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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r 03. 2021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저의 하루 일과는 이래요

저 다섯 시 반에 일어나는 사람입니다만

오늘 아침 옥상에서 한 컷

다섯 시 반이면 눈이 떠져요. 아침잠이 없는 편이에요. 정정하겠습니다. 아침밥 먹고 또 자요. 늦은 아침잠까지 치면, 잠 겁나 많은 사람이죠. 뭐 먹고 자는 게 역류성 식도염에 그렇게 안 좋다는데, 버릇 못 고치고 있어요. 사과를 씻어 놔요. 공복에 껍질 채 먹는 사과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명상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어요. 매일 명상만 할 수 있다면, 제 삶이 훨씬 좋아질 거라 확신해요.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것, 휩쓸리지 않는 것, 감정에 지배받지 않는 것.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해가 뜨는 시점에 후다닥 옥상으로 올라가요. 구름이 너무 두꺼워서 해가 나올 기미가 안 보이면, 그냥 올라가요. 올라가서 아침 인사를 동영상으로 찍어요. 멘트는 미리 준비하지 않아요. 어떤 날은 한 소리 또 하고, 또 해요. 누군가에겐 이런 말이 더 필요해서겠지.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라, 딱히 스트레스받지 않아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에 올리고 댓글을 보며 아침밥을 먹어요. 아침밥은 새벽 시장에서 사 올 때도 있고, 전날에 다른 시장에서 사 올 때도 있어요. 요즘엔 달걀, 우유, 생선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 중이라서요. 채식 반찬 가게에서 주로 사 와요. 몰랐어요. 태국에 채식 반찬 가게가 이렇게나 많은 줄요. 채식을 하면서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없어요. 고기 못 먹는 스트레스 역시 아직까지 없고요. 거울을 볼 때마다 제가 채식주의자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진즉부터 했어요. 고기와는 안 어울리는 얼굴 있잖아요. 네, 어디까지나 저의 주장일 뿐입니다. 


요즘엔 그래서 채식주의자 유튜브 영상을 자주 봐요. 채식을 하는 이유는 매우 세속적이에요. 유난히 뽀얗고, 혈색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 샘나서 시작했어요. 어제는 유튜브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특히 생채식을 하는 서양인들 때문에요. 서양 사람들이 빨리 늙는다는 편견 다들 있으시죠? 그게 다 먹는 것 때문이었나 봐요. 머릿결은 샴푸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찰랑대고요, 파란 눈은 유난히 더 파랗더군요. 단순히 젊어 보인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깨끗해요. 너무 맑게 생겨서, 물처럼 보이더라고요. 음악가, 명상가들이 참 안 늙는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1등은 생채식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해요. 저 이러다가 진짜 채식주의자가 되는 걸까요? 딱 한 달만 할 계획이었거든요. 제가 월정액을 받고, 정기 구독 서비스라는 걸 하잖아요. 귀한 구독료를 받고, 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채식 기록을 3월의 콘텐츠로 기획했죠. 시작은 장난처럼, 결과는 혁명처럼. 뭐 이런 삶을 지향하기는 해요. 지금의 채식 일기가, 저를 혁명적인 삶의 변화로 이끌어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아침밥을 먹고, 한 시간 정도를 애써 견뎌요. 세탁기를 돌리거나, 인터넷을 뒤적이면서요. 그리고는 가오리처럼 방바닥에 찰싹 붙어서, 눈을 붙여요. 두 시간은 자요. 자지 말아야지. 자도 삼십 분만 자야지. 습관이 이렇게나 무서워요. 어쩌면 하루 중 가장 기다렸던 시간인지도 모르겠어요. 해서는 안 되는, 안 하면 더 바람직한 금기라서 더 달콤한가 봐요. 그 잠은, 밤의 숙면보다도 훨씬 달달해요. 방바닥에 볼을 비비면서, 배시시 꼴 보기 싫게 웃어요. 웃으면서 자요. 허기도 지지 않는데 점심을 대충 밀어 넣고는 글을 쓰기 시작해요. 죄책감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서요. 저는 조금은 심각해져요. 이젠 진짜 쓰자. 유튜브로 피식대학을, 드립팩토리를, 꼰대희를 봐요.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지, 사람 달라졌다고는 안 했습니다. 죄책감이 견딜 수 없을 때는 밖으로 나가요. 카페에 앉아 있으면 그래도 좀 집중이 될까 해서요. 집중이 될 때도 있고, 음료값만 날릴 때도 있고요. 저는 뭐하는 사람일까요? 누군가가 강렬히 저의 글을 기다리는 건 맞나요? 그냥 놀기만 하는 내가 한심해서, 스스로 주는 숙제이며, 부담일까요? 아, 몰라요. 어떻게든 저의 하루는 글로 채워야겠어요. 보통은 카페에서도 글은 쓰지 않아요. 피식대학을, 드립팩토리를, 꼰대희를 봐요. 90년대의 음악을 들어요. <너를 품에 안으면>, <사랑과 우정 사이>, <사랑할수록>을 즐겨 들어요. 스무 살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걸까요? 아뇨. 돌아갈 수 없어서, 그 시간을 열렬히 사랑해요. 사랑 중 최고는 짝사랑이니까요. 90년대의 마로니에 공원을, 신촌을, 강남역을 걸어요. 


저의 하루는 저녁 일곱 시부터 바빠져요. 이젠 진짜 써야 해요. 더 이상 미루면, 오늘은 끝장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낮잠 잘 시간에 글을 썼으면 됐잖아요. 카페에서 조금 써두면 좋았잖아요. 그러게요. 그런 삶이 바람직한 건 아는데요. 왜 바람직하지 못하게 살고, 뒤늦게 저를 괴롭힐까요? 제가 스무 살로 돌아가도, 이런 식일 거예요. 방학숙제를 한 번도 미리 해본 적 없는 아이가, 마감을 제 때 끝내지 못했던 기자가 저였어요. 늘 뒤늦은 후회를 하며, 스스로를 혐오해요. 그 혐오를 내일도, 모레도 할 거면서요. 내일은, 모레는 달라지겠지. 부질없는 기대는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죠. 매일 두 개의 글을 써요. 누구나 볼 수 있는 글과, 유료 구독자에게만 보내는 글요. 두 개의 글을 끝내고 나면, 열한 시가 넘어요. 고생한 저에게 주는, 상 같은 시간이죠.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좋아요. 잠자는 게 아까워요.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게 서운해요. 똥줄 타는 시간이 매일이라서 참 고단해요. 이런 시간이 매일이라서 감사해요. 낮잠을 네 시간 아니, 다섯 시간 자도 상관없는 삶을 거부합니다. 그나마 글의 노동이 있으니, 꿀 낮잠이 선물이 되는 거죠. 그래서 24시간은, 방학 시간표처럼 그렇게 선을 그어야 해요. 무언가를 꼭 해야 하는 시간과, 자유 시간. 이 두 가지가 공존해야, '쉼'이 존재를 드러내죠. 오늘도 저는 수고했어요. 수고 많이 했다고 하기엔 부끄럽고, 그냥 수고 약간 했어요. 손가락이나 손목은 시큰할 때도 있고, 멀쩡할 때도 있어요. 아끼면서, 고마워하면서 손목 관절을, 손가락을 쓰려고요. 여러분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쉼이 쉼이 될 수 있기를요. 상처는 상처 받는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지길요. 모든 분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며 저의 글을 마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의 세상이 크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작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제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누구보다 저와 가까이 있어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이 지구에 존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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