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시비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러시아의 어디쯤, 시베리아의 어디쯤이다. 30분 후에 이륙하는 줄 알았다. 시차 한 시간을 계산 못했다. 그러니까 비행기는 한 시간 반 후에 출발이다. 게다가 30분 연착이다. 두 시간이 지나야 탑승이다. 짐 검사를 또 한다. 수분크림이 배낭에 있었다. 몰랐다. 들켰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피곤하다. 아무 욕심 없다. 이르쿠츠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간다. 방치되었던 뇌의 오른쪽 하단 어디쯤이 움찔, 노보시비르스크, 쥐어짜며, 이르쿠츠크, 얼씨구, 아제르바이잔. 발음할 때마다 뇌가 파르르 떨린다. 혈관이 팽창한다. 빡침이 첨가된 좋은 뇌 운동이다. 공항 무선 인터넷은 러시아 폰으로 인증 번호 받아서 재입력하란다. 외국인은 손가락이나 빨고, 쇼핑이나 해. 인터넷 금지. 한 겨울 시베리아 황무지에서 우리네 조상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강제 이주한 고려인(까레이스키) 할아버지, 할머니의 막막함과 나의 빡침엔 일관성이 있다.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무선 인터넷을 죽어도 써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공항 내 식당과 카페에 무선 인터넷이 있겠지.
-NO와이파이
공항 카페는 유기농 주스만 팔 것처럼 꽤나 근사했다. 러시아 여자는 유기농 당근의 표정으로 NO와이파이 했다. 눈 앞의 까레이스키야 얼른 꺼지렴. 너네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도 빡친다. 나는 어떻게든 인터넷을 써야겠다. 마침내 코카서스 3국으로 날아갑니다. 인천공항에서 올린 인증샷 댓글을 지금 당장 봐야겠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살짝 내 눈치를 볼 정도로, 내 눈빛은 빡침으로 가득했다. 공항 구석에 카페테리아가 보인다. 80년대 한국 읍내 분위기다. 수족관과 쌍화차만 있으면, 정읍의 약속 다방 이르쿠츠크 지점이다. 설마 공항 라운지는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는 그곳은 공항 라운지였다.
-1,600 루블입니다.
거의 3만 원. 3만 원이란 액수가 모호하게 아깝다. 1,600 루블을 신한 카드로 결제한다. 인터넷 없는 청정 시간은 다른 나라, 다른 공항에서 갖겠다.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공항에서 자발적으로 청정하겠다. 그리고 먹겠다. 음료, 음식 무제한이다. 당연히 먹어야 한다. 기름 둥둥 비트 수프와 싸구려 소시지와 양배추 피클을 먹겠다. 싸구려 빵에 싸구려 잼, 싸구려 커피를 단계별로 먹어치우겠다. 역류성 식도염에 기내식으로 이미 위는 빵빵하지만, 3만 원을 썼다. 생수만 마시고 일어설 수 없다. 무선 인터넷은 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먹기 위한 사람으로 돌변했다. 목구멍으로 뭔가가 들어갈 때마다, 목젖과 명치가 창백해지고 있다. 희번득 눈알을 굴리며 소시지를 쑤셔 넣는다. 먹으면 안 돼. 먹어야 해. 둘 다 나다. 둘 다 극단적이다. 극단적 두려움과 극단적 식탐이 뒤섞여서 숨이 안 쉬어진다. 빙글 돈다. 쓰러지고 싶다. 기절하고 싶다.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맛은 없다. 먹는다. 배가 안 고프다. 먹는다. 배가 아픈데 침샘은 돈다. 몸도 미쳐 돌아간다. 이건 아니야. 고개를 젓는다. 씹는다. 너는 미쳤어. 삼킨다. 돌았어. 일어선다. 그만! 접시를 또 채운다.