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장
칼슘은 핑계고, 비타민 D도 핑계고, 아무튼 아내에게 밖에 좀 나가자고 했다. 집돌이인 나와 달리 아내는 하루라도 밖에 나가지 않으면 좀이 쑤셔했다. 하지만 출산 이후 아내는 다른 사람이 됐다. 산욕기가 지난 지 꽤 됐는데도, 아내는 몸이 쑤신다며 집 밖을 나갈 생각을 안 했다. 코로나 19가 창궐한 세상이 두렵긴 해도 내내 집에만 있으니 사람이 축 쳐지는 게, 이러다 산후 우울증이 오는 게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칼슘 부족으로 나온 아내의 산후 검진 결과를 들먹였다. 칼슘의 체내 흡수율을 돕는 비타민 D는 햇살에 15~30분 흠뻑 몸을 적셔야 형성되는 것이라며 아내를 꼬드겼다. 아내의 건강을 위하는 거라고 말을 꾸몄지만 필사적인 건 사실 나였다. 매일 아이 돌보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포카 산책시키다 보니, 몸도 지쳤지만 마음이 먼저 지쳤다. 비타민 D는 핑계고, 나는 아내랑 잠시라도 밖에서 콧바람을 쐬고 싶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마꼬를 둘러업고 아이용품을 바리바리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동굴 밖으로 처음 나온 인류처럼 우리는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멀뚱대며 방황했다. 한참 끝에 우리는 이끌리듯 집 근처 카페에 갔다. 마꼬 탄생 이후 두 달 만에 처음 카페에 가는 것이었다. 아주 끔찍할 정도로 달콤한 게 먹고 싶었다.
SNS에서 유행한 지 꽤 지난 달고나 커피가 메뉴에 있길래 나는 감격해하며 주문했다. 아내는 밀크티와 초콜릿이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잠시 수다를 떨었다. 커피와 밀크티, 아이스크림이라니, 감격에 겨웠다. 마꼬가 조금 컸다고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어 마꼬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5분 정도 지났을까. 카페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묘한 위기감이 들었다. 우리는 거의 원샷을 하고 카페를 나와야 했다.
구청에서 보내주는 코로나 19 확진자의 동선 문자가 바지 주머니 속에서 지진처럼 울렸다. 그 진동과 소음이 우리를 움츠려 들게 했다. 우리가 지나갔던 골목과 상점을 확진자가 스쳐갔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나갈 수가 없었다.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아이의 안전을 두고 주사위를 굴릴 순 없었다.
한편으론 이제 심각하게 아내의 비타민 D 결핍이 걱정되었다. 우리나라 산모는 산욕기(6주)까지 외출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코로나 19로 외출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으니, 비타민 D 결핍에 빠지기 쉬운 조건이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비타민 D는 체외로 칼슘이 빠져나가는 걸 막고 흡수를 돕는다. 아이의 뼈 건강과 면역체계에 큰 영향을 주는 비타민 D는 임산부와 산모들이 꼭 섭취해야 하는 필수 영양소다. 음식만으론 일일 권장량을 섭취하기 어려워 최근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내 역시 산부인과에서 추천하여 임신 때부터 비타민 D 약을 먹어왔다. 혹시 몰라서 지난번 산후 검사 후엔 칼슘 보충제도 바로 샀다. 약으로 칼슘과 비타민 D를 보충하고, 이를 보조한다는 개념으로 나는 두 가지 영양소를 고려한 칼슘(feat. 비타민D) 식단을 짰다.
비타민 D는 계란 노른자, 목이버섯, 표고버섯, 등 푸른 생선에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2018년 농촌진흥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유명한 비타민 D 공급원인 마른 표고버섯은 100g당 199㎍를 함유하고 있다. 표고버섯보다 마른 목이버섯은 364㎍로 훨씬 함유량이 높다. 달걀은 45㎍로 마른 버섯류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등 푸른 생선 중엔 청어(48㎍)가 높은 편이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연어(33㎍), 멸치(17㎍), 고등어(9㎍)에도 비타민 D를 상당 함유하고 있다.
표고버섯과 목이버섯, 계란을 활용한 요리를 자주 먹었지만, 아내는 비타민 D 함유 식재료 중 유독 연어를 원했다. 아내의 연어사랑은 익히 유별났다. 임신 중에도, 조리원에서도 아내는 생 연어를 먹고 싶어 했다. 그런 아내를 위해 나는 아내와 종종 갔던 음식점에서 싱싱한 연어회를 사다 줬다. 생 연어를 사 와 연어덮밥과 연어 샐러드를 해주기도 했다. 이번엔 연어장을 할 계획이었다. 예전에 아내가 내게 해줬던 음식이었는데, 화답하듯 이번엔 내가 해주고 싶었다.
우선 연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손질했다. 그다음엔 연어를 재울 맛간장을 준비했다. 냄비에 간장과 물을 붓는데, 준비한 연어가 잠길 정도로 넣었다. 여기에 설탕과 물엿, 미림, 통후추, 월계수 잎을 넣고 끓였다. 그동안 마늘, 양파, 파, 고추, 생강, 레몬을 잘라 준비했다. 열탕 소독을 한 유리통에 연어를 넣고 향신채들도 함께 넣은 다음, 차갑게 식힌 맛간장을 재료가 잠기도록 부어주었다. 단단하게 밀봉한 후에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연어장이 익을까 싶어 애물단지 살펴보듯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한 지 불과 하루가 지났을 때, 맛이나 한번 보자면서 우리는 참지 못하고 연어장을 꺼냈다. 아! 하지만 기대보다 별로였다. 연어에 맛이 강하게 배어있지 않았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금 더 참기로 했다.
사흘이 지나고, 이제는 때가 됐다면서 우리는 연어장을 그릇에 고이 담았다. 맛간장을 흡수한 갈색 빛깔의 연어를 칼슘이 풍부한 곤드레밥과 함께 먹었다. 씹을수록 보드라운 식감과 함께 양념의 진한 맛이 입 안을 감돌았다. 향신채들 덕분에 비린 맛은 전혀 없었고, 간장의 짠맛과 달콤함, 레몬의 새콤함이 연어 특유의 느끼함을 확실히 잡아주었다. 곤드레의 향이 깊게 밴 고슬고슬한 밥과 연어장을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코로나 19는 여전히 기승이고, 밖에는 무서워서 못 나갔겠고, 아내의 칼슘도 비타민 D도 걱정이지만, 연어장을 먹으니 나도 아내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만 우리 마음은 잠시나마 변했다. 이런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정성 들여 다림질하듯 마음을 잘 챙기고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한다. 코로나는 핑계고, 아무튼 결론은 연어장이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연어장이 산모가 먹기에 조금 짤 것 같은 분들은 생언어를 이용해 연어덮밥을 드시는 게 좋겠어요. 밥 위에 찬물에 담가 매운맛을 뺀 양파를 깔고 쯔유나 맛간장으로 간을 한 다음 연어와 고추냉이를 올리면 손쉽게 연어덮밥을 만들 수 있어요.
-댓글을 달아주신 @Lovesther 님의 제보에 따르면, 맛간장을 완전히 식히지 않고 한 김 식혀서 연어에 부어 냉장고에 넣어두면 반나절 만에도 먹을 수 있다고 해요. 물론 이 경우에도 하루 지난 것이 더 맛있다고 하네요. 참고하세요! 제보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