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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Dec 04. 2018

네 포기 김장

올해도 담갔다

배추


김장을 할까 말까. 2포기만 할까? 그러지 말고 4포기 할까? 지난 달부터 마트에 갈 때마다 배추를 흘깃흘깃 보며 망설였었다. 야채 코너 배추는 가볍고, 비리비리한 느낌이라 '흥, 오늘도 배추가 좋지 않네.' 핑계를 대기 딱 좋았다. 고작 2포기, 4포기를 망설이는 초보가 좋은 배추를 알아보는 눈이 있을 리 없다. 그러면서도 뭔가 잘 아는 것처럼 계산대로 걸어 가며 "배추가 나빠 다행이야. 누가 농사를 지은 배추가 있으면 사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아이가 네 살 때부터 김장을 한다. 올해는 열무김치도, 파김치도 담가 먹었다. 입맛은 취향이고, 취향에는 수고가 따른다. 김장은 익숙해질만도 한데 만만하지 않다. 여전히 맛이 들쭉날쭉해 부족한 솜씨임을 일깨워준다. 특히 작년엔 김장이 그저 그래서 참으로 난감했었다. 결국 거의 전부를 매실청 넣고 들기름에 볶아 겨우 먹어 치웠다. 그런데 왜 자꾸 김치를 담그는 걸까? 어쩌다가 한 번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게 담가지기도 하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망설이던 차에 동네 카페에 눈이 번쩍 뜨이는 글이 올라왔다. 친정 어머니께서 직접 농사를 지으신 배추를 4통이나 주셨는데, 김치를 담글 줄 몰라 드림하겠다는 글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그런 배추를 기다리고 있는 걸 어떻게 아셨지. 선물같다. 얼른 댓글을 달아야지. 이런. 내가 두 번째네. 첫 번째 댓글을 다신 분이 망설이시다 내게 양보를 해 주셨다. 올레! 내 차례가 되었다. 이런 배추는 품질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자식 먹으라 짓는 농사를 대충 하셨을 가.


저 먼 발치에서 들고 오시는 배추 봉지가 묵직하다. 내용물을 보지 못 했는 벌써부터 마음에 든다. 밭에서 바로 뽑았다며 무와 파도 함께 주셨다. 김장 속을 얹은 노란 추 속을 상상하니, 입안에 침이 고이고, 미소가 배시시 배어 나온다. "이렇게 귀한 걸 제게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몫의 인사와 함께 내가 쓴 책을 같이 전한다. 돌아서는 데 맛있는 김치를 먹을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김치 담그기


집에 오자마자 손이 분주하다. 먼저 배추 밑동에 칼집을 내 손으로 잡아 반으로 갈랐다. 우와! 소리가 터져나온다. 배추 속이 샛노랗게 꽉 차 있다. 엄마가 김치를 담글 때에도 배추 속은 이렇게 노란 색으로 꽉 차 있었다. 이 배추는 기억 속의 배추와 똑같다. 세상에, 이렇게 귀한 배추가 내게로 오다니. 노란 속을 뜯어 먹으니 달큰하다. 그렇잖아도 배추를 좋아하는데. 뜯어 먹고 또 뜯어 먹어도 속이 꽉 찬 배추는 넉넉하다.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고  레시피 북을 꺼냈다. 어떤 레시피로 담가 볼까? 늘 내가 담그던 레시피를 쓸까?아니지, 이렇게 귀한 배추에는 그에 맞는 레시피를 써야지. 좀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속리산 '경희식당'의 레시피를 꺼냈다. 기왕 요리책을 볼 거면 깊은 손맛을 가진 할머니의 레시피를 쓰는 거야. 무와 배를 채 쳐 고춧가루에 먼저 버무려 놓고, 어머니께서 내려 주신 액젓에 청각도 다져 넣고, 갓도 쓸어 넣고, 생새우도 갈아 넣고, 배도 채 쳐 넣고 솜씨를 한껏 부다.


속이 꽉찬 배추는 잎을 하나하나 깨끗이 씻어 물이 빠지도록 뒤집어 둔다. 김치를 넣을 통을 준비한 다음 속을 듬뿍 묻혀 통속에 가지런히 담는다. 통에 다 담은 후 발효가 될 때까지 2일 정도 묵혀 김치냉장고 속으로 넣었다. 버무리며 노란 배추에 김치 속을 얹어 계속 먹었다. 내가 음식을 준비하면 가장 맛있는 게 내 차지가 된다.


이번 김치는 맛있으면 좋겠다. 김치가 넉넉하면 겨우내 먹거리가 풍요롭다. 찌개도 끓여 먹고, 볶음밥도 해 먹고, 찜도 해 먹고. 남편은 사서 고생하지 말고 그냥 사다 먹으라 한다. 그 얘기를 듣는 아들은 그렇게 역사와 전통은 사라지는 거라 답한다. 역사와 전통은 네가 지켜도 되는데. 니가 해라, 아들. 그나저나 내겐 언제쯤 고유의 김치가 생길까? 늘 같은 맛을 내는, 늘 좋은 글을 쓰는 고수의 솜씨를 갖고 싶다. 실력 만해 지는 그 시점은 어디 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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