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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배낭 여행자 VS 요즘 배낭 여행자

여행자들도 이렇게나 달라졌습니다

by 박민우


1. 론리 플래닛 VS 구글맵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사전처럼 두꺼운 론리 플래닛은 기본이었죠. 그게 있어야, 진정한 여행자의 멋이 완성됐죠. 론리 플래닛은 원서로 읽어야, 그 맛이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가이드북을 사전까지 찾아가면서 읽을 일인가요? 문장들은 어찌나 그렇게 멋들어진 건지, 해석이 돼야 말이죠. 론리 플래닛 없이 배낭여행을 다니셨다고요? 그게 있어야, 세계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을 아는데요? 외톨이 되고 싶지 않으려면, 론리 플래닛은 필수죠. 론리 플래닛에 나온 지도만 믿고 5분마다 길을 물으며 다녔어요. 저처럼 방향 감각 없는 사람은, 지도만 봐서는 방향 가늠이 안 돼요. 책을 뒤집어도 보고, 좌로, 우로 돌려가면서 지형지물 이름과 대조하며 어렵게, 어렵게 숙소를 찾아내곤 했죠. 요즘엔 그런 게 어딨나요? 구글맵 하나면 끝인데요. 구글맵만 믿고, 어디를 가도 돼요. 길을 잃는 게 아예 불가능한 시대가 됐어요. 낯선 곳이어도 불안하지가 않아요. 길을 물을 필요가 없어졌어요. 길 묻는 핑계로, 차도 얻어 마시고, 같이 사진도 찍고 했는데 말이죠. 불편한 낭만을 고를래? 편리함을 고를래? 그래도 편리함이죠. 낭만이 조금 아쉽기는 한데, 어마어마한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렸어요. 구글맵은 여행자에게 혁명적인 가이드 북이 됐어요.


2. 택시 기사 대처법, 구글맵아 도와줘


택시기사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게 뭐예요? 예전엔 선량한 택시 기사도 다 사기꾼으로 보였죠. 이제는 아예 구글맵을 보여줘요. 여기로 데리고 가달라고 해요. 그리고는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주시해요. 택시 기사들이 눈치가 좀 빠른가요? 아, 이 놈은 사기쳐서는 안 될 놈이구나. 싱겁게 포기를 하게 되죠. 무조건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세요. 구글에서 나오는 내비게이션도 켜 놓고요. 다른 나라 말로 길 안내가 나와도, 택시 기사들 깜짝 놀라요. 허튼 짓은 그렇게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또 세상이 청정해졌어요. 이래도 사기당하는 사람은 또 당하죠. 방콕에서는 서 있는 택시는 웬만하면 타지 마세요. 그런 택시들이 호구를 기다리는, 능구렁이 택시들이니까요. 지나가는 택시를 손 흔들어서 잡으세요. 아니면 택시 애플리케이션(Grab)을 이용하시든가요.


3. 우연히 발견하는 맛집 따위는 없다


예전에는 감으로 맛집을 찾아냈어요. 나만의 맛집인 거죠. 요즘엔 구글맵이나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추천해 주는 맛집 위주로 가게 돼요. 인기 많은 곳은 수천 명의 후기가 달려요. 그런 곳을 어떻게 안 가나요? 그러다 보니, 남들 가는 곳 위주로 가게 되더군요. 역시 좋아요. 실망스러운 곳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성공 확률이 확실히 더 높죠. 괜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후기를 남기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여행은 우연성인데요. 실패를 하더라도, 조금은 한적한 곳도 가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시간이라는 가성비를 생각하다 보니, 사람들의 후기에 의지하게 돼요. 나만 알고 있는 진짜 좋은 단골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바글바글한 곳에서, 조금은 서글프게 안도하죠. 가성비나 만족도는 올라갔는데, 그렇다고 옛날 여행보다 더 재미나지는 않아요. 이것도 추억 보정이겠죠?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정색하고 지금이 좋다고 인정하겠죠?


4. 뭐라고요? 빈방이 없어요?


예전엔 방이 없어서 한 밤중에 어두 컴컴한 골목을 헤매기 일쑤였어요.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예약을 어떻게 해요? 일단 가보는 거죠. 가서 방이 없으면, 거실이나, 바닥에서 재워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요. 옥상에서도 자봤고요. 그물침대에서도 자 봤어요. 거실 소파에서도 자 보고, 거실 바닥에서도 자 봤죠. 제대로 된 방이 아니니까 방값도 깎아 주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인터넷으로 예약 안 되는 숙소는 망하겠다는 얘기죠. 저도 이젠 불안해서, 예약 없이 문 두드리는 짓은 안 해요. 배낭 여행자들이 많은 곳은 숙소도 많아요. 그런 곳에선 에어컨 나오는 카페에 앉아서, 이 숙소, 저 숙소 검색하고 여기다 싶은 곳을 찾아내요. 쫓겨날 확률 0%의 쾌적한 여행을 즐겨요. 예전에 술 퍼마시고, 그물 침대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코를 골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다들 아침 먹는다고 제 주위에서 조잘조잘. 뭔가 굉장히 창피해서, 침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한참을 기다렸었더랬죠. 그런 쪽팔림도 다 낭만인데 말이죠.


5. 친구가 없어? 만들면 되지


우연히 한국인 만나면 반갑게 밥 먹고, 어울리고 했죠. 요즘엔 아예 조직적으로 여행 친구를 만들더군요. 일단 그 지역 여행 카페에 가입을 해요. 그리고 지금 나 여기에 있다. 혹은 언제 어디에 있을 거다. 이렇게 알려요. 그러면 댓글들이 주르르 달려요. 그렇게 만나서 인연을 만들어요. 연애가 고픈 사람들은 무조건 인도로 가세요. 호기롭게 인도 여행을 홀로 시작했던 사람들도, 막상 그곳에 가면 그렇게들 한국 사람들을 찾더라고요. 지금 이곳에 한국인이 누가누가 있고, 내일은 또 누가 누가 올 것이다. 훤히 꿰고 있더라고요. 썸도 진짜 많이 타요. 혼자보다는 아무래도 둘이 나으니까요. 외롭다. 무섭다는 핑계로, 현지에서 왕성하게 썸을 타더라고요. 아, 물론 저처럼 나이 많은 아저씨는 입장 불가입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도 안 서러워요. 대신 칼같이 저도 더치페이했으니까요. 얘들아, 미안하다. 푸하하.


PS 매일 글을 씁니다. 혼자 있다고, 혼자가 아니에요. 글을 쓰고, 읽고, 읽히는 과정이 신비롭지 않나요? 제가 혼자가 아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나 빨리, 뜨겁게 구독 신청들을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3월의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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