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를 통해 본, 새로운 동거 문화 예측
제 주변엔 결혼 안 한 찬구들이 많아요.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인가 봐요. 막연한 불안감이야 다들 있죠. 그래서 제가 어느 나라에서 노후를 보낼 건지, 물어들 보더라고요. 같이 살자는 거죠. 친한 친구들끼리 살면, 매일매일이 캠핑 같을까? 아니요. 아닐 거라고 확신해요. 요즘 KBS '같이 삽시다'를 유튜브로 자주 보게 돼요.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떤 때는 놀랍고, 어떤 때는 섬뜩해요. 왜 '같이 삽시다'가 뜨는 걸까요? 제 관심을 이것들은 왜 이리 함부로 해석할까요?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요. 박원숙이 주축이 돼서, 혜은이, 김영란이 남해에서 같이 살아요. 위키 백과를 검색해 보니까, 2017년 추석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더군요. 반응이 좋아서 정규로 편성이 됐고요. 4년 전에 시작했던 프로그램이란 게 놀랍네요. 시즌1에서는 문숙(요즘 유튜버로 급부상 중이죠), 김혜정(전원일기에서 복길이 엄마로 나왔던)이 출연했어요. 게스트로 주병진, 서정희, 전원주, 혜은이 등이 나왔고요. 게스트가 인연이 되어, 혜은이가 고정 출연자가 돼요. 이 프로그램이 시즌3까지 나올 수 있었던 건, 출연자의 매력도 크겠지만, 시대 분위기도 있죠. '나 혼자 산다' 나, '나는 자연인이다'처럼요.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남 일 같지 않아서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혹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노년의 여자들이 함께 사는 '같이 삽시다' 역시 누군가에게는 마냥 부러운 삶인 거죠.
저는 이 방송을 보는 저의 태도가 좀 웃기더군요. 그렇게 조마조마할 수가 없어요. 채식과 요가를 즐기는 문숙을 보면서, 어울리기 힘들겠네. 카메라 돌아가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네. 저 자유로움을 시청자들이 이해해 줄까? 김영란은 이기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방송 재미를 위해서는 꼭 있어야겠네. 혜은이는 카메라 의식을 전혀 안 하네. 어떻게 보일까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연예인도 있나? 너무 어릴 때부터 스폿 라이트를 받아서일까? 이혼과 사기 충격이 가시지 않은 건가? 출연자들은 모두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걸까? 방송이라 억지로 참는 걸까? 카메라 꺼지면, 싸늘해지는 건 아닐까? 방송을 보면서도, 제가 눈치를 보고 있더라고요. 같이 살기에, 부적합한 성격인 거죠. 초반에 배려해 주는 척, 눈치만 보다가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저일 거예요.
방송이 백 프로 진실일 리야 없죠. 카메라 안 돌아가면, 수고하셨습니다. 각자 방에서 개인 시간을 갖겠죠. 갑자기 정색하면서요. 방송은 방송, 사생활은 사생활. 그렇게 선 긋는 사람이 저중에 없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카메라가 돌아가면 자기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박원숙의 존재감이 엄청나더군요. 맏언니 박원숙이 없었다면, 진즉에 프로그램 접었어요. 프로그램 인기가 좋아도, 콩가루처럼 흩어졌을 거예요. 박원숙이 집을 알아보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한집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요. 친구처럼 살 줄 알았는데, 다들 손님이라면서요. 매일 손님 뒤치다꺼리에 기가 다 빨린다고 푸념하더군요. 대본 아니고, 진심 같더라고요. 저는 그게 바로 동거의 진실이라고 봐요. 초반 며칠이야 당연히 행복하죠. 신선하기까지 하죠. 이런 게 사는 맛이구나. 같이 음식도 해 먹고, 살아온 이야기도 하면서 TV를 보면 얼마나 훈훈하겠어요? 나이 먹으면, 고독사가 남 이야기가 아니죠. 혼자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 그런 공포가 없는 다정한 공동체. 참 바람직하죠. 그게 며칠이나 가겠어요?
개개인의 다름이 점점 꼴 보기가 싫어지는 순간이 와요.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는 사람, 욕실에 들어가면 기본이 한 시간인 사람, 자기 빨래, 남의 빨래 철저히 구별하는 사람, 그러지 않는 사람, 음식 먹을 때 트림하는 사람, 깨작대는 사람, 뭐만 하자고 하면 인상부터 쓰는 사람, 자기 것부터 챙기는 사람, 게스트가 왔는데도 심드렁한 사람(그래도 방송인데) 등등이 거슬리기 시작하죠. 일단 한 번 거슬리면, 그런 행동은 계속 거슬리고, 빈도수도 잦아져요. 그런 것들만 보이니까요. 같이 살면 비극으로 끝날 확률이 그래서 훨씬 높죠. 가족이라서 참을 수 있었던 인내심이 타인에게서는 장기간 발휘되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적극적으로 고민하면, '동거'는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자신의 공간(화장실 포함)이 확실하게 확보되어야겠고, 공동체 교육도 따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인과의 동거가 기본적으로 어렵다는 관점에서 시작해야죠. 각자가 조금씩 참으면 된다. 이건 말이 안 되고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공동체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알아야 해요. 교육이 핵심이에요. 엄격한 규칙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필수 덕목임을 잘 알고 있어야겠죠. 오늘은 혜은이가 새로 온 김청에게 랍스터 살을 발라 주면서, 자식들한테도 살 발라줘 본 적 없다더군요. 연예인이 엄마가 되면, 저럴 수도 있구나. 늘 세상의 중심이었던 연예인들의 동거는, 이런 면들이 신선하고, 재미나더군요. 미래에는 공동 주택이 여러 형태로 나올 거예요. 또, 모르죠. 그래서 노년이 더 깨가 쏟아질지도요. 나이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네. 젊음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집만 나누는 동거인들끼리 화목한 여생을 보낼 수도 있는 거죠. 함께 개 산책을 끝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삶도 좀 멋지지 않나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의문이, 스치듯 지나가는 사유가 글이 됩니다.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약간은 방심하고, 약간은 예리해져야 합니다. 어렵지 않고, 쉽지 않습니다.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