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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불편한 이유

참아라, 먼저 화해해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by 박민우

늘 이런 글을 쓸 때는 저격이 아닌가? 마음 한쪽이 불편해지기는 해요. 그러면서도 또 아, 이런 글은 써야 해. 피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참아라. 화해해라. 이 말이 저는 참 무서워요. 누군가와 문제가 생겼을 때, 저보고 자꾸만 참으래요. 저의 어머니가 그런 분 중 한 분이죠. 친구 문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으면, 너무 제가 양보를 안 한다는 거예요. 흠 없는 사람 다 쳐내면, 늙어서 외롭게 죽는다고요. 그렇게 내가 팍팍한 사람인가? 제가 저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불 수 있겠어요? 그래도 어머니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어요. 흠이 있다고 인간관계 끊으면 안 된다. 그 말씀에는 저 역시 백 번 동의해요. 저도 악바리는 못돼요. 기를 쓰고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요. 그냥 먼저 연락을 안 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거죠. 어머니는 그러지도 말라는 거고요. 먼저 손을 내밀라는 거죠.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싶으신 거죠. 소원한 모습이 각박하게 느껴지시나 봐요.


주변에 그런 친구들 꽤 있어요. 제가 입에 거품을 물면 불편해하는 친구요. 본인 기준으로는,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니까요. 자신들은 얼마든지 양보하고, 참을 수 있으니까요. 착한 친구들 중에는, 관계가 깨지는 걸 몹시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직접 당사자도 아닌데, 한 다리 건너서의 관계까지 회복되기를 바라요. 문제는 실체를 외면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고, 왜 당사자가 상처를 받았는지에 대해선 집중하지 않아요. 알아도 달라질 거 없다. 까발린다고 해서, 생기는 게 뭐니? 묻어 두라는 거죠. 차라리 너도 이런 건 잘못했네. 선을 그어주면, 답답함이 덜하죠. 그냥 눈을 감아 버려요. 그리고는 화해를 강조해요. 저는 화해와 양보를 특히 싫어하는 극단주의자가 되어 버려요.


좋은 관계는 상호 간의 예의와 존중이 기본인 거 맞죠? 저는 그게 깨졌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말리는 사람들은, 제 해석이 틀렸다는 거고요. 아니, 그런 해석질을 하지 말라는 거죠. 그 친구에게도 기회를 줘라. 아니, 무슨 제가 조선시대 망나니인가요? 저에게 칼자루가 있다고 보는 게 맞나요? 자꾸만 저보고 그러지 말래요. 뭘 그러지 말라는 걸까요? 먼저 손을 내밀래요. 그럴 때 굉장히 고독해지더라고요. 착한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가 오히려 더 클 때가 있어요. 나만 나쁜 놈 만들기. 그걸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죠.


맞아요. 인간관계에서 손해 안 보려는 것도 욕심이죠.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실수도 하는 거고요. 번번이 그런 실수로 돌아선다면, 남아날 사람 없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그게 또 무례한 누군가를, 방조하는 걸 수도 있어요.


-어머, 이 와인 완전 싸구려 맞죠? 맛이 왜 이래.


파나마에서 저는 초대를 받아요. 한국인 부부였는데, 굉장히 독특하더라고요. 무슨 말만 꺼내도, 일단 딴지를 걸어요. 집에서 파티를 한다기에 와인을 사 갔어요. 세일하는 걸 산 건 맞아요. 주머니도 가벼웠으니까요. 눈앞에서 제가 사 간 와인이 너무 맛없다는 거예요.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겠어요? 그렇다고 화를 낸 건 아니에요. 그냥 숨고 싶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느라 힘들었을 뿐이죠. 그때 같은 자리에 있던 남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둘만 있을 때 와인 이야기가 나왔어요. 제가 너무 당혹스러웠다고 했더니, 오해라는 거예요. 어떤 지점이 어떻게 오해라는 건지. 저도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무안했겠다. 그 정도면 충분할 텐데, 전혀 공감을 안 해주더군요.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따지지 못하고, 뒷담화나 까는 제가 지질한 놈이죠. 그런데 그 순간 재빨리 항의하고, 끝을 보는 게 쉽나요? 모욕을 당한 순간에는, 경황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느껴야 하는 건지, 무슨 의도로 내게 이러는 건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사람도 많고, 다들 웃고 있는데 정색하고 싶지도 않고요. 나중에 그 작가와 부부는 더 심하게 싸우고, 평생 안 본다더라고요.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저는 그 작가에게 받은 상처가 더 컸어요.


좋은 게 좋은 거다. 그건 아니에요. 좋아지고 싶은 의지가 있어야 해요. 서로에게 다요. 그게 없으면, 그냥 공회전인 거예요. 헛발질인 거죠.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덮는다고, 악취가 사라지는 건 아니까요. 차라리 일대일로 만나서, 머리 쥐어뜯으면서 싸워라. 그게 나을 수도 있어요. 선한 사람의 선한 의지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PS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요? 아뇨. 오래전 일이에요. 그런데도 왜 이 글을 쓰냐고요? 오래오래 전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될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미움을 당연시 생각하며 품고 살지는 말자고요. 흐르는 대로 살아요.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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