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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r 01. 2021

글을 쓰기 좋은 장소가 따로 있을까?

무수한 핑계를 헤엄치다가 결국 나오는 그 무엇, 글

hario cafe

이런 날은 또 처음이네요. 동네 스타벅스 2층 냉방이 고장난 거예요. 태국에 참 부자 많아요. 2층 에어컨이 망가졌다고, 1층에 빈자리가 아예 없는 거예요. 월요일이고, 여긴 주택가인데도 스타벅스 인기가 이 정도예요. 빌딩가면 그러려니 하겠어요. 스타벅스 못 마시고 죽은 귀신들 여기 다 모였나 봐요. 스벅이 뭐라고 다들 여기만 오는 걸까요? 저야 디카페인 커피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와야 해요. 그냥 커피를 마시면, 역류성 식도염이 도지더라고요. 태국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려면 호텔을 가거나, 스타벅스뿐이에요. 카누 디카페인을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봐요. 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팔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바깥공기는 쐐 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방에만 갇혀서 글만 쓰다가 화석처럼 꽁꽁 굳으면 어쩌냐고요? 양심 없는 인간들이 가방만 놔두고 밥 먹으러 갔네요. 빈자리가 나올 기미가 안 보여요. 그렇다면 두 번째 카페로 가야죠. 


90th cafe 


이런 카페도 있었어? 93학번 아저씨, 카페 이름에 심쿵했어요. 아흔 번째 카페라고 했지, 90년대(90's)라고 한 건 아니라고요? 왜들 그렇게 까칠하세요? 감동에 초 좀 치지 말아 주실래요? 오늘 일정 사납네요. 카페가 문을 안 열었어요. 이름만 번지르르하게 지으면 뭐 하나요? 구글맵에선 엄연히 영업시간이라고 나와 있는데, 뭐 하자는 건가요? 요즘처럼 경쟁 살벌한 세상, 이런 카페가 성공할 리가 있겠어요? 


Up all night Cafe 


여기는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카페예요. 한참 자주 갔더랬죠. 요즘 이상하게 안 가게 되더라고요. 늘 학생들로 가득해요. 생동감이 넘쳐서 좋더니, 이제는 그 어수선함이 불편해요. 안 되겠어요. 안 갈래요. 사람 참 간사해요. 처음 문 열었을 때만 해도, 매일 출근 도장 찍었어요. 바로 집 앞에 작업실이 생긴 거야. 그렇게 환장할 때는 언제고요. 오토바이 택시를 타요. 홍디 카페를 가야겠어요. 비싸긴 하지만, 천장이 높아서 괜히 마음의 여유가 생겨요. 카페 하나 가겠다고, 오토바이까지 탈 일인가요? 아주 길에다가 돈을 뿌리며 사네요. 아차차. 오늘 월요일이죠? 월요일에 홍디 카페가 문을 닫는다는 걸 깜빡했어요. 저나 되니까, 재빨리 알아채는 거예요. 멍청하게 가게 앞에서 통곡하지 않는 이 노련함 좀 보세요. 재빨리 오토바이를 세워요. 마침 예전에 몇 번 갔던 카페 앞이네요. 그런데, 이 카페도 문을 닫았어요. 젠장, 젠장. 방콕 카페는 월요일이 공휴일인 건가요? 그럴 거면, 그냥 다 문을 닫든가요. 이쯤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맞겠죠? 맞긴 뭐가 맞아요? 남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다. 큰 마음먹고 나온 거예요. 제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데요. 쓰레기 버리고, 빨래 널고, 샤워하고, 옷 입고 나갈까? 말까? 귀찮음 질끈 감고 나왔더니, 그냥 다시 돌아가라고요? 제 발로 감옥으로 기어들어가는 기분을 아시나요? 또 오토바이 택시를 타요. 욕하지 마세요. 아니, 욕하고 싶으시면 하세요. 직선거리 500미터를 걷기 싫어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요. 한국에서라면 5km도 걷죠. 땡볕에 인도도 변변하게 없는 태국에서 그깟 500미터가 아니라고요. 게다가 저는 이미 반은 태국 사람이에요. 거북이처럼 걸어서 언제 저 500미터를 다 걷냐고요? 


Hario 카페에서 한숨 돌리고 찔끔 글을 써요. 여기는 다행히도 열었네요. 드립 커피 전문점이에요. 노트북 가져와서 죽치는 꼴 못 보겠다. 의자 높이가 높아서, 노트북 작업이 거의 불가능해요. 커피맛 음미하는 곳이라 이거죠. 어떻게든 글을 써봐야지. 음료까지 시켜놓고는 삼십 분만에 노트북 접어요. 집으로 가야겠어요. 감옥 같은 방이, 탈출하고 싶은 방이 사실 매일 내 글을 완성시켜 주는 곳이었어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도망칠 수 없다. 절망을 받아들일 때 글은 써지더군요. 그걸 깨우치기 위해, 방탕하게 밖으로 돌았어요. 감옥이 내 세상의 전부. 빈곤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글이 나와요. 그러니까 장소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슬프지만 똥줄이, 글이 나오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잡지사 다닐 때 그렇게 밤을 자주 새웠어요. 매일 조금씩, 조금씩 글을 썼다면 밤 새울 일이 없죠. 매일 그 '조금씩'을 안 하고, 편집장님이 뭔가를 집어던질 때가 되어서야 구부정하게 컴퓨터 앞에서 원고를 써내려 갔어요. 그때도 편집실이 지옥이었어요. 내가 가진 세상의 전부는 지옥이다. 탈출을 포기한 채 툭탁툭탁 자판을 두들겼죠.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매번 다짐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았네요.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 확률이 무지 높다고 봐야겠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아주 작은 글감이, 아주 작은 글로 연결되는 그 지점을 신비롭게 생각합니다. 그런 순간을 감지하고, 보는 눈을 키우고 싶어요. 저에게 글은, 세상을 감지하는 저만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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