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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Sep 04. 2020

집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못한 이유

녹두죽과 무생채

잠시 쉬려고 누웠는데 저녁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돌덩이를 끌어안고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몸이 쑤셨다. 아가미를 잃은 것처럼 가슴이 조여 오고 답답했다. 요즘 육아와 살림하느라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멀리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겨우 눈을 떴다. 천장을 감돌고 있던 빛 조각들이 썰물처럼 창밖으로 서서히 빠져나갔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열이 나는가 싶어서 온도계로 발열 체크를 했다. 괜찮았다. 아내의 체온도 쟀다. 괜찮았다. 아이도. 다행이었다.

자꾸만 킁킁거렸다. 혹시나 냄새를 못 맡을까 봐. 인터넷으로 코로나 19 초기 증상을 검색해보고, 지역의 확진자 동선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단순 몸살 같았지만,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적 없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발열이 나면 바로 보건소에 갈 마음의 채비를 했다.

그날부터 집에서 마스크를 썼다. 청소할 때도, 요리할 때도 벗지 않았다. 아이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이 시국에’ 아이에게 행여 감기를 옮길 순 없었다. 내가 아픈 것보다 내가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함이 컸다. 코로나 19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전파가 되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모르는 사람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가까운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걸 코로나 시대가 가르쳐줬다.

아빠가 왜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지 모르는 마꼬는 내 얼굴에 손을 뻗으려 했다. 나는 뽀뽀하고 싶은 걸 참고 아이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코로나에 걸리면 이 아이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 몸도 몸이지만 아내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아내는 출산 후 몸이 뜨겁고 열이 나서 힘들어했다. 얹힌 것처럼 소화가 잘 안 되어서 며칠 고생했다. 보다 못한 나는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여 녹두죽과 무생채를 했다. 둘 다 처음 해보는 거였지만 생각보다 쉬웠다.

제일 어려운 건 기다리는 일이었다. 단단한 녹두를 24시간 불려야 했다.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녹두가 팅팅 불면 믹서기로 곱게 갈았다. 쌀은 3시간 정도 불렸다. 불린 쌀과 녹두에 물을 붓고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휘휘 저었다. 녹두의 고소한 냄새가 주방 가득 퍼질 때까지 끓였다.

천연 소화제라 불리는 무로는 생채를 했다. 채 썬 무에 멸치액젓을 넣어 먼저 간이 배게 했다. 파를 넣고 다진 마늘, 생강 아주 조금, 매실액, 고춧가루, 식초를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쓱쓱 버무렸다.

아내 주려고 만든 음식들인데 어째 나 먹으려고 만든 것처럼 됐다. 식탁에 앉으니 아내보다 내가 환자 같아 보였다. 입안이 헐어서 침도 삼키기 어려웠는데 녹두죽을 먹으니 한결 나았다. 녹두는 체내 독소를 제거하고 열을 내려주는 효능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부종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어 출산 후 다리 붓기 때문에 고민하는 아내에게도 효과를 보였다. 새콤달콤한 무생채는 면역력이 떨어져 소화가 잘 안 되는 내게 맞춤이었다. 겨우 속이 뚫렸다.

아내가 말했다.
“아프면 안 돼. 우리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아프면 큰일이야.”

아내의 말이 맞았다. 갓난쟁이 육아를 하는 집에서 부모가 아프면 큰 일이 나고 만다. 나는 꼬박 삼 일을 앓았다. 그동안 아내가 나를 간호했다. 내 밥을 차려주고 마꼬와 포카를 돌보느라 다음엔 아내가 몸져누웠다. 몸져누운 아내를 돌보다 내가 또 몸져눕고, 다시 아내가 몸져누웠다. 바보들의 릴레이처럼 보일 테지만 우리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체온계로 발열 체크를 할 때마다 바코드를 찍듯 삐- 소리가 났다. 체온은 이제 한 사람을 규정하는 주요 요소가 됐다. 나는 체온이 올라갔을까 봐 늘 두려웠다.

그 기간 동안 몇 번의 악몽 같은 상상을 했다. 상상을 멈추려 해도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눈길이 갔다. 코로나 19 확진자의 알림 문자가 올수록 내가 서 있는 지반이 5cm씩 얇아지는 기분이었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으니 아가미를 잃은 것처럼 가슴이 조여오고 답답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했다. 코로나 19가 뺏은 건 단지 일상의 평온함만이 아니었다. 도무지 집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녹두는 숙주처럼 찬 성질을 갖고 있어서 몸이 찬 산모들은 피하는 게 좋아요.

-무생채, 겉절이 같은 경우는 간을 할 때, 좀 짜게 해야 되겠더라고요. 나중에 염분에 절여진 채소에서 물이 나와 간이 싱거워져요. 내 입맛보다 조금 짜다 싶을 정도로 간을 해야 나중에 그래, 이거지! 싶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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