려야 해. 아들. 손 근육과 눈 근육과 머리 근육, 입근육을 함께 써 근육에 배어야 해."라고 같은 얘기를 고장 난 테이프 레코더처럼 되풀이 말해도 아들은 한결같이 똑같다. 뭔가 해주려 하지 말고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하나? 엄마가 처음인 나는 갈대처럼 춤을 춘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작곡가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는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라는 책에서 베토벤의 아버지는 자로 손을 때려가며 연습을 시켰다며 재능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재능은 유전 같은 거라 시추하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르는 거라고 쓰기도 했다.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들이 와서 "엄마, 안아줘라." 하고 와 볼을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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