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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Feb 02. 2021

선진국에 실망했던 썰 풉니다

역시 다 사람 사는 곳이었어요

1. 런던의 부동산 사기꾼


보통 월세를 계약하면, 보증금으로 한두 달 월세를 더 내요. 방을 뺄 때, 되돌려 받죠. 저는 치밀하지는 않지만, 소심하기는 해요. 백만 원 가까운 큰돈 혹시 못 받을까 봐, 부동산 사무실에 몇 번을 갔나 몰라요. 나 떠나는 날 알고 있지? 공항 가기 전까지는 꼭 받아야 해. 몇 번을 가서 확인하고, 확인했어요. 떠나는 날, 돈을 줘야 할 사장이 안 보이는 거예요.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데, 한 시간 가까이 안 오는 거예요. 몸이 부들부들 다 떨리더군요. 피 같은 내 돈 이렇게 날리는 건가? 아니죠. 저는 계속 기다려요. 부동산 직원도 당황하더군요.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놈이 왜 계속 저러고 있지? 거짓말이었거든요. 비행기 시간을 네 시간 정도 당겨서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저에겐 네 시간의 여유가 있는 거죠. 사장 새끼가 한국 사람을 물로 본거죠. 보증금 사기 사건을 좀 많이 들었어야죠. 비행기 타고 떠나는 불쌍한 유학생 등 처먹는 게, 복덕방 사장의 취미랍니다. 설마 저에게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요. 공항에 진즉에 달려가야 할 놈이 계속 버티고 있으니, 사장이 결국 오더군요. 똥 씹은 표정으로, 자기 돈 동냥하는 것처럼 주더군요. 영국 사람은 신사요? 영국에서 보증금 사기 사건은 지금도 성황리에 일어나고 있답니다. 영국놈에게 치를 떨고, 피눈물 흐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겠죠?


2. 미국 친구 R이 펑펑 울어요


R은 중국에서 만난 여행 친구예요. 미국이 얼마나 쿨한 나라인지 들어 보실래요? 현 남자 친구가 있지만, 전 남자 친구를 만나러 중국에 와요. 전 남자 친구가 중국에 유학 중이었어요. 전 남자 친구와 한 방을 쓰면서 여행까지 해요. 가끔씩 현 남자 친구와 화상 통화를 해요. 보고 싶다. 사랑한다. 사랑의 손키스, 쪽쪽. R이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홀로 남았어요. 전 남자 친구는, 학교로 돌아가야 했거든요. 막상 혼자가 되니, 겁이 난다며 펑펑 울더라고요. 신세한탄을 해요. 빚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학비 내랴, 생활하랴.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대요. 나름 명문대 학생이지만, 그 빚 갚는데 최소 5년은 걸릴 거래요. 그리고 나면 집 장만하려고, 또 빚을 져야 한대요. 평생 빚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나마 자기는 변변한 직업을 가질 수나 있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대요. 그전까지 저는 미국이란 나라가, 누구든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대학 갈 필요성도 못 느끼는 거고요. 어디나 다 먹고사는 건 팍팍하구나. 또 다른 미국 친구 말로는, 미국은 기가 아예 안 들어오는 동네도 있다더군요(15년 전 대화입니다).


3. 양파 샌드위치를 먹는다고? 캐나다


캐나다 친구는 캐나다에서도 좀 가난한 축에 속했어요. 서스캐처원이라고 앨버타랑 붙어 있는 곳 출신이죠. 저는 앨버타만 가봤는데, 그곳은 부티가 철철 흘렀거든요. 서스캐처원도 석유가 나는 곳이라, 못 사는 주는 아니래요. 아버지가 양파 샌드위치를 즐겨 드셨대요. 아, 그런가 보다 했죠. 양파 샌드위치에는 뭐가 들어가냐고 물었어요. 양파만 들어간대요. 소스도 없이, 생 양파만 얇게 썰어서 빵에 넣으면 끝. 그게 양파 샌드위치래요. 빵과 양파로 한 끼를 때워요? 겨울에도 난방을 거의 틀지 않는대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온도를 맞추고, 그것조차 잠이 들기 전에 끈대요. 난방은 옷으로 하는 거래요. 몇 겹의 옷을 입고, 수면 양말을 신고 잠을 잔답니다. 차비가 없어서 왕복 세 시간을 매일 걸으면서 학교를 다녔더라고요. 제 친구가 평균적인 캐나다인의 삶은 당연히 아니겠죠. 하지만 태국에선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양파 샌드위치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 거예요. 진짜 배고프면, 직접 물고기라도 잡겠죠. 제가 런던에 있을 때도, 같은 집에 사는 친구들이 케첩만 넣은 스파게티를 정말 맛있게 먹더군요.  


4. 무시무시한 유럽의 취업난


15년 전이기는 한데, 런던에서 취업이 그렇게나 힘든 건 줄 몰랐어요. 어학원 선생이 신세 한탄을 하더라고요. 오죽 경쟁이 치열하면,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했대요. 그래도 떨어진대요. 무보수를 자청한 사람들도 이미 차고 넘쳐서요. 경력직을 찾는데, 뽑지를 않으니, 경력을 어떻게 쌓느냐며 우는 소리를 하더군요. 베니스에서 온 같은 반 친구도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겁난대요. 일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관광객만 많지, 관광업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베니스도 지옥이래요. 베니스는 자기처럼 젊은 사람이 살 곳이 절대 못 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도 이젠 남 이야기가 아니죠. 성장이 멈추면, 안정이 아니라 또 다른 불안이 오는 걸 알았어요. 선진국이어서 피할 수 없는 실업률이 그제야 심각하게 와 닿더군요. 선진국이 되고 싶지 않은 나라는 없어요. 하지만 선진국이 되고 나면 성장은 꺾이기 마련이죠. 젊은 친구들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요. 계속해서 성장하려면, 이민을 받아야죠. 가난한 이민자들이 활력이 되고, 또 갈등이 돼요. 이러기도, 저러기도 쉽지 않죠. 젊은 친구들에겐, 성장 중인 나라가 더 나을 거예요. 일자리가 넘치고, 자신의 성장의 중심이 되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으니까요.


5. 이런 쓰레기들은 다 어느 나라 사람인 거야?


백인은 경우가 바른, 배려의 인종인 줄 알았어요. 어릴 때부터 봤던 영화나 소설, 순정 만화가 그렇다고 했으니까요. 그런 콘텐츠에 세뇌당했으니, 백인에 대한 기본적인 호감이 있는 거죠. 저는 마약을 하는 사람을 탓할 마음은 없어요. 자기네 나라에서는 거의 합법(특히 대마초)이라니까요.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약에 취해서는 버스 복도에서 쭈그려 앉아 있기(거의 묘기에 가까웠음), 대걸레로 숙소 주인 내려 찍기(벨기에 놈이었을 거예요. 술에 취한 건지, 약에 취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에서 온 여자를 보고 원숭이 같다며 키득거리는 놈(이탈리아 놈), 게스트 하우스에서 수건으로 대충 가려놓고 신음 소리 첨부하며 섹스에 몰입하는 것들(방을 따로 잡을 돈이 없다는 게 더 실망스러웠음), 북한 사람이냐, 남한 사람이냐? 백이면 백, 이걸 묻는데 북한이란 나라만 알지. 그  나라가 얼마나 폐쇄적인 나라인지는 아무도 모름. 단 한 명도, 북한은 여행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걸 모르더군요. 지리적, 역사적인 무지가 굉장히 일반적이에요. 아시아에만 국한된 무식이란 생각은 안 들더군요. 우리나라보다 평균적인 독서량은 훨씬 많다는데, 그게 인문학적 지식과 연관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환상이 깨진 이야기만 하다 보니, 험담이 되어 버렸네요. 저는 어디나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선진국의 장점도 언젠가는 써야죠. 그들의 아름다운 여유와 관대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 소원은 90살까지 쓰고, 죽기 전까지 쓰고, 죽고 나서 편히 쉬는 삶입니다. 이렇게나 야심가입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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