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Mar 07. 2018

기왕이면 다홍 화분

인테리어의 비기 '피할 수 없으면 과감하게 드러내라'

이곳에서 뭔가 만나겠구나!


어떤 식물은 두더지 게임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처럼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고, 그럴 땐 반사적으로 두더지를 때려잡듯 재빨리 낚아 채야해요. 길을 잘 못 들어 금토동을 지나는데, 높고, 번쩍이고, 차가운 판교 테크노밸리와 대조적으로 낮고 넓게 비닐하우스가 늘어서 있는 거예요. OO농장, **화원, 팔손이, 허브 전문 등의 팻말이 보이는데, 심상치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뭔가를 만나겠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


비닐하우스는 대부분 문이 잠겨 있었어요. 그래도 뭔가 느낌이 오는데 그냥 물러설 수는 없어서, 전화번호가 있는 비닐하우스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장님은 성남에 있는 화원에, 어떤 사장님은 먼 곳에 있다며 내일 오라 하시는데 응답이 없는 전화번호가 부지기수예요. 전화를 열 통쯤 걸었을까요. 근처에 계신 사장님과 통화가 되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앞에 서서 기다리니 꼬부랑 할머니께서 일꾼과 함께 나오셨어요.  


비닐하우스 농장에 들어서니 추운 겨울 난방을 위한 연탄난로들이 곳곳에 서 있고 냄새는 매캐합니다. 연기가 가득 찬 비닐하우스는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헛갈릴 만큼 음산했어요. 그래도 다른 이들의 발길이 덜 닿은 곳일수록, 보물 발견의 확률이 높은 걸 알지요. 팔손이가 가득하고, 한 동에는 이름 모르는 나무가 가득한데, 저 쪽에서 강렬한 포스를 뿜고 있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같은 기품이 서린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쟤는 얼마예요?"

"쟤는 10만 원은 줘 야지."

"비싸요"

"원래 비싼 나무여."  


이런 농장에서는 내가 스스로 옮기고, 분갈이하고, 잔손질을 하는 대신 공장도가=농장가로 식물을 구입할 수 있어요. 김영란 법의 여파로 대형 화분이 전혀 안 나간다며 푸념하시면서도 결국 하나도 깎아주지 않으시고 10만 원에 흥정이 끝납니다. 흥정이랄 것도 없어요. 이미 저는 저 나무에 넘어갔는걸요. 벌써 머릿속에서는 어디에 놓을지, 어떻게 꾸밀지 레이아웃이 핑핑 돌아갑니다.

왼쪽 사진의 저 나무가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우리집에 온 나무는 조금 더 날씬한 나무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과감하게 드러내라


SUV에 겨우 싣고 돌아오니 이제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아요. 제가 도대체 어떤 나무를 사 온 걸까요? 궁금해 인터넷 카페에 사진을 올리고, 금송 10만 원 바가지인가요? 여쭙니다. 그 정도 크기의 금송은 40만 원은 줘야 하는 귀한 나무라고 댓글이 달립니다. 득템! 실내에서 소나무 향이 나길 기대했기 때문에 소나무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 실망했지만, 괜찮아요. 이미 비주얼에 홀딱 빠졌는걸요.


첫날 밤을 자고 일어나니! 이런! 징그러운 민달팽이가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닙니다. 겨우 민달팽이쯤이야. 맥주를 담은 그릇을 화분 근처에 두니 밤 사이 스스로 와서 풍덩 빠집니다. 동시에 EM용액을 탄 물을 뿌리에 젖을 만큼 듬뿍 줬어요. 밤 사이 몇 마리의 그리마도 함께 빠져 있습니다. 이럴 줄 알고 저는 실내에서도 꼭 슬리퍼를 신고 다녀요. 식물이 많은 곳은 당연히 벌레가 있습니다. 해충이 아니라면 너그러워지자 생각해요.


나무를 처음 집으로 데려오면 분갈이하고픈 마음이 근질근질해도 참는 편이 좋은데요, 나무도 생물이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요. 제게도 새로운 식구가 잘 적응하는지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고요. 식물에게 분갈이는 몸살이 나는 일이니, 환경 변수를 제어한 후 분갈이를 하는 편이 나무 건강에 좋아요. 그 얘기를 미학적 관점에서 풀면 안 예쁜 까맣고 큰 화분을 그저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너무 괴로워요.  


'피할 수 없으면 과감하게 드러내라'는 인테리어의 비기예요. 저는 금송의 까만 화분을 감추지 말고 오히려 노란 도트를 붙여 과감하게 드러냈어요. 늘 제게 긍정 에너지를 주는 샛 노란색 팬톤 컬러 넘버 123 필름지로 10cm 도트를 오려 화분에 붙였어요. 화분에만 붙이니 난데없어 벽면으로 몇 개 더 붙여 라인을 빼 주니 훨씬 나아요. 화분을 덮는 바구니나 종이 화분 같은 것도 훌륭한 플랜테리어 아이템이 됩니다. 넉넉한 사이즈를 골라 통풍이 가능하게 해야 하는 점을 잊지 마세요.  

노란 팬톤 넘버 123! 도트는 이번 시즌 최신 유행템이기도 해요.
플라스틱 화분을 가리는 훌륭한 페이퍼 백들
화분 커버를 씌울 땐 공간을 넉넉하게 쓰셔야 해요. 그래야 통풍이 되어 식물 건강에 좋아요.
공간을 넉넉하게 띄우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버리려던 이런 바구니도 사이즈에 맞는 화분에 씌워주면 훌륭한 소품으로 탄생해요. :)

까만 화분으로 지켜보다가 신입 나무가 잘 적응하면 그때 마음에 드는 화분으로 옮겨주세요. 베란다가 아닌 실내에서 키우는 화분은 절대적으로 토분이 좋습니다. 뿌리의 습도와 호흡을 적극적으로 도우니 적응도 빠르고, 식물 컨디션도 좋고요. 그렇지만, 큰 화분은 무거우니 분갈이 등 향후 대책을 생각하면 조금 덜 예쁘더라도 가벼운 화분이 좋아요. 큰 나무이미 뿌리가 튼실하게 자라 적응력이 뛰어나니 어떤 화분이던 괜찮습니다.

베란다가 아닌 실내에서는 토분이 제일 좋아요.

Like it / 공유 / 구독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응원 부탁드려요! 


이전 09화 솟아 나는 새잎, 차오르는 에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