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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평 임대 주택 논란이 내게 던진 화두

가치 판단의 편향성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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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평 아파트(공용 면적 포함하면 21평형) 논란을 보면서, 유튜브에서 문제의 아파트를 찬찬히 봐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방콕의 원룸보다 커요.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은 방콕에서도 중산층이 사는 곳이에요. 원룸이지만 가끔 연예인도 보이고, 3,4인 가족도 많이 살고요. 이 동네에선 보기 드문 대단지이기도 해요. 태국보다 우리나라가 잘 사니까, 눈높이가 다른 건 당연하죠. 이렇게까지 난리가 날 정도면 제 시각에 어떤 문제가 있나를 돌아보게 돼요.


일단 저는 결혼을 안 한 솔로니까 아이를 키우는 집의 애환을 이해하지 못해요. 못 살았던 과거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고요. 매일 청소를 하면서, 방이 더 커지는 거에 대한 공포심도 약간 있어요. 지금도 청소가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어요. 집이 커질수록 내 삶은 황폐해진다. 작은 집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사람들의 분노에 깜짝 놀랄 수밖에요. 이렇게나 평균적인 시각에서 멀어서야, 어떻게 글을 쓰며 살 수 있을까요? 고등학교 때 연립 주택에서 살 때가 그럼 지옥이었나? 거실이랄 것도 없는 코딱지만 한 공간에 볼품없는 방 세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어요. 지옥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요. 저는 사람들의 '분노'에 놀라는 거예요. 작은 집 싫어할 수 있죠. 큰 집 더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가고요. 어떻게 그런 곳에 살라고 할 수가 있어? '혐오의 크기'인 거잖아요. 절대로 절대로 그 누구도 그 공간에선 4명은 못 산다. 감옥 같은 느낌인 거죠?


아마도 제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라, 좋은 뜻이겠지. 의도는 좋겠지. 이미 방향을 설정하고 해석하려고 해서인가 봐요. 아이가 힘이 넘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내 공간이 없어서 돌아버릴 것 같은 아빠였다면 달랐겠죠. 하루 한두 시간이라도 가족에게서 자유롭고 싶은 법이니까요. 부모도, 아이도 최소한의 거리가 있어야 숨이라도 쉬는 거니까요. 거리가 꼭 필요한 이들의 절박함을 헤아릴 능력이 없어요. 그래도 저의 괴리감은 여전히 커요. 제가 사는 이곳 사람들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요. 한국에선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인간에게 적합한 공간, 그 정답은 어디에 있나? 어리둥절해져요.


저의 어리둥절함이 바로 '꼰대' 지점일 거예요. 내 기준으로, 세상을 평가하는 거죠. 풍요를 맛본 이들이 생각하는 '기본'을 너무 낮게 본 거예요. 너나 거기서 살아라. 이 말이 저주가 되더군요. 와, 괜찮은데? 저는 사실 솔깃했거든요.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우니 완벽하지 않아도 이 정도면 되겠다. 그 수준도 안 되는 집이란 거죠? 내 시각과 다르니까, 인식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배우고, 고민하는 시간으로 삼으려고요. 모든 요구는 옳은가? 지금까지는 그걸 고민했어요. 오늘부로 내 시각은 옳은가? 같이 고민해 봐야겠어요. 행복하고 싶은 거잖아요. 화내고 싶어서 화내는 게 아니잖아요. 5평 정도가 더 커지면, 그땐 화해의 순간도 오는 거죠. 그 다섯 평이 세 평에서 마무리된다고 해도 이해해줄 사람은 많을 거예요. 그래요. 세 평이 더 커지는 노력을 해야죠. 정부도, 우리도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 사고가 치우쳐 있다는 걸 발견할 때, 기쁘기도 해요.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공허한 중립을 꿈꾸지 않아요. 그렇게 숨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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