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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셀레브리티,
아레카야자, 고무나무, 떡갈나무

쑥쑥 잘 자라면서도 아름다운 삼총사

사지선다 문제풀이가 익숙한 학력고사 세대인 저는 꼭 정답을 찾는 나쁜 습관이 있어요. 이 습관을 어서 버려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이제 인생이 정답이 있는 객관식이 아니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긴 서술형 픽션이라는 걸 알면서도요.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련의 과정을 거쳐 이제 겨우 정답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나 싶은데, 이상하게도 식물을 집에 데려올 때마다 꼭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마음이 든단 말이에요. 이 식물이 나에게 정답일까 아닐까. 어떤 식물을 만났을 때 미소가 빙그레 배어 나올지 아닐지 그건 저도 모르는 시작하는 연애 같은 건데, 우리 집에 맞는 식물이 어떻게 정답이 정해져 있는 객관식일 수 있겠어요. 


작년 봄에는 남편이 너무 예쁘다며 꽃을 피운 식물을 데려왔어요. 줄기를 따라 자잘한 잎이 달려 있고, 노란 꽃이 대롱대롱 매달린 낭창낭창한 식물이었어요. 예쁘긴 했는데, 저는 이상하게 이름도 궁금하지 않을 만큼 정이 안 가더라고요. 저는 아레카야자나 인도 고무나무, 떡갈나무 같은 잎이 크고 선이 시원하게 쭉쭉 뻗는 애들이 좋아요. 그때, '아. 식물도 음악이나 영화처럼 내게 에너지를 주는 분명한 장르가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남편이 모처럼 데려온 그 식물은 무관심한 제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진드기가 뒤덮었고, 곧 집 밖으로 쫓겨났어요. 미안했지만, 진드기가 다른 식물로 옮겨가면 방법이 없으니까요.  

예뻤지만, 정이 가지 않았던 꽃. 이름도 묻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이 식물이 나에게 좋은 파장의 에너지를 증폭시켜주는지, 이상하게 얼굴이 찌푸려지는 스트레스를 주는지는 본인만 알 수 있어요. 소금이나 물처럼 누구에게나 '이게 좋아'라고 권하기 힘든 이유예요. 그림을 좋아하는 제게 어떤 그림을 사면 좋은지 묻는 분들께는 작은 그림부터 시작하라 조언해 드리는데, 식물도 마찬가지예요. 작은 아이들부터 내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예민하게 느껴보셔요.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끼고, 점점  자신이 붙으면 더 큰 화분으로 옮겨가는 연착륙이 좋을 것 같아요. 식물 사진을 보시면서 몇 가지 골라 두시고, 실물이 같은 에너지를 주는지도 마음에게 물어보셔요. 


저희 집엔 스튜디오에 1그루, 거실에 2 그루, 주방에 1 그루, 아이방에 3그루, 복도에 1그루 해서 총 8그루나 있는, 제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레카야자가 있어요. 아름다우면서 쑥쑥 자라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아레카야자는 고고한 선비가 인생의 정점에서 힘 있게 친 난처럼 기개가 있어 좋아요. 잎이 쭉 뻗어 늘어지는 모양을 보면 마음이 유연 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창문을 열면 바람결을 따라 잎끼리 부딪히는데 그림자도 춤추듯 부드럽고, 소리도 가볍고 명쾌합니다. 층고 2300mm의 아파트에서는 높이 1.6~7미터 정도가 비율이 제일 아름답게 느껴질 거예요. 

어느 곳에서도 잘 어울리는 아레카야자.

아레카야자는 병충해, 관리, 공기 정화능력, 휘발성 화학물질 제거력, 증산력 등을 고려하는 NASA의 종합 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식물이기도 해요. 아름답고, 잘 자라면서도 실내공기정화식물로도 최고인 모던마더 평점 5점짜리. 그러나,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가 늘 좋아하는 아레카야자를 잎끝이 날카로워 싫다고 말하는 솔직한 친구를 만났거든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알을 깨고 나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누구나 좋아하는 무난한 식물이라 생각했는데, 제 친구는 둥글고 넙적한 잎을 좋아하는 분명한 취향이 있었던 거예요. 


여름에 폭풍 성장하는 인도 고무나무는 스튜디오에 2그루, 거실에 1그루, 아이방에 1그루 있어 총 4그루 있는 나무예요. 역시 제가 좋아하는 나무. 잎이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데다 크기도 일정하게 자라는 편이라 시각적으로 걸리는데 없이 편하고 아름다워요. NASA 선정 공기정화식물 순위 4위에 랭크되어 있고요. 나무의 모양이 뛰어나게 아름다워 영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공기정화식물이에요. 벌레도 잘 안 생기고요. 실내 화학적 독소 제거 능력이 뛰어난데, 특히 포름알데히드 제거 효과가 좋습니다. 

가운데 우뚝 선 나무가 인도고무나무에요. 왼쪽 9시 방향도 인도고무나무. 
일 년 반 만에 폭풍성장한 수채화 고무나무. 잎이 조금 더 분홍빛으로 물들면 좋겠어요.

저는 인도 고무나무와 모양이 비슷한 수채화 고무나무를 좋아해요. 핑크빛이 도는 잎이 눈길을 사로잡아요. 4년 전 쇼룸을 오픈할 때 후배가 선물로 보내준 화분인데, 처음 왔을 때는 아가 같았는데 지금은 장군처럼 자랐어요. 크기가 3배는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가는 데마다 같이 다닌 식물들은 영혼이 스며들어 동반자가 되는 느낌이에요. 제게 가장 좋은 에너지를 주는 식물이라, 눈에 제일 잘 띄는 코너에 배치해 두었답니다. 수채화 고무나무에겐 동쪽과 남쪽으로 창이 난 그곳이 빛도, 온도도 제일 잘 맞아요. 부러지거나 상처가 나면 라텍스 성분을 포함한 하얀 잎 물을 미안할 정도로 줄줄 흘리는 게 특징이에요. 


쑥쑥 잘 자라면서 아름다운 나무 마지막은 떡갈나무예요. 거실에 한 그루, 2층 침실에 한 그루 해서 두 그루밖에 없지만, 사진 찍은 자료를 보니 떡갈나무가  정말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NASA 선정 공기정화식물 50위 안에는 없지만, <<사람을 살리는 실내 식물>>이라는 책에서는 종류나 모양에 상관없이 녹색의 식물이 많을수록 사람에게 좋다고 결론을 내주셔서 실내공기정화식물로 소개합니다. 영국 잡지에 보면 천정 끝까지 닿도록 키워 모양을 잡은 떡갈 고무나무들이 자주 등장해요. 

떡갈나무는 속을 썩일 일이 없어요. :) 잘 자라는 식물.

사실 오늘 제가 알려드린 쑥쑥 나무 삼총사는 인테리어 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식물 셀리브리티들이에요. 어떤 인테리어나, 어떤 가구에도 잘 어울리는 전전후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그래도, 꼭 체크해 보셔야 할 점은 내가 이 나무에 긍정 에너지를 받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요. 단언컨대 식물을 키우는데 정답은 없습니다. 집집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지구 상에 76억의 인구가 모두 다른 것처럼 식물을 즐기며 키우는 방법도 76억 개는 있다 생각하시고 정답은 보류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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